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노리고 동네주민들까지 살해
보험금 노리고 동네주민들까지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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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7-09-18 15:02
  • 승인 2007.09.1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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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부부의 보험 살인극

가족들은 보험금을 타게 되어 좋아했으나 마스미로서는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2억엔이라는 보험금을 가족들과 나누어 갖게 된 것이 싫었다.

‘다음에는 가족들에게 알리지 말아야하겠어.’

마스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1996년 그녀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다가 발에 화상을 입었다. 그녀는 그것을 사고로 위장하여 464만 엔의 보험금을 타냈다. 그때 마스미의 친정어머니가 그녀를 간호하기 위해 마스미의 집에 와 있었다. 그런데 친정어머니는 그녀의 집에 와서 딸을 돌보기 시작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의사는 사인을 백혈병으로 진단했다. 마스미는 1억4천만 엔이나 되는 거액의 보험금을 가족들 누구에게도 나누어주지 않고 자신이 혼자 차지했다. 가족들은 그녀가 어머니의 보험을 들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마스미는 자신을 간호하는 어머니조차 살해하여 보험금을 탄 것이다.

하야시 겐지는 일정한 직업도 없이 경마와 마작으로 소일했다. 하루에 말을 하는 것은 고작 몇 마디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아내가 벌어들이는 돈으로 호화스러우면서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고도장애는 완벽한 반신불수는 아니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으나 성생활은 그다지 만족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신경 계통에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마스미를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마스미는 보험 외판 일을 하면서 여러 남자들을 만났다. 그들을 보험에 가입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육체를 활용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기발한 보험사기도 서서히 종말이 오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보험사기가 한 번도 발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나 대담한 범행을 계획했다.

1998년 7월25일 하야시와 마스미 부부가 살고 있는 와카야마시에서 자치회 여름 축제가 열렸다. 와카야마시의 여름축제는 일부 주민들이 반대를 하기도 했으나 큰 저항 없이 개최되었다. 많은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가 끝나자 주민들의 카레라이스 파티가 벌어졌다. 마스미가 살고 있는 호화주택가의 주민들도 즐겁게 카레라이스를 먹었다. 그러나 그들이 카레라이스를 다 먹기도 전에 67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구토와 복통을 일으키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급히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4명이 죽고 63명은 비소 중독 증상을 보였다.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관서지방의 온천지대로 유명한 와카야마시에서 일어난 비소카레독살사건은 한 마을 주민들을 모두 살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매스컴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었다.

경찰은 와카야마시의 자치회 축제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주민들의 알력 문제로 이러한 사건이 발달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카레를 이용한 독살사건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것이었기 때문에 사태가 심각했다. 하야시 겐지도 자치회 축제를 반대했기 때문에 1차 조사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사건 당일의 행적이 뚜렷했기 때문에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경찰의 수사는 뜻밖에 장기화되었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지 2개월이 되었으나 뚜렷한 용의자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을 집단적으로 살해하려는 동기를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포기하지 않고 전 주민을 상대로 저인망식 탐문수사를 계속했다. 일본의 매스컴은 비소카레 독살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매스컴들이 연일 경찰을 두드렸다.

“이거 큰일 났군. 매스컴이 무능한 경찰이라고 연일 북을 쳐대니.”

“어쩔 수 없지. 이 나라는 민주주의 나라니까. 와카야마시의 모든 주민들을 조사하더라도 이 사건을 반드시 해결해야 돼.”

와카야마시의 경찰은 조금도 포기하지 않고 수사를 계속했다. 그 결과 하야시 겐지와 마스미 부부가 뚜렷한 수입도 없으면서 호화주택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찰은 하야시 부부의 생활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그리하여 항시 부부가 여러 가지 보험금을 타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건 당일 카레를 끓이는 솥 옆에 하야시 겐지의 부인 마스미가 오랫동안 서 있었다는 것을 본 목격자를 찾아내는데도 성공했다. 경찰은 하야시 겐지 부부의 호화주택을 수색했다. 그 결과 하야시 겐지의 집 배수구에서 일반 비소 농도의 수백 배에 달하는 비소 성분을 검출할 수 있었다.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경찰의 추적이 시작되자 그들 부부가 집안에 보관하고 있던 비소를 배수구를 통해 버렸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었다. 장롱 깊은 곳에서는 주민들 이름으로 보험에 들어있는 보험증서가 1백여 통이나 발견되었다. 그들이 든 보험은 모두 30억 엔이 넘었다. 보험 수령자는 하야시 겐지와 마스미로 되어 있었다.

하야시 겐지와 마스미는 즉각 경찰에 구속되었다. 일본인들은 하야시 겐지 부부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모두 독살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자 충격에 휩싸였다.

마스미는 독부(毒婦)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재판을 받기 시작했다.

마스미는 자신이 비소로 여러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모든 증거가 그녀가 범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특히 비소카레 독살사건은 목격자들도 많았다.

법원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어느 누구도 마스미가 직접 비소를 타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다만 마을 사람 하나가 마스미가 흰 가루를 카레에 넣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흰 가루가 비소라는 증거는 없었다. 판사들은 물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황증거만으로도 마스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마스미는 즉시 항고했다. 2심에서는 마스미가 남편 하야시 겐지를 비소로 살해하려 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역시 증거가 없었다.

마스미와 하야시 겐지의 비소카레 독살사건은 보험금을 노린 사건이면서도 친정 가족들을 살해하고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살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인명경시 풍조가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일본은 보험금을 노린 사기 사건이 빈발하고 있는데 비소카레 독살사건은 대표적인 사건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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