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 샷
박 의원은 4선의 이력 못지않게 골프에도 관록이 붙어 있었다. 아웃코스 9홀을 도는 동안 페어웨이를 몇 번 벗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간혹 벗어나 벙커에 공이 들어가도 노련하게 위기를 잘 탈출하곤 하였다. 파워가 부족하여 비거리가 짧은 것이 흠이기는 하였으나 스윙할 때의 팔로우 스루나 임팩트, 스냅 등은 나무랄 데 없을 정도였다. 그는 그날도 핸디 10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이젠 스크래치로 해도 제가 못 당하겠는데요.”
황 회장은 박 의원이 티샷을 할 적마다 ‘나이스 샷’을 연발하며 박 의원을 추켜세우고 있었다. 박 의원도 만족한 듯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다. 그가 걸음을 옮길 적마다 황 회장은 그의 웃음 뒤에 감추어진 속셈을 가름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뒤를 따라붙었다. 마침내 아웃코스를 마칠 무렵 박 의원은 그에게 넌지시 속셈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미 골프 회동을 제안할 때부터 어떤 꿍꿍이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던 황 회장은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귀를 세웠다.
“비례대표로 뛰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번엔…….”
“저야 뭐, 의원님께서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하겠습니다요.”
“차기 지역구를 위한 발판 닦기라고 생각 해. 경력도 쌓고, 경험도 살리고…….”
“의원님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는 이제 의원님한테 매인 몸 아닙니까.”
황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비례대표이면 어떠냐. ‘금뺏지’를 달고 의기양양하게 국회의사당에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던 그는 마지막 남은 파 3홀의 짧은 코스를 그답지 않게 4번에 온 그린시키고도 어프로치를 못하여 또 트리플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비기너처럼 벌써 몇 번째인가, 그래.”
박 의원이 으스대며 농담을 던졌으나 그는 그 말까지도 고깝게 들리지가 않았다.
“사업체는 대충 그만하면 내놓을만 한데, 사회를 위해 봉사한 훈장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야.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그 훈장 좀 챙겨봐. 안 되면 돈을 주어서라도 만들도록 해. 알겠어?”
황 회장은 박 의원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그 말이야말로 앞으로 자신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소리였던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기자 녀석들이야. 요즘 기자 놈들은 꼭 하이에나 같아. 쿵쿵거리며 쏘다니다가 구린내가 난다 싶으면 사정없이 달려들어 뼈
가 드러나도록 파헤치는 게 그 녀석들의 못된 습성이거든.”
9번 아이언으로 한 차례 크게 스윙 연습을 끝낸 박 의원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황 회장은 웃지 않았다. 기자들이라……. 그는 잠시 잊고 있었던 염 은옥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그녀가 떠오르자 그는 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하필이면 왜 그날 그녀가 자신의 눈에 띄었으며, 또 불현듯 그녀를 안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인지, 황 회장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를 생각할 때면 꼭 무엇에 홀린 기분이었다. 아무튼 그날 라운딩 하는 동안 캐디로 줄곧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던 그녀를 그는 저녁이나 함께 하자는 핑계로 불러냈으며, 그녀는 막강한 컨트리클럽 회장의 초대를 황감한 눈빛으로 고분고분 받았던 것이다.
황 회장은 한 번 손아귀에 들어온 여자는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었다. 이미 그런 일 따위에는 이골이 나있던 터여서 ‘척 하면 삼천리’로, 여자에 따라 요리할 방법까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여자를 한두 번 건드려봤는가. 그는 염 은옥을 단숨에 해치울 요량으로 그날 밤 호텔 식당에서 억지로 술을 먹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곧 이혼할 처지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뱉어내며 동정을 구했다. 물론 그것은 그가 예전에 몇 번 다른 여자에게 써먹은 적이 있는 낡은 수법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염 은옥은 순진하게도 그 수법에 쉽게 걸려들었다. 으리으리한 식당 분위기에 압도당한 탓인지, 바보처럼 술잔을 납죽납죽 받아마시던 그녀는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그날 밤 그의 가슴에 안긴 것이었다. 그녀를 안으면서 그는 속으로 연신 ‘나이스 샷’을 외쳐댔다.
따지고 보면, 그녀는 괜찮은 여자였다. 요즘 여자들과는 다른 데가 있었다. 조선 시대 여자처럼 늘 다소곳했으며, 순종적이었으며,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았다. 따라서 돈도 많이 들지 않았다. 아파트나 오피스텔도 마다하는 여자였다. 단지 자신의 손으로 미용실을 차리는 게 꿈인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알량한 그의 사랑 하나였다.
그런대로 인물도 뒤떨어지지 않았던 터라 만약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이혼을 핑계로 한두 해쯤은 더 두고 장난감처럼 데리고 놀 수도 있었던 여자였다. 그러나 이젠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서 꼭 없어져야 할 여자였던 것이다.
#초콜릿 맛
샤워를 마친 황 회장은 벌거벗은 채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피곤했다.
그가 퇴계로 오피스텔을 찾는 것은 자신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였다. 아침부터 박 의원을 따라 홀을 돌면서 그는 너무 긴장해 있었다.
이젠 그 긴장으로 굳어진 근육을 풀어야 했다. 그리고 그 근육을 풀기 위해서는 현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안마해드려요?”
“조오치!”
황 회장은 현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월 천만 원에 장기 임대한 웃음이었다. 그는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녀의 큰 가슴에 눈길을 한 번 주었다가 곧 감아버렸다. 그는 그녀의 그 백치 같은 웃음이 마음에 들었다. 따지고 보면 그녀를 오피스텔에 끌어다 앉힌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자신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여자. 머리가 텅 빈 장난감 같은 여자. 그러나 둘이 엉키어 한참 가쁜 숨을 몰아 쉴 적에는 오히려 그녀가 자신을 장난감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열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열정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가 그녀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휴식이었다.
“다리에 알통이 다 배겼네!”
그녀의 몸에서는 농익은 오렌지 꽃향기가 풍겼다. 그것은 촉촉한 느낌이 드는 원색이었으며, 화려한 것만큼 세련미가 떨어지는 향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샤워 후에 그것을 늘 선호했다.
“아파요?”
“괜찮아. 좀 더 세게 주물러.”
침대에 올라앉은 현지는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히도록 황 회장의 종아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힘을 쓸 적마다 꽃향기가 더욱 진하게 그의 코를 자극했다. 그것은 염 은옥에게서 맡았던 것과는 다른 향기였다.
종아리의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 한동안 주무르던 현지의 손이 이윽고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넓적다리를 훑던 손은 사타구니를 쓸고 올라와 그의 물건을 거침없이 깨웠다. 그녀의 손에는 마력이 있었다. 한두 번 건드렸을 뿐인데도 죽은 듯 잠자던 그의 물건이 어느새 깨어나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모양을 보며 까르르, 소리 내어 웃던 현지가 마침내 그곳에 얼굴을 포갰다. 그의 몸통이 혀끝에 감전된 듯 저려왔다. 거기까지가 현지의 몫이었다. 그 다음 차례는 황 회장의 몫이었다. 몸통을 일으킨 그는 그녀를 난폭하게 찍어 눌렀다. 그리고는 형식적으로 젖가슴을 한 번 베어 물었다가 뱉고는 곧장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갔다. 천천히, 천천히… 그녀가 눈빛으로 말했으나 그것은 소용없는 눈짓이었다.
그는 싸움터에 나간 군졸마냥 막무가내로 서둘렀다. 어느새 혼자서 깃발을 들고 가파른 고개를 넘고 있었다. 씨익 씨익, 바람을 가르며 그는 연신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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