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마귀 전법
황사주의보는 며칠이 지나도 해제가 될 줄 모르고 있었다. 호흡을 할 적마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황사 바람이 매캐했다. ‘하우스’로 향하면서 차 일만은 자신도 모르게 또 얼굴을 찡그렸다. 생각보다 이번 일이 수월치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자꾸만 그를 엄습했다. 사흘 동안 미행한 결과는 그를 암담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방법을 바꾸어야겠다고 결론은 내렸지만 머리에 금방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하우스’에 들어서자 초저녁부터 간식거리를 준비하던 권 상사가 호들갑을 떨어대고 있었다.
“형님, 오늘은 ‘물건’이 제법 커요. 신도시에서 건재상으루다가 ‘쇠푼’께나 모은 놈이라는데, 이거 간만에 맡아보는 큰 ‘구찌’ 아니유?”
권 상사는 벌써부터 신바람이 난다는 투였다. 그러나 차 일만은 흥이 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권 상사보다 오히려 더 흥분했을 터이지만 그는 왠지 시큰둥했다. ‘일꾼’을 모으기 위해 바쁘게 전화를 걸고 있는 권 상사를 바라보던 그는 대기실로 들어가 수첩을 꺼내들었다. ‘꽁지’를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작은 숫자가 적힌 수첩에는 많은 사람들의 명단이 깨알같이 올라 있었다. 그는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뇌리에는 어느새 그동안 뿌려놓았던 ‘꽁지’를 이젠 슬슬 걷어 들여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큰일을 앞두고 이런 일 따위로 발이 묶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전에 마무리를 지은 뒤 가벼운 마음으로 출입하다가 잠적해야 한다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아직까지 ‘하우스’를 출입하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위장전술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일’을 마친 뒤 혹시라도 ‘짭새’들이 냄새를 맡고 탐문을 하더라도 ‘차 일만’이는 여전히 노름방에서 뒷전이나 지키고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그에게는 필요한 것이었다. 이 ‘아사리’판에서 누굴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십 년 지기도 하루아침에 서슴없이 ‘코를 풀어 버리는’ 것이 이 세계의 생리였다. 그러므로 꼬투리 잡힐 일은 애당초 비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이미 경험으로 터득하고 있는 터였다. 해가 넘어가자 일꾼들이 하나 둘 ‘하우스’로 찾아들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나타나자 잠자던 ‘하우스’가 갑자기 긴 잠에서 깨어난 듯 떠들썩해졌다. 그들이 나누는 화제란 어젯밤에 누가 ‘위너’였다는 것과 자신이 얼마를 잃었다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노름꾼치고 땄다는 놈 없고, 본전 생각나지 않는 놈 없다는 말은 사실이어서 그들의 대화도 결국은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차 일만은 그들이 테이블에 앉아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들이 지고 있는 ‘꽁지’에 대한 변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오늘 중으로 ‘꽁지’ 쓴 거 일부라도 회수할 작정이니까, 갚도록 해. 떼어먹고 싶은 놈 있으면 맘대로 해봐. 내 성질 알지?”
차 일만이 눈을 부라리자 일꾼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곱지 않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꽁지’ 운운 하는 ‘하우스’가 어디 있느냐는 투였다. 권 상사가 중간에 나서지 않았다면 판은 ‘물건’이 도착하기도 전에 파장을 맞을 뻔 하였다.
판이 익어갈 무렵 뒷전에 앉아 할 일 없이 담배 연기나 마시고 있던 차 일만은 갑자기 무릎을 쳤다. 문득 옛날 똑새 형이 지나가는 말투로 자랑하던 ‘사마귀 전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때 똑새 형은 사마귀 전법을 사용하여 ‘잠수’를 탄 ‘오거리파’ 행동대장을 보름 만에 잡아 개가를 올리지 않았는가. 사마귀 전법. 그는 이번 일에 그 전법을 사용하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쾌재를 불렀다. 비로소 골치를 썩이던 어려운 숙제를 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마귀는 죽은 곤충은 절대로 먹지 않는다. 녹색이나 황갈색으로 몸을 위장한 채 곤충이 잘 다닐만한 길목을 지키고 앉아 무작정 기다린다. 사마귀는 기다림의 천재다. 기다리다가 지칠 만도 한데 그 놈은 자신의 예감을 믿는다는 듯이 끈질기게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러다가 곤충이 가까이 다가오면 잽싸게 잡아채 먹이를 바이스처럼 생긴 앞다리로 붙잡고는 찢어먹는다. 벗어나고자 파드득 거리는 곤충을 날카로운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
사흘 동안 미행한 결과 염 은옥에 대해서는 숙지가 완전히 끝난 상태였다. 어머니와 단 둘이, 쥐방울만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살고 있는 그녀는 늘 시간에 맞춰 다니는 길도 똑같았다. 아침 10시경에 배를 자랑스레 내밀고 집을 나오면 곁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미용실로 향했으며, 그 뒤로는 그곳에서 대개 하루 온종일을 꼼짝 않고 보내다가 저녁 7시 무렵이 되면 다시 오던 길을 되짚어 또각또각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게 고작이었다. 그만한 얼굴이면 얼굴값을 하느라고 한두 차례 곁길도 갈만 한데, 사흘 동안 그녀는 그런 일 따위를 한 번도 저지르지 않았다. 승용차도 있었지만, 승용차는 언제 사용하였는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채 지하 주차장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경미한 교통사고로 위장한 고전적인 접근 방법도 고려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그것은 그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여서 새벽 댓바람부터 교회를 다녀오면 오전 11시쯤 쓰레기를 버리고는 곧이어 강아지를 안고 내려와 잠시 산책을 하다가 들어가 오후까지는 무엇을 하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는 때는 오후 4시쯤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내려오는 때뿐이었다.
사흘 동안 차 일만의 머리를 아프게 했던 문제는 준비한 전화선을 사용할 장소가 마땅히 없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미용실까지의 거리는 매우 짧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움직이는 시간대가 환한 대낮, 비교적 사람의 왕래가 잦은 시간대에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백주 대낮에 일을 벌일 수는 없지 않은가. ‘짭새’들이 ‘바지저고리’가 아닌 이상 그것은 내놓고 ‘날 잡아 잡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모한 행위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차 일만은 자신의 오피스텔 한쪽 구석에 마네킹을 갖다놓고 목을 조르는 연습을 반복하면서도 액션을 취할 장소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서두를수록 적당한 장소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아니었다. 사마귀 전법이 그를 밝게 했다. 그래, 길목을 골라 덫을 놓고 무작정 기다려보는 거야. 기다리다 보노라면 때는 반드시 올 터인즉……. 그는 비로소 해결책을 찾은 느낌이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사마귀처럼 느긋하게 눈을 번득이며 기다리다가 단 한 번의 기회에 콱, 물어버리는 전법……. 그는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자신을 쥐어박고 싶을 정도였다. 밤이 깊어가자 일찍 밑천이 떨어진 일꾼들이 ‘꽁짓돈’을 찾기 시작했다. 물이 이렇게 좋은 데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여기저기에서 손을 내미는 무리들이 늘어났다. “큰 형님, 백만 원만 씁시다…….” “나도요, 형님.” 다른 때 같았으면 오랜만에 물을 만난 탓에 차 일만도 신바람이 났을 터다. 지난번에 강 승길로부터 계약금조로 받은 천만 원도 고스란히 있어 ‘꽁짓돈’도 풀자면 넉넉한 편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쟈끄’를 잠그기로 이미 마음을 굳힌 차 일만은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꽁지’가 바닥을 치는 경우는 이 세상 ‘하우스’ 어디에도 없는 일이라면서 그들의 원망이 꼬리를 이었으나,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결국 판을 연장시키기 위해서는 별 수 없이 ‘하우스 장’인 권 상사가 돈을 푸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그는 차 일만을 마뜩찮은 얼굴로 쳐다보다가 임시 ‘꽁지’ 노릇을 자처하고 나섰다. ‘고리’를 뜯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인 셈이었다. “오늘은 깜씨 형님이 멘스를 하는 날인가부다.”
식어지는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권 상사가 농담으로 얼버무리며 차 일만을 건너다보았다. 그가 앞에 나섬으로써 판은 다행히 깨지지 않았다. ‘물건’은 ‘물건’답게 잃어도 계속 베팅을 해대고 있었다.
“정말 탱크네…….”
“부르도자야…….”
사람들은 짐짓 혀를 내두르며 ‘물건’을 추켜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이런 판에서 돈맛을 못 본다면 평생 후회할 거라는 속셈이 걸려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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