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는?”
차 일만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기 시작하였다.
“준비해 보쥬,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글씨 몇 년 동안 사용해 본 적이 없어농께루, 녹이나 슬지 않았는지 모르것슈. 형님이야 그려두 랭킹 3위까정 했으니께 안즉까정 끄덕 했을지 몰러두, 나야 몸땡이가 영 옛날 같지 않아놔서 당최…….”
차 일만의 눈꼬리가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너스레를 떨어대던 권 상사가 일순 입을 닫았다. 몸의 근육이 일순 경직되기 시작했다.
무기란 소위 이 세계에서 ‘연장’이라고도 부르는 것으로서, 이는 이쪽 세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먹고 자고 입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빽’으로,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이에 속하는 것으로는 흔히 칼과 손도끼,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 쇠 파이프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이외에도 자신의 손에 익은 것으로, 비장의 무기들이 많았다. 칼만 해도 흔히 쓰이는 ‘사시미칼’로부터 ‘잇뽄도’, 서양의 재크 나이프, 사냥꾼들이 가지고 다니던 것으로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데 사용하던 북유럽 제품의 칼, 정육점에서 뼈를 발릴 때 사용하는 칼 등, 그 종류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했다. 또한 사람에 따라 무기를 선호하는 게 독별난 데가 있어서 ‘빳따’는 사시사철 야구 방망이만을 고집스럽게 들고 다닌다고 하여 별명까지 ‘빳따’가 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상대방을 단시간 내에 제압하는 데 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그것들의 용도는 제각각이었다. 칼은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기 위해 주로 사용되었으며, 쇠 파이프나 야구 방망이 등은 파괴적이며 위협적인 ‘연장’으로써 주로 상대를 압도하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칼은 ‘일 대 일’, 혹은 ‘이 대 일’ 등 어둠 속에서 조용히 치르고 싶은 싸움에 애용되는 무기였고, 방망이와 도끼 등은 소위 ‘다구리’ 라는 패싸움에 많이 사용되는 무기였다.
차 일만은 이번 ‘선방’에 방망이를 들기로 내심 작정하고 있었다. ‘빳따’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는 그가 잘 사용하는 그것이 제격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자신이 염 은옥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는 이 일을 빨리 처리할 작정이었다.
“그 사람 잘 지내지?”
“그라유, 잘 지내지유.”
“밥도 잘 먹고?”
차 일만은 궁금한 것이 많았다. 헤어진 지 이제 겨우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염 은옥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판단에서 일단 염 은옥을 권 상사네 집으로 피신은 시켰지만, 그러나 아파트처럼 마음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또다른 아픔이 아닐 수 없었다.
“디 · 데이는 잡으셨지유?”
“…….”
권 상사가 물었으나, 차 일만은 입을 다물었다. 계획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세웠으나 ‘디 · 데이’만큼은 그에게조차도 비밀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바닥의 관례나 다름없었던 까닭에 권 상사도 서운해 하는 기색은 없었다.
“은제든 지시만 내리슈. 곧바루 뜰 수 있두룩 준비는 해들테니께.”
“철저하게 해둬. 이번엔 정말 어려운 게임이 될 테니까.”
차 일만은 한숨을 길게 뱉어내었다. ‘빳따’와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지만, 이젠 어쩔 수 없이 ‘더럽게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어금니를 물었다.
“암튼 형님, 이번 참에 ‘빳따’에게 돈은 없다가두 있을 수 있지먼서두, 의리는 한 번 잃어버리믄 다시 얻을 수 없다는 걸 몸땡이루 우리가 한 수 갈쳐줍시다
유.”
# 낯선 시간
그리움은 아픔이다……. 분만을 위해 운동을 하다가도 염 은옥의 눈길은 창밖에 머물곤 하였다. 창밖으로는 비에 젖은 거리가 내려다보였다. 색색의 우산들이 지나가는 거리를 내려다보다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제 겨우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떠올랐다. 권 상사의 아내가 들으면 또 한 차례 지청구나 들을 소리이지만, 창밖을 보고 있으면 자신을 돌아보며 조용히 미소 짓던 그가 빗줄기 속으로 성큼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지금은 안정이 제일인 때예요.”
어느새 다가왔을까, 권 상사의 아내가 그녀의 등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남편이 대문을 열고 나가면 그 순간부터 남편에 대한 모습을 잊어버린다는 여자.
그러면서도 그녀는 늘 남편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그 세계라는 게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늘 아슬아슬하잖아요. 그래서 남편이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오늘도 무사히 살아왔구나, 하는 마음에 고마움을 느끼게 돼요. 그 외에도 그녀는 염 은옥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건달 여편네는 반건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염 은옥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그렇게 보고 싶으세요?”
그녀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염 은옥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창밖으로는 횡단보도를 건넌 웬 사내가 맞은 편 보도 위를 성큼성큼 뛰어가는 게 보였다.
“정말 많이 사랑하시나 봐요.”
이번에도 염 은옥은 고개로 대꾸했다. 그녀가 살포시 염 은옥을 껴안았다. 부러워요. 그녀는 자신이 처음 권 상사를 만났을 때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용감
하고, 싹싹하고, 한결같은 마음에 끌렸다고 그녀는 고백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세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녀는 결코 결혼을 결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 온 첫날밤 염 은옥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자 그녀는 일어나 성경을 읽자고 권유하였다. 그녀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염 은옥은 그 제의를 받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그녀의 믿음이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두 사람이 성경을 읽고 있던 그날 밤에도 권 상사는 들어오지 않았다.
“남자들은요, 두 종류가 있어요.”
“…….”
“하나는 여자 앞에서 알랑알랑 하지만 뒤에서는 할 짓 못할 짓 다 하는 부류이구요, 또 하나는 무뚝뚝한 듯 보이지만 뒤에서 딴 짓거리를 하지 않는 부류이구요.”
그녀는 권 상사를 후자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염 은옥도 차 일만이가 후자에 속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은 서로 닮은꼴이라고, 함께 큰 소리로 웃었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새벽부터 하늘을 뒤덮고 있는 먹장구름은 오후가 되어도 걷힐 줄을 모르고 있었다.
“감자 잡수실래요?”
“제가 삶을까요?”
염 은옥이 돌아섰다. 평수가 작은 아파트가 흔히 그렇듯이 주방은 거실에서 바로 돌아서면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온 것은 압력솥이 막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할 때였다. 권 상사의 아내로부터 휴대폰을 넘겨받은 염 은옥은 어머니의 음성이 들리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도 울고 있는 모양이었다. 소리 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폴더를 타고 전해져왔다.
“잘 지내구 있는겨?”
“그로옴! 엄마는?”
“나두 잘 지내구 있어.”
그러나 염 은옥은 어머니의 기운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금세 직감할 수 있었다. 어찌 아니 그렇겠는가. 염 은옥은 그런 어머니에게 죄송스러웠다.
“아이는?”
“아주 정상적이래요.”
염 은옥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었다. 기운이 빠져있는 어머니를 부추기는 데에는 그만한 약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효력은 금세 나타났다.
어머니의 음성에서는 곧 웃음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걱정을 아주 걷은 것은 아니었다.
“그 사람 말대루 진득허니 기둘리구 있어. 심심하다구 공연히 쏘다니다가 걱정 끼치지 말구, 내 말 듣는겨?”
폴더를 내리면서 염 은옥은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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