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안으로는 들어오겠지.”
하야시는 마스미의 고양이 같은 눈길을 피하며 엉거주춤 대답했다. 문득 마스미를 와카야마시의 뒷골목에 있는 한 바에서 만났을 때 그 이상한 눈이 마음을 사로잡았던 생각이 났다. 마스미를 처음 만난 것은 하야시가 마스미가 다니는 오사카의 간호전문대학에 흰개미를 퇴치하러 갔을 때였다. 하야시는 마스미가 마음에 들었으나 그때 이미 하야시는 두 번째 부인이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아내는 임신 중이었고 아이를 낳으러 친정에 가 있었다.
얼마 후 하야시 겐지는 오사카에 갔다. 그날 하야시 겐지는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마스미는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스미는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간간이 그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눈빛이 촉촉하게 젖어 있으면서도 기묘하게 번들거렸다.
‘저 여대생을 한 번 유혹해 봐?’
하야시는 마스미를 살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마스미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원피스 안의 통통한 몸뚱이가 육감적으로 보였다.
마스미는 쉽게 걸려들었다. 처음에 그가 합석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을 때 두 여자는 깔깔대고 웃기만 했다. 그럼 염치불구하고… 하는 말과 함께 하야시는 두 여자와 합석을 했다. 두 여자는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셋이 마셨으나 나중엔 마스미의 친구를 보내고 둘이서 합석을 하여 술을 마셨다. 술값은 물론 그가 계산했다. 헤어질 때 그는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제안했다. 마스미는 웃으면서 좋다고 말했다. 두 번째 만난 것은 이튿날 저녁이었으나 그는 마스미에게 목걸이와 반지를 선물하여 환심을 샀다.
“참 좋은 반지로군요. 어떻게 이 신세를 갚죠?”
“뭐 신세랄 것까지는….”
“흥! 당신은 바람둥인 모양이죠? 나는 그렇게 녹녹한 여자가 아니에요.”
“아니 그렇지는 않소. 당신이 언젠가는 내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하오.”
하야시는 그때부터 매일같이 오사카로 마스미를 찾아간 끝에 결혼 승낙을 받는데 성공했다. 하야시의 두 번째 부인은 하야시가 마스미에게 열을 올리자 분개하여 이혼을 요구했다. 하야시는 임신 중인 두 번째 아내와 기다렸다는 듯이 이혼을 했다.
“나는 이제 이혼을 했소.”
하야시는 두 번째 부인과 이혼을 하자 곧바로 오사카로 마스미를 찾아갔다.
“왜 이혼을 했어요?”
“당신을 위해서 이혼을 했소.”
“나를 위해서라니요?”
“당신과 결혼을 하기 위해서요.”
“그 말이 진심이에요?”
“물론이오. 나는 당신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소.”
“흥. 듣기는 좋은 말이군요.”
하야시가 그녀를 위해 이혼을 했다는 말에 감동이라도 한 것일까. 마스미는 그날 저녁에 몹시 취했다. 그리고 그의 여자가 되었다. 마스미는 미혼의 여자답지 않게 그에게 착 달라붙었다. 하야시는 마스미가 충분히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정도일 거라고는 예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당신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시계를 차고 있었어요. 아주 부자로 보였어요.”
언젠가, 마스미는 그에게 몸을 허락한 이유를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그때도 마스미의 눈은 암고양이의 눈처럼 야릇한 빛을 퉁기고 있었다.
마스미의 통장에 거액이 입금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의 일이었다. 마스미는 거금이 통장에 입금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당신은 대단한 분이에요.”
그녀는 하야시의 사업, 흰개미 구제사업이 의외로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야시가 이렇게 많은 돈을 그녀의 통장에 입금시켜 줄 여력이 없을 것이었다.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래?”
하야시는 거드름을 피우며 마스미를 와락 끌어안았다.
“친구들을 초대할 작정이에요. 성대하게 파티를 열겠어요.”
하야시가 자신의 몸을 더듬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마스미는 콧노래를 부르듯이 말했다. 하야시는 능숙하게 마스미의 기모노를 벗기고 쓰러트렸다. 마스미는 하야시가 능력 있는 남편으로 생각되어 잠자리에서 최고의 노력을 다해 즐겁게 해주었다. 어쩌면 그녀 자신이 욕망의 쾌락에 잠겨 즐거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마스미는 고급 주택을 사들이고 호화로운 가구와 전자제품을 마구 사들였다. 마스미의 사치는 극에 이르렀다. 간간이 하야시로부터 그렇게 돈을 낭비하다가는 금방 통장이 바닥이 나겠다는 말을 들었으나 젊은 그녀가 나이 많은 남자와 살아주는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충분히 봉사하고 있어요.”
마스미는 언제나 눈웃음을 치며 그렇게 말했다. 마스미가 하야시를 위해 봉사를 한다는 것은 잠자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마스미의 사치 때문에 통장의 돈이 차츰차츰 떨어져갔다. 하야시는 1천2백50만엔이라는 큰돈을 마스미의 통장에 넣어주었으나 마스미는 그 돈을 1년 남짓 사이에 탕진하고 말았다. 돈이 떨어지자 마스미는 다시 하야시를 옥죄기 시작했다. 하야시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대출을 받아서 돈을 쓰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난 돈이 있어야 해요.”
마스미는 하야시가 품에 안으려고 할 때마다 돈에 대해서 강조했다. 하야시는 그럴 때마다 조금만 더 있으면 큰돈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정말이에요?”
마스미가 눈을 하얗게 치뜨고 물었다. 하야시는 재빨리 기모노 앞섶으로 손을 넣어 마스미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마스미가 잔소리를 하게 하지 않으려면 섹스가 최고였다. 마스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술을 벌리고 가늘게 신음을 내뱉었다.
“정말이고말고….”
하야시는 마스미의 기모노를 가볍게 벗겨냈다. 그런 일에는 누구보다도 재빠르고 익숙한 하야시였다. 이내 마스미의 눈부신 알몸이 드러났다.
“얼마나 큰돈이죠?”
마스미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묻는다.
“5천만 엔쯤 될 거야.”
“아이 좋아라.”
마스미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하야시의 목을 껴안고 기뻐했다. 결국 하야시가 예상한대로 되었다. 그런데 마스미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돈이 들어왔다.
하야시의 흰개미구제사업에 종업원으로 일하는 이즈미 가스노리라는 사내가 독약에 중독되어 사경에 빠졌고 하야시가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수령자가 되어 5천만 엔이라는 거액의 보험금을 탔던 것이다. 이즈미는 다행히 살아났다. 그러나 5천만 엔의 보험금은 하야시의 수중에 들어와 있었다.
‘이상한 일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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