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 다방을 전전하면서 숱한 남자를 경험한 조영란은 결코 한 남자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찻집에서 추파를 던지는 사람들을 위해 거리낌없이 옷을 벗어 던졌고 자신이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스스로 유혹을 했다.
남편 김철규와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었다.
그 무렵에 조영란은 우연히 그녀가 일을 하는 찻집에 들른 룸살롱 종업원 최학규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그녀보다 두 살이 연하였다. 음식점 주방에서 일을 하는 김철규와 달리 최학규는 옷차림도 캐주얼했고 머리가 항상 단정했다.
“누나는 이런 데 있을 사람이 아니야.”
하루는 최학규가 조영란의 허리를 안고 속삭였다.
“난 이제 늙었어.”
“몇 살이나 되었다고 늙어?”
“이 계통에서는 스물다섯이 넘으면 환갑이 지난 거야. 게다가 결혼까지 했으니….”
“신랑이 잘 해줘?”
“잘해주긴 뭘 잘 해줘?”
조영란이 눈을 흘겼다.
“밤일도 안해 준다는 말이야?”
“밤일만 하면 뭘해?”
“홍콩을 안보내주는 모양이네.”
“넌 나를 홍콩으로 보내줄 수 있어?”
“그야 물론이지. 여관으로 갈까?”
“좋아.”
조영란은 그날 밤 최학규를 따라 여관에 갔다.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조영란은 최학규와 함께 껴안고 뒹굴었다. 그리고 이튿날도 최학규와 함께 지냈다. 최학규와 욕망을 불태우는 것이 그녀로서는 너무나 기뻤다. 그는 그녀를 만족하게 해주었다. 그녀는 그와 관계를 할 때면 소리를 지르고 미쳐 날뛰었다. 그녀가 어찌나 소리를 지르는지 옆방까지 모두 들릴 정도였다. 조영란은 최학규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최학규가 없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최학규에게 몰두했다.
1999년 9월17일의 일이었다. 조영란은 아침부터 최학규에게 전화를 걸어댔다. 최학규가 며칠째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남편을 보아도 신경질만 났다. 최학규와 맺지 못한 관계를 남편에게 풀어보려고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기이하게 절정에 이를 수 없었다.
‘새 계집애가 생긴 것이 분명해.’
조영란은 눈을 표독하게 빛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최학규가 그녀를 만나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저녁때가 되어 찻집에 출근하여 일을 하면서도 그녀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최학규에게 전화를 걸자 바쁘다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우리 찻집에 오지 않을 거야?”
조영란은 분노가 일어났으나 교태를 섞어 말했다.
“바빠서 안 돼.”
“자기가 보고 싶은데…. 자기는 나보고 싶지 않아.”
“누이는 남편이 있잖아? 남편을 잘 챙겨야지. 바람은 적당히 피우고….”
최학규는 오히려 조영란을 타이르고 있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조영란은 최학규가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왜 그래? 나 말고 여자 생겼어?”
“여자는 무슨….”
최학규가 말꼬리를 흐렸다. 조영란은 다른 날보다도 일찍 일을 끝냈다. 그녀가 최학규가 일을 하는 룸살롱에 도착한 것은 새벽 12시30분쯤이었다. 마침 룸살롱도 일이 끝나 있었다. 최학규는 그녀가 찾아오자 여기는 웬일이냐면서 룸살롱 종업원들과 함께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말했다. 조영란은 최학규와 같이 여관에 가고 싶었으나 일단 술을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청량리로 술을 마시러 갔다. 최학규와 다른 웨이터 둘, 그리고 여자들이 또 셋으로 그녀까지 모두 일곱이나 되었었다. 남자들은 룸살롱 웨이터들이었고 여자들은 그 룸살롱에서 일을 하는 젊은 호스티스들이었다. 나이도 그녀보다 훨씬 어렸을 뿐 아니라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조영란은 젊고 예쁜 그녀들에게 공연히 위축이 되었다. 룸살롱에서 일을 하는 여자들과 동네 찻집에서 일을 하는 여자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최학규는 그녀의 애인이었다. 그녀는 최학규와 같이 술을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스심이라는 단발머리 계집애가 최학규에게 꼬리를 치고 있었다. 조영란은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그러나 꾹 참고 술을 마시는데 단발머리 계집애는 최학규의 팔에 매달려 아양을 떨었다.
“야, 좀 떨어져라.”
조영란은 단발머리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저 언니 왜 그런대?”
단발머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계집애가 좀 점잖은 맛이 있어야지, 왜 그렇게 노골적이니?”
“이 오빠 오늘 내가 찍었어. 나랑 같이 여관에 갈 거야.”
“뭐?”
“아까 그렇게 약속했어. 그치 오빠?”
“이런 개 같은 년이 누구에게 꼬리를 치고 있어?”
술이 취한 탓에 조영란은 단발머리 여자에게 욕을 퍼부었다.
“개 같은 년이라니?”
장내는 싸늘하게 변했다. 조영란에게 욕을 얻어먹은 여자는 처음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왜 이래?”
최학규가 그녀를 쏘아보고 눈을 부릅떴다.
“흥. 나이 어린 계집애들하고 잘 놀아봐.”
“뭐야?”
최학규가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조영란은 최학규에게 뺨을 얻어맞자 눈물이 핑 돌았다. 아직 그녀의 남편에게도 뺨을 얻어맞은 일이 없었다. 조영란은 그 길로 술집을 뛰쳐나갔고 홍릉에 있는 한 아파트단지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조영란과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 6명의 룸살롱 종업원들에 대해서 철저하게 알리바이 조사를 했다. 그러나 조영란으로 인해 분위기가 가라앉자 자리를 바꾸어 다른 술집에 몰려가서 다시 술을 마셨다. 그리고 5시가 거의 다 되어서 술집을 나와 쌍쌍이 여관을 찾아갔다. 조영란의 정부 최학규도 룸살롱의 호스티스인 단발머리와 여관에서 동침하고 다음날 11시까지 잠을 잤다. 그들의 알리바이는 술집 주인들과 여관 종업원들이 증명해주었고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도 음성으로 드러났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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