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문재인 대통령께 묻고 싶습니다. 지금 저희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의 주인공이 대통령님의 자녀 혹은 손자라고 해도 지금처럼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 발언은 지난달 22일 북한의 총격으로 살해당한 우리나라 해수부 소속 공무원 이 씨의 고등학생 자녀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손편지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남북 접촉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해 남북교류협력을 촉진하고자 한다”는 명분을 앞세운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이 발의돼 빈축을 사고 있다. 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기에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일까.
![3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평화철도 111 유세단 출정식에서 은하철도 999 철이와 메텔로 지명된 박주민 의원과 이재정 의원이 손을 잡고 웃고 있다. 2018.05.30.[뉴시스]](/news/photo/202010/427768_344709_4942.jpg)
-“지금 北 접촉 늘릴 시기인가” 野 반발···‘시기 논란’
북한이 우리나라 공무원 A씨를 상대로 ‘총살(銃殺) 만행’을 저지르고서도 책임자 처벌은커녕 일말의 사과도 하지 않은 채 ‘北 조선노동당 기념 열병식’을 거행했지만, 정작 국회에서는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증진’하는 법안이 등장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일요서울이 해당 법안을 추적했다.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영길 외교통일위원장과 이재정 의원 등 10인은 지난 14일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104510)’을 발의했다. 핵심은 “(북한 주민 접촉 시)신고대상인 접촉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통일부 장관에) 접촉 신고 수리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삭제한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 주민에 대한 우리 정부의 통제 절차를 ‘축소’하는 일련의 절차나 다름없다. 문제는, 북한이 우리나라 공무원을 사살(射殺)했지만 지금까지 어떤 사과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법안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군은 24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실종 사고와 관련, 북한의 총격에 의해 해당 공무원이 숨졌으며 시신을 일방적으로 소각하기까지 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2020.09.24.[뉴시스]](/news/photo/202010/427768_344710_5013.jpg)
앞서 북한은 지난달 22일 등산곶 일대에서 우리나라 해수부 소속 공무원 A씨를 향해 총격을 가한 후 그의 시신을 소각(燒却)했다. A씨의 고등학생 아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손 편지까지 썼는데, 북한은 지난 10일 조선노동당 기념을 명분으로 내세운 열병식을 거행하면서 전략탄도미사일(ICBM·SLBM)을 공개했다. 북한의 핵(核) 무력이 고도화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른바 장거리 북핵 투발 수단의 ‘완성 단계’를 보여준 일종의 ‘위협’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북한의 ‘위협’이 고도화됐지만, 정작 국회에서는 ‘남북교류협력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법안이 나왔다. 일요서울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10인이 내놓은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의 내용이 무엇인지 낱낱이 파헤쳐봤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이재정 의원과 송영길 의원. 송 의원은 제21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이다. [뉴시스]](/news/photo/202010/427768_344712_5117.jpg)
‘北 접촉 간소화’ 발의한 與···
문제가 되고 있는 법안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104510)’이다. 해당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의 이재정·인재근·윤재갑·김진표·진성준·송영길·양기대·김영호·오영환·도종환 의원이 발의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바로 ‘제9조2’인 ‘남북한 주민 접촉’에 관한 항목이다.
개정안에는 ‘남·북한 주민 접촉 시 사후 신고 허용’이 담겼다. 이 경우에는 ▲ 남북한 방문 ▲ 반출·반입 ▲ 남북협력사업 ▲ 수송장비 운행 ▲ 북한주민 참석 국제행사 ▲ 각종 남북교류협력 목적 사업 등이다. 북한 주민 접촉 시 기존에는 통일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하지만, ‘사전 신고 불가 인정 시’ 사후 신고 처리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제9조2’의 2에는 “방문승인을 받아 북한을 방문한 남한주민이 그 방문 목적의 범위에서 당연히 인정되는 접촉을 하는 경우에는 제1항의 접촉 신고를 한 것으로 본다”고 명시됐다. 기존에는 “방문증명서를 발급받은 사람이 그 방문 목적의 범위에서 당연히 인정되는 접촉을 하는 경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 해당하면 제1항의 접촉신고를 한 것으로 본다”고 돼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 주민 접촉 등 일련의 과정을 ‘축소하는’ 모양새다.
또한 동법 제9조2의 3에서는 “통일부장관은 제1항 본문에 따라 접촉에 관한 신고를 받은 때에는 남북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거나 국가안전 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신고의 수리(受理)를 거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개정안에는 “···접촉신고를 하고 북한주민을 접촉한 자는 북한주민 접촉결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변경돼 있어 역시 ‘축소’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의 법안은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일부 종합감사가 열린 가운데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서호 통일부 차관과 대화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0.10.23. [뉴시스]](/news/photo/202010/427768_344713_5249.jpg)
정부, 남북교류법 이미 내놔···‘재탕(再湯)’?
정부는 이미 한 차례 동일 내용이 담긴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검토한 바 있다. 통일부는 지난 5월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이와 같은 내용의 공청회를 열었는데, 이인영 現 통일부 장관의 전임자였던 김연철 장관이 추진했었다. 당시 개정안 공청회에서는 제안 이유에 대해 ‘민간 역할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남북교류의 취지를 확대하고자 한다’는 명분으로 ‘남북한 주민이 방문·반출·반입·교류협력·인도적대북지원·국제행사의 경우 미리 통일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하나, 사전 신고 불가능 상황 인정 시 사후 신고 허가’ 등이 담겼다.
게다가 “지방자치단체를 남북 간 협력사업의 주체로 명시해 남북 간 교류협력을 추진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논란이 거세지자 서호 당시 통일부 차관은 다음 날인 지난 5월2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남북교류협력법에 대해 “30년 된 옷”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북 경계심을 이완시킨다’거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 시 국가보안법과 상충된다’라는데,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지적했었다. 즉, 이번 발의안은 ‘재탕’인 셈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장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이후 한국농정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2020.05.19. [뉴시스]](/news/photo/202010/427768_344714_5352.jpg)
與 123인, 이 와중에 北 개별관광 안(案) 발의?
문제가 되는 법안은 이뿐만이 아니다. 북한에 의해 우리나라 공무원이 사살 당했지만, 정작 ‘북한 개별 관광’을 허용해 달라는 안건이 버젓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국회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더불어민주당 강병원·고민정·남인순·송갑석·신동근·이낙연 의원 등 123인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한 개별관광 허용 촉구 결의안(의안번호 2102945)’를 내놨다. 이들은 “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인 전기 마련을 위해 북한 개별관광을 허용하여 남과 북의 말길을 잇고, 원활한 교류와 소통을 재개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1월 ‘북미 대화만 쳐다보고 있지 않겠으며, 개별관광은 제재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모색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며 “북한 개별 관광은 우리 정부가 대북제재 하에서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 공무원의 피살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내용의 안건은 철회는커녕 ‘본회의 심의’를 앞두고 있다.
![11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의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2020.10.11. [뉴시스]](/news/photo/202010/427768_344715_5431.jpg)
北, 묵묵부답(黙黙不答)인데···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송영길 위원장 등이 발의한 해당 법안의 시기성은 적절했던 것일까.
앞서 북한은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은 지난 6월, 北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했다. 그러다 지난달 22일에는 우리나라 공무원을 사살했다. 두 사건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실은 북한은 아직도 우리나라에 대해 ‘책임자 엄벌’과 ‘재발 방지 노력이 담긴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정치권 안팎에서 쏟아진다.
이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 등은 “우리 국민이 북한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고, 북한이 반인륜적으로 국경을 통제하는 상황이라 지금은 접촉을 늘리자고 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어떤 해석이 더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에게 남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뉴시스]](/news/photo/202010/427768_344716_554.jpg)
조주형 기자 chamsae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