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 풍속사 <제21화>
조선 성 풍속사 <제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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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7-06-29 10:36
  • 승인 2007.06.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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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목숨을 살린 음사(淫事)

신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인간의 예지욕망을 다룬 많은 설화들 가운데, 편자미상의 교수잡사(攪睡雜史)에 실린 음사(淫事)가 선비의 목숨을 구한다는 설화가 있어 소개코자 한다.

앞날에 대해 늘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한 선비가 있었다.

어느 날 선비는 먼 시골에 갈 일이 생겨 행여나 무슨 변고라도 생길까 걱정하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다 이웃에 유명한 점쟁이 맹인이 새로 이사 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찾아가게 되었다.

“금번에 먼 곳에 가게 되어 자네에게 묻고자 함인데, 무사히 오갈 수 있겠는가? 나를 위해 자네가 점을 한번 쳐보아주게.” 선비가 불안이 드리운 기색으로 말했다.

이에 맹인이 점을 쳐 보고 말하기를,

“나으리, 길을 떠나 사흘째 대낮에 반드시 횡사할 것이니, 가지 아니함만 못하겠습니다.”

하고 맹인이 점괘를 말하니 선비는 안절부절 못하며 맹인에게 다시 물었다.

“내가 만약 횡사할 줄 안다면 어찌 길을 나서겠는가마는, 다만 볼일이 대단히 중요하고 아니 갈 수 없는 일인지라, 자네에게 사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 이렇게 사정하네, 자네의 영험함으로 내게 닥친 화를 면할 길이 없겠는가?”

선비의 간청이 너무나 지극하였기에 맹인이 다시 점친 후, 반 식경이나 깊이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맹인이 입을 열었다.

“나으리 과연 한번은 액을 면하고 무사히 돌아올 길이 있으니, 모름지기 스스로 생각하여 도모하면 길을 떠나가도 무방할 것입니다”하고 맹인이 얘기하자 선비
는 갸우뚱하며 맹인에게 자세히 물었다.

“차근차근 말해보게, 죽음에서 생을 구하고자 함인데, 내 어찌 능히 도모하지 못할 일이 있겠는가?”

“나으리께옵서 길을 떠나시어 사흘째 되는 날, 날이 밝을 즈음에, 길을 가다 처음 만난 여인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간통하면 스스로 무사할 것입니다.”

“그 말이 참이라면 내 자네의 말을 명심하고 길을 떠나겠네.”

선비가 길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 일찍 일어나 길을 나서니 맹인 점쟁이의 말이 자꾸만 떠올라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여인뿐 아니라 지나는 행인조차도 찾아 볼 수 없어 불안함이 점차 엄습해 오고 있었다. 그런 불안감을 안고 삼사십리 길을 가니, 한 여인이 길 옆의 우물가에서 빨래하고 있는 것을 보곤 어찌나 반갑던지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여인에게 갔다. 여인을 살피니 상복을 입은 것이 어느 상가(喪家)의 여인 같았다. 길 한쪽에 앉아 여인을 지켜보고 있다가 얼마 후 여인이 일어나 돌아가거늘 선비가 그 종에게 말을 끌고 주막에 먼저 가서 말을 먹이고 쉬고 있으면 내가 잠시 볼 일을 보고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갈 것이다 말하며 종을 먼저 보내었다.

종이 말을 끌고 먼저 주막에 간 후에 선비가 이 여인을 따라 가니, 외딴 초옥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선비가 뒤를 따라 문으로 들어가니 고요하고 적막한 것이 너무도 쓸쓸했다.

인기척을 느낀 여인이 돌아보았다.

“어찌 저를 따라 오신 것입니까?” 하고 여인이 물으니, 선비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집안을 두리번거리다 아무도 안에 없음을 보고 버럭 무릎을 꿇고 여인에게 사정했다.

“내가 대단히 절박한 사정이 있어 그대에게 애걸하는 것이니 들어주시길 청하오.”

“대관절 무슨 일이온데 비천한 것에게 무릎까지 꿇고 청하는 것입니까?”

“내게 급한 용무가 있어 천릿길을 떠났는데, 떠날 때 길흉을 점치니 오늘 길 가운데서 처음 만나는 여인과 한번 관계를 가져야 만이 오늘 닥칠 횡사를 면한다 하였고, 오늘 처음 만난 여인이 곧 그대인지라, 그대를 잠깐 본즉 사람 됨됨이가 출중하게 보이거늘, 내 염치없게 바라건대 그대가 횡사할 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음덕(陰德)은 베푸심이 어떠하리오.” 선비가 고개 숙인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여인은 기이하고 황당한지라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깊이 생각하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제가 비록 민간의 상놈의 딸이지만, 일찍이 이와 같은 난잡한 행동은 없었고, 나으리의 절박한 심정을 들으니 외면하는 것 또한 죄짓는 것 같아 거절하기 어렵고해서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는 심정으로 나으리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다만 백주에 몸을 허락함이 몹시 부끄러우니, 머물러 기다리시다가 밤에 하심이 어떠시오?”

여인이 말하니 선비가 심히 기뻐 앉아서 기다렸다가 밤이 되니, 서로 간통하고 새벽에 일어나 작별할 때 열 냥의 돈을 주니, 여인이 받지 아니하였다.

“제가 한번 몸을 허락하였음은 곧 사람을 살리려고 하였을 뿐, 어찌 물건을 받으리오. 돌아가시는 길에는 다시 이곳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니, 선비가 기특히 여기고 이별한 후에 주막으로 갔다. 선비가 들어서자 종이 문을 열고 맞이하여 절하고 그간의 일들을 아뢰었다.

“어제 나으리와 헤어져 십여 리를 가 돌다리에 이르니, 돌다리가 갑자기 무너져 말이 물 가운데 떨어지며 바위와 돌 사이에 부딪혀 허리가 부러져 죽었습니다.

소인이 경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죽은 말을 가까운 마을에 팔고, 빈 몸으로 왔습니다, 만약 나으리께옵서 말에 그대로 타고 계셨다면 큰 변고를 당할 뻔 하셨기에 아마도 천지신명께옵서 나으리를 보살폈을 것이라 소인이 생각하게 되어 작게나마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고 종이 얘기하니, 선비가 크게 안도하며 새로이 말을 세내어 길을 떠나게 되었다.

만일 그날 선비가 여인 때문에 지체치 않았던들 다리가 무너지며 말이 떨어질 때 반드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었고, 맹인이 당일에 처음 보는 여인을 점쳐 사통하게 한 것은 선비를 지체케 하여 흉을 피하게 함이니, 어찌 신험(神驗)이 아니겠습니까. 이로써 보건댄 흉을 피하고 길(吉)하게 나아가는 것이 정녕코 있을 것이나, 이와 같은 영험한 점괘를 어찌 쉽게 얻을 수 있으리오.

위 설화처럼 자신의 길흉을 미리알고 대처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어느 학자의 말처럼 운명은 불변의 것이 아니라 성공적인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고, 운명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사람만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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