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들어온 것은 좋았으나 마스미는 의혹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없는 일이었다. 마스미는 하야시가 2년 전에 자신의 통장에 거액의 돈을 입금시킨 일을 은밀하게 조사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놀랐다. 2년 전에 하야시의 흰개미 구제사업에 종업원으로 일을 하던 직원이 뇌출혈로 죽었고 그로 인해 하야시가 보험회사로부터 1천2백50만 엔을 탔던 것이다. 사업과는 전혀 무관했다. 보험 수령자는 그 종업원의 부모로 되어 있었으나 하야시는 자신이 보험금을 냈기 때문에 재판을 하여 절반을 차지한 것이다. 그것은 마스미가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날 밤 마스미는 정성스럽게 하야시의 술상을 차렸다. 그리고 하야시 앞에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술을 따른 뒤에 물었다.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세요. 당신은 보험 살인을 저질렀죠?”
마스미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단호한 데가 있다. 하야시는 소름이 오싹 끼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내 마스미의 추궁은 너무나 매서웠다. 그녀는 특유의 기묘한 눈빛으로 하야시를 쏘아보며 다그치고 있었다. 그러나 하야시가 정작으로 무서운 것은 마스미가 아니라 그녀가 혹시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무슨 소리야?”
하야시는 가슴이 철렁하여 반문했다.
“당신은 틀림없이 보험 살인을 저질렀어요. 그렇지 않나요?”
마스미의 목소리는 비수가 되어 하야시의 가슴을 찔렀다. 이 정도 추궁을 하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내막을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난 살인을 하지 않았어.”
하야시는 일단 부정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당신의 종업원 이름으로 보험을 들었어요. 그리고 당신이 보험을 든 뒤에 종업원들이 감쪽같이 죽었죠?”
“이즈미는 죽지 않았어.”
“반신불수가 되었잖아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당신을 경찰에 고발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만약에 당신이 보험금을 노린 것이라면 너무나 액수가 작아
요. 왜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해요? 나같으면 한몫 단단히 잡는 방법을 계획하겠어요.”
마스미의 말에 하야시는 쇠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스미는 하야시보다 훨씬 대범한 여자였다.
하야시는 마스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어쩔 수없는 일이었다. 마스미가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경찰에 신고를 하면 경찰은 어떻게 하던지 그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계획적으로 살인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낼 것이었다. 마스미가 경찰에 신고하는 일만은 어떻게 하든지 막아야 했다.
“모두가 당신을 위해서 한 짓이었어. 당신은 돈이 필요했고 흰개미 구제사업은 그렇게 돈이 잘 벌리는 사업이 아니야.”
하야시는 어린 아내 마스미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여성의 모성 본능을 자극하기 위해 흐느껴 우는 시늉을 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우린 부부예요.”
마스미가 하야시의 머리를 안아주며 말했다.
“미안해. 난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나도 그래요. 나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내가 당신을 경찰에 신고할 것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당신은 내 남편이에요. 나는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마스미는 다정하게 하야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야시는 자신이 살인자라는 사실도 잊고 마스미의 풍만한 가슴을 파고들었다. 손 하나는 기모노 안으로
넣어서 그녀의 은밀한 부분을 애무했다. 마스미는 그의 손이 더 이상 침범하지 않도록 손목을 움켜쥐고 말했다.
“대신 한 가지는 약속해 줘요. 앞으로는 그런 일을 계획할 때면 반드시 나와 상의해 줘요.”
“알았어.”
“맹세하세요.”
“맹세해.”
하야시는 마스미에게 맹세를 했다.
해가 바뀌었다. 두 부부는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다정하게 지냈다. 1988년 이웃나라 한국의 서울이 올림픽으로 한창 들떠 있을 때였다. 하루는 흰개미 구제사업 일을 하는 하야시 겐지가 비소 중독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다. 하야시는 다급하게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고도장애 진단을 받고 2억 엔의 막대한 보험금을 타내는데 성공했다. 경찰은 하야시를 의심했다. 그러나 비소를 자신이 먹으면서까지 보험금을 타내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
라는 생각 때문에 조사는 흐지부지되었다. 비소는 치명적인 독약이었다. 그렇다고 마스미를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스미는 비소의 독성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그러나 욕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하야시와 마스미 부부가 합작을 하여 최초로 저지른 보험 사기가 자신을 상대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비소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하야시는 치사량을 정밀하게 산출했고 치사량에 미치지 않는 양을 먹었던 것이다. 게다가 고도장애를 진단받을 때 의사에게 상당한 뇌물을 상납하기까지 했다.
하야시와 마스미 부부는 사치스럽게 사느라고 빚이 많았기 때문에 목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여러 달이 지났다. 마스미는 보험설계사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녀는 보험설계사로 계약자를 모집하는 일보다 계약을 한 보험계약자들을 살해하거나 부상을 당하게 하여 보험금을 타는 일에 더 치중했다. 그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상냥하게 웃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칭찬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러 사람들에게 보험을 들게 했고 형식적인 것이니까… 하면서 보험수령자를 자신의 이름으로 기입했다. 그리고 돈이 필요할 때마다 그들에게 비소를 먹여서 거액의 보험금을 타냈다.
1993년, 마스미의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간장병으로 사망했다. 마스미의 친정아버지는 거액의 보험에 들어 있었다. 물론 그것은 마스미가 불입한 것이었고 마스미의 친정 가족들은 2억 엔의 보험금을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다.
“네가 보험을 들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마스미를 대견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뜻밖에 수천 만 엔이라는 돈이 저절로 생겼기 때문에 친정아버지가 독살되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마스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무튼 너로 인해 큰돈을 만지게 되었구나. 보험이라는 것이 정말 좋구나. 아버지가 병으로 죽었는데도 보험금이 나오다니….”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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