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달리아 사건은 범인이 검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살인의 동기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필자가 블랙 달리아 사건을 소개하는 것은 ‘영웅주의’에 대한 현대인들의 비뚤어진 이상 심리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현대인들은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흉악한 범죄자들에게서조차 ‘영웅’의 전형을 보고 있다.
조직폭력을 다룬 영화가 관객들에게 끝없이 인기를 끌고 있고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전무후무한 악마 한니발 렉터박사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갈채를 보내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심리 깊은 곳에 잠재하고 있는 ‘살인’에의 위험한 ‘선망’일지 모른다.
1947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는 해였다.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 엘리자베스 쇼트라는 웨이트리스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검은 색의 속옷을 즐겨 입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블랙 달리아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나이는 22세로 귀엽고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은막의 스타가 되기 위해 할리우드가 있는 로스앤젤레스를 찾아왔으나 스타가 되려는 대다수의 여자들이 그렇듯이 술집에 나가서 웨이트리스 일과 매춘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론 그녀의 매춘은 아르바이트 수준이었다.
1947년 1월, 로스앤젤레스의 쓰레기 처리장에서 토막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는 젊은 여자로 놀랍게도 허리 부분에서 두 동강으로 절단되어 있었다. 경찰은 끔찍한 시체의 모습에 전율했다.
법의학자들은 철저하게 시체를 검시했다.
그 결과 시체가 천장에 매달려 폭행을 당한 뒤에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시체의 주인은 엘리자베스 쇼트로 검은 속옷을 입고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은 이 사건이 보도되자 경악했다. 신문과 방송은 선정적인 논조로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신문의 판매 부수가 껑충 뛰어 오르고 시청률이 기록적으로 올랐다.
경찰은 최대의 수사력을 기울여 수사에 착수했으나 끝내 범인을 검거할 수 없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블랙 달리아 사건이 매스컴(주로 신문)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이와 유사한 사건이 6건이나 발생했다.
누가 보아도 모방범죄라고 볼 수 있는 사건들이었다. 6건의 토막살인들 중에는 범인이 검거된 것도 있고 검거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물론 6건의 토막살인이 모두 모방범죄라고는 볼 수 없다. 건전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살인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적어도 경찰에 체포될 염려가 없다면 그러한 모험을 감행하려고 한다. 마치 곤충의 다리를 하나 하나 떼어내고 다음엔 날개를 찢어서 죽이는 어린아이들처럼 현실 속에서도 살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블랙 달리아 사건은 20세기, 혹은 21세기의 살인사건 중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모방범죄의 폭발적인 증가는 블랙 달리아 사건에서 전형을 볼 수 있다. 블랙 달리아 사건을 모방한 살인자들 중에는 희생자의 나신에 검은 속옷을 입혀 놓았는가 하면 블랙 달리아라고 써놓은 자도 있었다.
20세기, 특히 21세기의 살인사건은 이러한 매체들의 선정적인 보도로 인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블랙 달리아 사건이 화제가 되자 스스로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수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매스컴은 그럴 때마다 이들에 대해 대서특필했다.
경찰은 엉터리 범인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고 이들은 의기양양했다. 이들을 단순하게 정신병자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는가.
살인은 죄악이다. 살인자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동기 없는 살인도 이유라고 본다면) 살인을 하는 것이지만 희생자나 희생자 유가족들로서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비참한 일인 것이다.
제 5 화 종탑위의 살인마Ⅰ
살인은 정신적인 작용인가. 화학적인 작용인가. 사실 정신적인 것인가 화학적인 것인가를 분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리차드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유전자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모든 병인(病因)과 살인 역시 유전자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건강한 유전자가 아니라 돌연변이형 유전자라든가 병으로 유전자가 변질되었을 때 살인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울러 살인의 심리를 실행에 옮기게 하거나 제어하는 것도 유전자의 작용이라고 본다면 화학적 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사건에서 뇌에 손상이 있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살인의 원인을 찾는데 매우 유효한 일이 될 것이다.
미국인 찰스 호이트만은 플로리다에서 평범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해병대를 제대한 뒤에 텍사스 대학 건축과에 입학했고 예쁘장한 아내와 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얌전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플로리다에서 살고 있을 무렵 호이트만의 아버지는
매우 난폭한 사람이어서 걸핏하면 어머니와 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호이트만은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증오했다. 어머니도 그에게 따뜻하고 자상한 어머니는 아니었다.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한 뒤에는 호이트만에게 심하게 잔소리를 했다.
그는 잔소리를 하는 어머니조차 증오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어머니를 동정하기도 했다.
호이트만의 어머니는 마침내 이혼을 한 뒤에 텍사스의 오스틴으로 이주했다. 호이트만도 어머니를 따라 텍사스로 이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지극히 평범한 청년에 지나지 않았다.
이 무렵 월남전의 열풍이 미국을 휩쓸었다. 반전데모도 격렬하게 벌어졌다.
미국이 월남전으로 홍역을 앓고 있을 때 호이트만은 해병대에 입대했으나 그렇게 오랫동안 복무하지는 못했다. 그는 해병대의 판에 박힌 생활에 적응할 수 없었다.
해병대를 제대한 뒤에 호이트만은 텍사스로 돌아와 텍사스 대학에 입학했다. 캐서린이라는 아름다운 아가씨와 결혼도 했다. 그러나 캐서린과의 결혼 생활은 그가 꿈꾸었던 것처럼 순탄하지가 않았다.
호이트만은 이 무렵부터 캐서린과 사소한 일로 자주 언쟁을 하게 되었다. 가까운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어머니와도 언쟁을 했다.
그는 사소한 일에 화를 냈고 어머니와 캐서린은 그런 호이트만에게 정신병원 상담을 권했다. 그는 뇌에 통증을 느끼고 있었으며 이따금 기억이 완전히 끊기는 현상도 발생했다. 때때로 자신도 알 수 없는 격렬한 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1966년 3월, 호이트만은 텍사스 대학의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했다.
아내와의 언쟁이 심해지고 있어서 자신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떤 문제로 왔습니까?”
의사는 그를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살폈다. 호이트만의 머리는 보기 좋은 금발이었고 미국을 휩쓸던 히피들과 달리 단정했다. 체구는 건장했다. 해병대 출신의 청년답게 머리가 짧았다.
“저는 자주 환상을 봅니다. 그 때문에 세상이 살기가 싫습니다.”
호이트만이 수줍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어서 그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사는 호이트만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게 한 결과 그가 지독한 염세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환상을 주로 봅니까?”
“종탑 위에서 길가는 사람들을 쏘아 죽이는 환상을 봅니다. 누군가 자꾸 그렇게 시키는 것 같습니다.”
“누가 시키지요?”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일은 없습니까?”
“작은 일에도 화를 자주 냅니다. 그래서 아내와 자주 다투는 편입니다.”
정신과 의사는 호이트만이 상당히 공격적이라는 것을 알고 안정제를 처방했다.
그러나 호이트만은 의사와 상담하고 나온 뒤에 안정제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대신 정신과 의사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도와주신 일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약으로는 제 안의 악마를 이길 수 없을 것같습니다. 이제는 저 혼자서 제 안의 악마와 싸우겠습니다.”
1966년 7월의 일이었다. 정신과 의사는 호이트만의 증세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이트만은 나름대로 자신의 내부에 있는 그 어떤 것과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7월31일 호이트만은 유서를 썼다.
좥…내 안에서 무엇인가 나를 격렬하게 자극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아내를 죽이고 싶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죽이고 싶다는 생각과 환상이 나의 뇌리를 지배한다. 인생은 몹시 고달프다. 나는 세상을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혼자 죽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좦
호이트만의 유서는 두서가 없었다. 유서의 내용으로도 그가 심각한 우울증이나 대사회적인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7월31일 밤, 호이트만은 어머니의 아파트로 갔다. 어머니는 평소처럼 그를 퉁명스럽게 맞이해 주었다.
호이트만은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였다. 어머니를 살해한 뒤에는 울었다. 어머니를 살해한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어머니에게 애증을 갖
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라는 쪽지를 사건 현장에 남겼다. 사랑과 증오의 이율배반적인 표현이었다.
호이트만은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의 아파트에는 아내 캐서린이 외출에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아내 캐서린도 흉기로 살해했다.
후회나 미련 같은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는 아내 옆에서 잤다. 날이 밝았다. 8월1일 아침이었다.
그는 해병대에서 제대할 때 가지고 나온 해병 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는 배낭에 총기류를 쑤셔 넣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마신 뒤에 시내로 나가서 라이플총의 탄환을 한 박스나 샀다. 라이플총은 그가 해병대에서 제대한 뒤에 구입한 것이었다. 그는 핸드카를 빌려서 총이 담긴 배낭과 탄약 상자를 핸드카에 싣고 텍사스 대학으로 갔다.
그때는 이미 오전 11시가 약간 넘어 있었다. 날씨는 좋았다.
텍사스는 8월1일의 작열하는 태양이 뜨겁게 내려쬐고 있었고 공기는 건조했다. 대학 캠퍼스에는 방학 중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그는 대학교의 전망대를 향해 갔다. 텍사스 대학은 전망대가 있었는데 많은 시민들이 유료인 전망대에 올라와서 텍사스 대학의 캠퍼스를 관람하고는 했다.
전망대의 접수구에는 두나 타운슬레이라는 아가씨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배낭에서 라이플총을 꺼내 개머리판으로 타운슬레이의 머리를 후려쳤다. 해병대에서 받은 훈련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여 적을 죽이듯이 손쉽게 타운슬레이를 죽였다.
타운슬레이는 두개골이 부서져 죽었다. 접수구 앞이 온통 피로 흥건했다. 그는 타운슬레이의 시체를 끌어다가 책상 안쪽에 숨겼다.
그때 19세의 한 학생이 접수구 앞에 나타났다. 그는 가족들을 전망대에 데리고 올라가 텍사스 대학을 구경시키려던 학생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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