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진정서 단독입수-표류하는 농협 - 신음하는 농민<제2탄>
청와대 진정서 단독입수-표류하는 농협 - 신음하는 농민<제2탄>
  • 박지영 기자
  • 입력 2008-08-27 09:00
  • 승인 2008.08.27 09:00
  • 호수 71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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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워ㄹ 21일 A씨가 에 보낸 '휴켐스 매각 의혹' 진정서(위) 농협중앙회 노동조합이 각 주요 일간지에 싣기로 한 성명서.

“농협은 그 자체가 파워다. 전국 각지에 조직이 있어 농협이 힘이 센지, (대통령인) 내가 힘이 센지 아직 모르겠다.” 거대공룡 농협을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의 표현대로 현재 농협은 설사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다. 심지어 정부의 주무부처인 농림부마저 “농협이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대해졌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이에 본지는 지난 호에 이어 기획시리즈를 통해 온갖 비리로 뒤엉킨 농협중앙회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키로 했다. 이번 호는 농협 자회사 휴켐스 헐값매각에 얽힌 의혹전말이다.

지난 8월 21일 오전 10시 50분께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평소 안면이 있던 A씨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농협중앙회 비자금 관련 취재를 하면서였다. 당시 A씨는 ‘농협비자금 장부’ 복사본을 직접 가지고 있기도 하는 등 ‘농협의 뼛속’까지 알고 있는 듯 했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인사도 나눌 겸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시작된 ‘안부전화’는 2시간 째 계속됐다. A씨가 보낸 이메일이 문제였다. (기자는 메일확인도 하지 않은 채 곧장 A씨에게 전화를 걸었던 터였다.)

처음 10분간은 서로의 안위를 묻는 데 시간을 보냈다. ‘안부전화’가 ‘취재전화’로 바뀐 것은 ‘메일내용’을 물어본 직후부터다.

기자의 질문에 A씨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휴켐스 헐값 매각과 관련해) 진정서를 접수 받고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진정을 낸 곳이 ‘농협사랑지킴이’라고 하던데 아마 1년 전 (내가) 경찰청에 제공한 문건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그때 당시 경찰청이 본 문건을 국무총리실로 이첩했다고 들었다. 메일로 보낸 것은 경찰청에 제공한 문건과 그에 따른 세부자료”라고 답했다.

참고로 그가 메일을 보낸 8월 21일은 ‘농협 자회사 휴켐스 헐값 매각 논란’ 후폭풍이 일파만파 불어 닥칠 때였다.

A씨와의 긴 전화통화를 끊고 곧바로 이메일을 확인했다. 메일 안엔 그의 말대로 A4용지 5장 분량의 진정서(A4 3장)와 세부자료(A4 2장)가 첩부돼 있었다. 또 진정서에는 휴켐스 매각 과정과 관련한 갖가지 의문점들이 빼곡했다. A씨가 제기한 의혹들을 본 문건을 토대로 추적해봤다.


1년 전 경찰청에 제공한 문건

‘농협 자회사 휴켐스 헐값 매각 논란’이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 7월 28일. 농협중앙회 소유의 ‘휴켐스 주식회사’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인수하면서부터다.

앞서 박 회장은 그해 3월 말 ‘박연차 컴소시엄’을 구성해 농협중앙회가 실시하는 공개입찰에 참여했다. 8개 업체로 구성된 ‘박연차 컴소시엄’은 박 회장(23.6%) 개인을 비롯, 태광실업(15.1%), 정산개발(13.6%), 대구은행(12.2%), 신한·경남은행(각 11.3%), 신한캐피탈·대한소방공제회(각 5.4%)로 짜여졌다.

이후 이 컴소시엄은 같은 해 5월 10일 공개경쟁입찰에서 4개 입찰업체 중 가장 높은 가격인 1777억원을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박 회장과 함께 휴켐스 입찰에 참여한 기업은 경남기업(1525억원)을 비롯, 한일시멘트(1277억원), 한솔케미칼(550억원) 등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농협중앙회가 당초 박 회장이 제시한 1777억원 보다 322억원 적은 1455억원에 휴켐스를 내줬다는 점이다.

이는 차 순위 업체인 경남기업보다 70억원 낮은 금액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농협중앙회가 애초부터 휴켐스를 박 회장 측에 매각키 위해 박 회장으로 하여금 높은 가격을 제시토록 한 뒤 실사과정에서 가격을 깎아준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 문화홍보팀 관계자는 “휴켐스 매각 과정에서 편법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와 관련 농협 관계자는 “우선협상대상자로 박 회장이 선정된 이후 휴켐스 공장실사를 했는데 우리가 제공한 자료와 사뭇 달랐다. 이에 박 회장이 농협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제대로 산정을 못했다고 항의했고, 우리 또한 이를 받아들여 금액을 조금 하향 조정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박 회장 뿐만 아니라 다른 여느 기업이 우선협상대상자였더라도 같은 금액으로 깎아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농협 측의 이러한 답변에도 불구 ‘휴켐스 헐값 매각 의혹’은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우선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릴 정도로 매출이 뛰어난 휴켐스를 굳이 팔려는 의도가 뭐냐는 것이다. 실제 국내 최대 비료생산업체인 휴켐스는 지난 한 해 동안 매출 3017억5000만원에 단기순이익 282억원을 기록했다.


알짜기업 내준 진짜 이유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알려진 ‘휴켐스 매각’을 둘러싼 의혹들이다. 그러나 A씨가 제공한 문건은 또 다른 의혹들을 제기하고 나섰다.

<정권실세에 농협 자회사 휴켐스 저가 매각 관련 비리의혹>이란 제목의 문건은 제일 먼저 농협이 ‘알짜기업’ 자회사인 휴켐스를 박연차 회장에게 매각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문건은 그 해답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정대근 전 농협회장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에서 찾았다.

실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간 사이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수식어 하나로 정리된다. ‘노무현의 남자’ ‘대통령의 후원인’이 바로 그것이다.

노 전 대통령과 정대근 전 농협회장 간 친분도 이에 못지않다.

2002년 말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 결혼식 때만 봐도 두 사람 사이가 어느 정돈지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주례사 단상엔 두 개의 화환만 놓였는데 그 중 하나가 정 전 회장이 보낸 것이었다.

문건은 또 ‘휴켐스 매각 시기’가 석연치 않다고 지적했다. 정대근 전 농협회장이 김동진 현대·기아차 부회장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해 검찰에 체포된 시기와 맞아 떨어진다는 게 그 이유다.

특히 문건은 휴켐스 매각 금액이 두 차례 하향 조정된 것과 관련 “정대근 전 농협회장이 검찰에 체포되자 농협의 K전무이사와 O상무가 태광실업 박 회장을 긴밀히 만나 정 전 회장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휴켐스를 넘기겠다고 맞교환을 제시했다”며 “이런 연유로 두 차례에 걸쳐 매각 금액을 깎아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로 문건은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노조는 2007년 1월 2일 각 주요 일간지에 성명서를 실으려 했다. 하지만 신문광고안을 짠 그 다음날 어찌된 영문인지 성명서는 온데 간데 자취를 감췄다”고 설명했다.

문건은 이어 성명서가 사라지게 된 배경에 대해 “당시 노조의 움직임을 눈치 챈 정대근 전 회장이 K노조위원장을 만나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조건으로 특별상여금 300%를 제시했다”고 회고했다.

실제 농협중앙회 전 직원은 2007년 1월과 2월, 12월에 각각 100%씩 모두 300%의 특별상여금을 챙겼다. 이와 관련 농협중앙회 측 관계자는 “2007년 상여금 외 특별상여금이 나간 건 사실이나 이는 2006년 매출이 급등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진정서 내용을 검토하고 공식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당시 매각에 관여했던 농협 및 태광실업 관계자 등을 소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휴켐스(주) 매각 일지

2006.. 3. 29 농협중앙회 이사회, 휴켐스 매각 방침 결정
3. 31 농협중앙회 휴켐스 매각공고
4. 경남기업 등 총 14개 업체 농협중앙회에 인수의향서 제출
4. 17 태광실업 등 7개 업체 예비실사 대상자 선정
5. 10 태광실업, 경남기업, 한일시멘트, 한솔케미컬 등
4개 업체 공개경쟁입찰 참가
5. 12 태광실업 컨소시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5. 18 박연차 회장 한국증권거래소 통해 주당 8479원에
휴켐스 34만주 매입
5. 19 태광실업 컨소시엄 양해각서(MOU) 체결
6. 30 농협중앙회 보유 휴켐스 주식 46% 박연차 회장에
매도 결정
7. 19 박연차 회장 한국증권거래소 통해 주당 7911원에
휴켐스 16만2000주 매입. 박 회장 친·인척 2명
또한 같은 방법과 금액으로 휴켐스 54만주 매입
7. 28 태광실업 농협중앙회에 주식양수도 및 대금정산



##증권사 애널리스트 일문일답

“관례와 크게 어긋난 계약”

- 휴켐스 매각에 참여한 박연차 컴소시엄을 보면 개인인 박연차 회장이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불법 아닌가.
▲ 불법은 아니지만 통상적인 관례에선 크게 벗어난 행동이다. 특정업체를 인수하기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할 때 통상 법인이 주관사가 된다. 그런데도 박 회장은 자신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태광실업과 정산개발 명의로 지분참여를 하면서도 이와는 별도로 또 본인 명의로 지분참여를 했다.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다. 이럴 경우 대부분 1차 서류심사에서 탈락된다.

- 농협중앙회는 1777억원을 제시한 박연차 회장 측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이후 두 차례에 걸쳐 322억원을 깎아줬다. 이는 두 번 째 순위인 경남기업보다도 낮은 금액이다.
▲ 경남기업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해도 실사과정에서 최종 인수금액이 더 낮아질 순 있다. 문제는 하향 조정된 매각 금액이다. 통상적으로 당초 제시가격과 본계약 금액 간 차이는 10%를 넘지 않는다. 그러나 휴켐스의 경우 본계약 체결과정에서 매각 가격이 18.1%나 하향 조정됐다. 이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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