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없다 <제14회>
코끼리는 없다 <제14회>
  •  
  • 입력 2007-07-16 15:44
  • 승인 2007.07.16 15: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2장 위험한 사랑(3)

강 승길은 차 일만을 생각했다. ‘그 일’로 인해서 지금은 잠시 몸을 숨겼지만, 언젠가는 등 뒤에서 자신의 목을 조이려들 게 틀림없는, 그는 그만큼 위험스런 인물이었다. 그래서 더욱 고삐를 죄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빳따’가 안 되면 또 다른 인물을 시켜서라도 이참에 싹수를 아예 잘라버릴 작정이었다.

그는 늘 그랬다.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듯 했으나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언제나 자신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명령을 지키는 듯싶다가도 멋대로 뻗대고 나가는 엉뚱한 구석이 있는 인물이었다. 용역회사의 청부를 맡아 봉천동에 쳐들어갔을 적에도 차 일만이 때문에 그가 얼마나 애를 먹었던가. 정작 행동을 개시해야 할 때에 그는 뒷전으로 물러앉아 있었다. 도무지 그럴 위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강 승길이 다그쳤으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다. 학교 갈 때 멀쩡했던 자기 집이 허물어진 것을 보는 어린 아이의 눈빛이 무섭다는 것이었다.

김 국진은 자신의 잘못이었다는 것을 순순히 시인하였다.

“믿고 시켰던 아이들의 불찰이에요.”

“기수네 아이들은 그게 탈이라니까요. ‘깡’ 좋게 설치기는 하는데, 늘 마무리가 약해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짭새’들이 냄새를 맡지 않은 것을 보면.”

이야기가 길어지자 여자들이 투정을 부렸다. 자기들은 뭐 꿔다놓은 보릿자루냐고, 실떡거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 국진은 개의치 않았다.

“그럼 이제는 어쩌지요?”

“그러니까 저에게 맡기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벌써 그때 그 놈을 내 그물 속으로 몰아넣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펼쳐놓은 정치망에 들어온 물고기는 지금까지 한 마리도 빠져나간 적이 없습니다……. 강 승길은 김 국진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김 국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옆의 여자가 무릎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으나 그는 내치지 않았다. 술잔을 잡은 그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밴드 부를까요?”

여자가 물었다. 강 승길은 고갯짓으로 아직은, 하고 대꾸했다. 아직은 부를 단계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오늘은 밴드 없이 싱겁게 술판을 끝낼지도 모를 일이
었다. 그러나 강 승길은 ‘그 일’을 통해서라도 오늘 자리를 마련한 목적만큼은 꼭 다짐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그것을 위하여 준비한 봉투도 술을 핑계 삼아 은밀히 건네줄 작정이었다. 일금 일천만 원짜리 자기앞 수표. 그렇지만 예감은 좋지 않았다. 가뜩이나 깐깐한 그의 기분이 오늘따라 영 엉망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저에게 맡겨 보시죠. 이번엔 틀림없이 기간 내에 완전히 끝내버리겠습니다.”

“자신 있으십니까?”

김 국진이 술잔을 건넸다.

“물론이죠. 저희는 그 아이들처럼 촐싹거리지 않습니다. 완전 게임을 하지요. 뒷정리가 깨끗한 게 저희들의 자랑 아닙니까.”

강 승길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자 비로소 김 국진의 얼굴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가 옆에 앉아 시중을 들던 여자에게 처음으로 잔을 돌렸다. 여자는 배시시 웃으며 단숨에 잔을 비우고 다시 김 국진에게 잔을 건넸다. 강 승길은 이때다, 싶었다. 그는 준비했던 봉투를 꺼내어 김 국진의 손에 슬그머니 쥐어주었다. 김 국진이 놀라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나 그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몇 번 손사래를 치다가 마지못한 얼굴로 받아들었다. 일은 수월하게 끝난 셈이었다.

“그 일을 잘 처리하면 이사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시겠습니까?”

“글쎄요…….”

“그 토목공사 건, 저에게 주십시오. 담장도 허문 놈이 다시 쌓는 게 쉽다고, 그 악산을 모두 허문 게 저희들 아닙니까.”

강 승길은 특유의 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헤프게 흘리며 김 국진의 안색을 살폈다. 김 국진도 과히 나무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여자의 어깨 뒤로 팔을 두르고 있던 그는 여자가 어디를 만졌는지 갑자기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술자리는 자정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날 강 승길이 천이백만 원을 버리면서 얻은 결과는 썩 만족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옆에 앉았던 여자까지 딸려서 호텔방에 모시고난 뒤 그에게서 얻어낸 것이라고는 ‘노력해봅시다’, ‘힘써 보지요’가 고작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아무튼 이 돼지의 ‘약’은 먹었으니까……. 그는 불콰한 얼굴로 차에 올랐다.



# 관계

박 의원은 술이 약했다. 양주 두어 잔이면 벌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곤 하였다. 천성이 그랬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특이한 것은 그가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황 회장이 마련하는 술자리는 빠진 적이 없었다.

공천 시기가 박두하자 황 회장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 참에 쐐기를 박아두지 아니하면 지금껏 쌓아올린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그는 부랴부랴 술자리를 마련했다.

“벌써 공천 접수를 받으신다면서요?”

약속 시간보다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던 그는 박 의원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물었다.

“그렇지, 그건 일정에 따라 행해지는 의례적인 행사야.”

하지만 황 회장의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 의원은 뭘 그런 걸 다 묻느냐는 투로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럼 저도 접수를…….”

황 회장이 주춤거리자 박 의원은 비로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례대표 후보는 언제나 맨 나중에 결정하게 되어 있으니까 염려하지 말고 기다려 봐. 그래도 서류는 사전에 미리 준비해 놓는 게 좋지. 내 보좌관한테 일러놓을 테니까 빠짐없이 준비했다가 전화하면 냉큼 들고 뛰어오도록, 알겠지?”

“그럼 순위는 몇 번째쯤이나…….”

황 회장은 까닭 없이 목이 말랐다. 물 컵에 자작으로 술을 따라 들이마셨다. 그래도 갈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글쎄, 그건 나도 장담할 수가 없어요. 당에서 하는 일이 되어놔서…….”

“그래도 의원님께서 힘을 좀 써주시면…….”

“물론이지. 아, 우리 황 회장이 누구신데, 내가 물러나 뒷짐 지고 있겠어.”

황 회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비로소 지난 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것이 모두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10번 안에만 들면 당선권이 확실한데……. 그는
얼른 일어나 두 손으로 박 의원의 빈 잔에 공손히 술을 채웠다.

“그런데 그 골프 말이야. 난 아무래도 소질이 없나봐. 아무리 노력해도 핸디가 줄지 않으니…….”

박 의원은 술잔을 입에 대지도 않은 채 골프 이야기로 대화의 방향을 돌렸다. 황 회장은 아직 묻고 싶고, 확답을 받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이라는 놈은 참 이상해. 마음먹은 대로 가주질 않아. 내 스윙 폼이 이상한가?”

박 의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 회장은 이때가 기회다, 싶었다. 안주머니에 들었던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는 무릎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지금 개장 준비가 한창인 컨트리클럽의 VIP 회원권과 태진 콘도의 무료 회원권이었다.

“이게 뭔가?”

박 의원의 눈이 커졌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재빨리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황 회장은 쾌재를 불렀다.

“공이 잘 맞지 않을 때는 골프채를 한 번 바꿔보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마침 제가 일본에 주문한 것이 하나 있는데, 도착하면 의원님께 선물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