조선시대 자신을 ‘부묵자(副默子)’라 일컬은 분에 의해 엮여진 한문 설화집 ‘파수록(罷睡錄)’의 내용은 야담, 속어, 소화, 음담과 재담 등으로 엮여 책의 제목처럼 읽은 이의 잠을 깨우기에 충분한 흥미로운 얘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 하나가 끝날 때면 어김없이 ‘사신단왈(史臣斷曰)…’로 시작되는 편자의 비판문이 주석(註釋)처럼 붙어 있어 이야기 이해에 도움을 준다고 하니 시간이 허락되시는 분들께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파수록에 실린 글 중 방중술(房中術) 연마에 작은 도움이 될 만한 얘기가 있어 소개코자 한다.
어느 시골 마을에 방사(房事)와 음희(淫戱)를 무지하게 밝히는 부인이 있었다.
밤낮없이 부인의 눈빛엔 늘 색기가 충만했고 흐늘거리는 자태의 요염함은 사내의 양기(陽氣)를 끊임없이 갈구했다. 그런 이유로 그 남편은 밤일을 가지고 유세 부리기 일쑤였다.
남편은 부인이 못마땅한 짓거리를 할 때나 자신의 심기를 어지럽힐 때면 ‘오늘은 건너 방에 가서 침수 들어야겠소’하고 일침을 놓았다.
부인은 남편의 이 말을 가장 두렵게 생각했고,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어김없이 자신이 잘못했으니 제발 건너 방으로 간다는 말씀은 하지 말라며 애원했다.
그런 애원을 접한 남편은 득의양양(得意揚揚)하게 어깨를 펴고 부인을 안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상을 받은 남편이 아내의 귀가 솔깃해지는 말을 했다.
“오늘 밤 임자의 바람대로 그 일을 수십 차례 해줄 터이니, 임자는 내 수고에 어떻게 보답하겠소?” 남편이 밥숟갈을 들며 넌지시 말했다.
“예?!”
부인은 남편의 말에 언감생심(焉敢生心)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하며 사타구니 사이를 살짝 꼬집자 분명 꿈은 아니었다.
“어허 임자 내 지금 임자에게 묻지 않소?” 남편이 대답을 재촉했다.
“그 말씀이 참이십니까?” 부인이 되물었다.
“내 그럼 없던 것으로 하…”
“아닙니다, 아닙니다.” 부인이 도리질하며 남편의 말을 막았다.
“서방님께옵서 원하시는 것은 다 해드릴 것입니다. 술값도 넉넉히 드리고, 또 몰래 감춰 두었던 명주 한 필로 옷을 지어 올리지요.” 부인은 신바람이 나서 대답했다.
“그것 괜찮은 조건이요. 임자가 약속을 지킨다면 내 오늘 밤 서른 세 번을 해 주리다.”
“어머! 서른하고도 세 번씩이나요?”
부인은 다물었던 입이 쩍 벌어지며 아이마냥 손뼉을 쳐가며 좋아했다.
남편이 출타할 때 두둑하니 돈도 주고, 감춰두었던 명주로 옷을 짓는 내내 부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빨리 어둠이 내리길 바라듯 연신 하늘은 올려다보았다.
마침내 서산 밑으로 땅거미가 내리고 밤이 되자 부인은 더운 물로 목간을 하고 머리를 정갈히 빗고 얼굴에 분을 발랐다. 밤새도록 그 일을 한다는 사실에 부인은 몹시 들뜨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인지 온종일 옥문(玉門)은 촉촉이 젖어있었다. 일찌감치 이부자리를 펴고 등불을 밝혀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뽀얀 살결이 흐릿한 불빛에도 쉽게 드러나는 얇은 명주
속치마 차림으로 요염한 자태를 취하며 앉아 남편을 기다렸다.
오래지않아 취기가 살짝 오른 홍조 띈 얼굴로 남편이 들어왔다.
“이제 오십니까?”
부인이 교태를 부리며 남편이 옷 벗는 것을 도왔다.
겉옷을 벗고 속바지를 내리려던 남편이 거칠게 부인을 번쩍 안아 올리며 이내 이부자리 위로 쓰러뜨렸다. 이윽고 부인의 속치마를 걷어올리자 검은 숲에 감춰진 깊고 마르지 않는 샘이 수줍게 그 모습을 드러내자 남편은 손가락을 뻗어 샘의 깊이라도 재듯 희롱했다.
‘이 양반이 오늘은 일을 제대로 치르려 하는 것이야!’ 부인은 이렇게 생각하며 운우(雲雨)의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남편이 속바지를 내리고 양물을 그곳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하나요, 둘이요, 셋이요…” 남편은 일진일퇴를 반복하며 작은 소리로 수를 헤아렸다.
그렇게 서른 세 번을 헤아리자 양물은 미지근한 진액을 쏟아내고는 힘없이 미끄러져 나왔고 남편은 부인 옆으로 꼬꾸라졌다.
“서방님?” 부인이 간드러진 콧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남편은 대답대신 코를 드르렁 골았다. 부인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고 온종일 기다려온 바람이 산산조각나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부인은 우악스럽게 남편의 상투를 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이 한심한 작자야 일어나! 안 일어나? 사람을 가지고 놀아도 유분수지!”
식식거리며 부인이 남편의 상투를 마구잡이로 흔들자 남편이 아픔을 못 이겨 일어났다.
“당신은 이따위로 방사를 치른 것이 어째서 서른 세 번을 한 것이오?”
“임자, 내 분명 서른 셋을 헤아리는 것을 임자도 듣지 않았소?”
남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서방님은 깊고 얕은 좌삼삼 우 삼삼의 진퇴와 빙글 돌려 깊게 찌르는 방사의 이치를 정녕 모르십니까?” 남편의 표정에 부인이 화를 누그러뜨리며 되물었다.
“난 정말 모르겠소.”
“서방님 방사를 행할 때 처음은 천천히 진퇴하여 양물이 제 그곳을 충만하게 하고, 깊고 힘차게 위를 어루만졌다가 아래로 움직여 문지르기를 세 번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오른쪽을 부딪치며 아홉 번 전진하고 왼쪽을 밀며 아홉 번 후퇴하고, 빙글 돌려 깊게 찌르고 빼기를 수백 번 반복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사람의 마음이 황홀경에 휩싸이고 사지가 풀려 목구멍에서 내 목소리가 아닌 내 목소리의 신음이 뱉어지고 눈조차 뜨기 어려운 무아지경을 경험한 후에 두 사람이 함께 합의 경지로 치달아
올라 서방님의 양물이 진액을 쏟아야만 진정한 한번이 되는 것이지요!”
“그럼 그 합을 이루지 못하면 한번이 아니란 소리요?” 남편이 겁을 먹고 물었다.
“네!”
부인은 짧게 대답하고 남편의 양물을 움켜쥐었다. 그 날 밤이 지나 다음날 밤이 되고서도 남편은 약속을 지키느라 일진일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 숙여 고민하는 남성들이여! 한번을 해도 진정으로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그 일에 임한다면 좌삼삼 우삼삼의 이치가 왜 필요하겠는가. 세 번의 진퇴만으로도 정녕 부인을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함께 있다면 그 부인은 깊은 황홀경을 경험하게 될 것이 자명한 이치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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