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 풍속사 <제39화>
조선 성 풍속사 <제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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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7-11-01 17:38
  • 승인 2007.11.0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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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이 없어 그곳에 용변(用便)을 보다(?)

옛날 어느 마을에 조실부모한 부잣집으로 시집와 수개월 만에 남편을 여의고 유모(乳母)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아리따운 소녀과부가 있었다.

과부는 남편이 졸한 이후, 밤이 두렵고 길어 늘 유모와 함께 짝하여 잤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모가 자기 집에 병고가 생겨 급히 집으로 가게 되었다.

“유모 나도 함께 가면 안 될까?” 과부가 애원하듯 물었다.

“아씨 저도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인걸 아씨께서도 아시잖아요.” 유모가 옷가지 보따리를 챙기며 대답했다.

“그렇지만 유모 없는 밤이 무섭단 말이야.”

“아씨 하루 이틀 안으로 돌아올 터인데, 그 동안만 잘 견디어보셔요.” 유모가 과부의 두 손을 꼭 잡고 근심스레 말했다.

과부는 마을 어귀까지 유모를 따르며 여러 번 애원하였으나 유모는 이를 악물고 급한 발걸음을 옮겼다.

유모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도 한참을 마을 어귀에 서 있던 과부가 좋은 묘안이 떠올라 이웃집으로 달려갔다.

과부는 이웃집 여인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유모가 출타하여 홀로 자기 무서워 아주머니집의 종 고도쇠(高道釗)를 보내주시면 저녁을 후히 대접할 테니, 함께 수직(守直)케 해 주심이 어떻겠습니까?”

“내 자네의 처지를 잘 아는데 어찌 청을 거절하겠는가, 내 고도쇠에게 일러 그러도록 하겠네.”

이웃집 아주머니가 흔쾌히 허락하여 곧 고도쇠가 과부집으로 왔다.

고도쇠는 나이 열여덟에 기골은 장대하나 우둔하고 지각이 없는 놈이었다.

과부집에 와서 저녁밥을 후하게 얻어먹고 여타 말 한마디 없이 대청마루에 그대로 눕더니 삽시간에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고도쇠의 코고는 소리는 우레와 같았으며 아직 한번도 여체(女體)를 경험하지 못하였던지라 순수한 양물(陽物)이 뻣뻣이 일어나서 잠방이 속을 뚫고 밖으로 나와 등등하게 뻗치고 섰다.

과부는 밤이 깊고 적막하여 이리저리 뒤척이다 문을 살짝 열고 고도쇠를 쳐다보는데, 그만 굵고 긴 장대 같은 고도쇠의 양물을 보게 되었다.

그 튼실한 양물을 본 것만으로도 과부의 아랫도리가 축축이 젖어들고 젖무덤의 몽우리가 탱탱해지며 밀물처럼 음심(淫心)이 발동했다.

과부는 끓어오르는 음심을 주체치 못하고 고도쇠가 깰세라 조심이 방문을 열고 대청으로 나가 사뿐사뿐 걸어 고도쇠의 곁으로 다가갔다.

가만히 고도쇠의 바지를 벗기고 자기의 음문(陰門)으로 덮어씌우고는 스르르 양물을 밀어 넣었다.

밀려들어가는 양물이 온몸을 채워가니 과부는 꽉 다문 입술사이로 옅은 신음을 뱉어냈다.

과부는 음희(淫戱)에 스스로 취해 들이밀었다 물러가기를 반복하며 음란한 행위를 이어갔다.

고도쇠가 자신을 짓누르는 절구질과 야릇한 기분에 눈을 뜨니 과부가 눈을 지그시 감고 손가락을 깨물며 도취된 표정으로 용변을 보는 듯해서 고도쇠는 그러려니 하고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과부는 여러 번의 황홀경을 얻고 용변의 양보다 많은 음수(陰水)를 쏟아내고서야 일어나 고도쇠의 바지를 도로 입힌 후에 자기 방에 돌아가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고도쇠를 보내고 대청에 앉아 유모를 기다리는데 서산에 해가 짙은 땅거미를 드리우며 넘어가는데도 아직 유모가 오지 않는지라 과부는 간밤의 춘정(春情)도 일고해서 다시 이웃집아주머니에게 찾아가 고도쇠 보내주기를 청하고 돌아갔다.

이웃집아주머니가 곧 고도쇠를 불렀다.

“뒷담집 아가씨 댁에 기명(器皿)도 많고 음식도 많고 의복도 많으니, 네가 그리로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비록 기명은 많으나 요강이 없습니다.” 고도쇠가 뾰로통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부잣집에 요강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이웃집아주머니가 꾸짖으며 되물었다.

“요강이 없는 고로 엊저녁에 아가씨께옵서 손수 소인의 바지를 벗기고 소인의 양물위에 오줌을 쌌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자세히 말해 보거라?”

이웃집아주머니가 고도쇠를 다그쳐 물으니 간밤의 일을 상세히 말해주는데, 그 얘기가 어찌나 음탕하고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지
감히 다시 가란 말을 하지 않았다.

과부는 고도쇠를 기다리며 술상을 정성껏 차려놓고 목욕을 하고 분을 찍어 발라 곱게 단장하고 몸의 잔털까지 흔히 들여다보이는 속치마와 저고리차림으로 기다렸다.

늦은 밤이 되어도 고도쇠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과부는 옷을 차려입고 다시금 이웃집아주머니를 찾아갔다.

“아주머니 어째서 고도쇠를 보내주시지 않으십니까?” 과부가 근심스레 물었다.

“그건 자네가 더 잘 알게 아닌가.” 아주머니가 차갑게 말했다.

“저는 도무지 어찌된 영문인지 통 모르겠습니다.” 과부가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자네가 도무지 무서워 잠을 이룰 수 없다면 내 행랑아범을 보내줌세.” 아주머니가 비꼬는 투로 말했다.

“늙은 행랑아범이 절 어떻게 지킬 수 있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과부가 놀라 물었다.

“자넨 자넬 지켜줄 사내가 필요한겐가, 채워줄 사내가 필요한겐가?”

아주머니가 되묻자 과부는 얼굴이 상기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과부는 고도쇠를 그리워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는데, 마을사람들은 졸한 남편을 그리워하여 그러는 줄
알고 입이 마르도록 과부를 칭찬했다.

이 설화는 조선 정조때의 화가이자 문신이었던 열청재 장한종(張漢宗)이 한문으로 쓴 야담집 어수록(禦杭錄)에 수록되어 전하는 설화로 재미와 이해를 돕고자 원안의 내용을 훼손치 않는 범위 내에서 재구성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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