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방불명이란 게 무슨 뜻이에요?”
모르나가 이스토반에게 어깨를 기대고 물었다.
“집주인이 없어졌다는 뜻이지.”
이스토반이 모르나의 어깨를 끌어안고 말했다. 이스토반도 친코타에 집을 장만한 것이 흡족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 모르나의 어깨를 끌어안은 채 집을 둘러보았다.
“집주인은 어디로 간 걸까요? 여행 중인가요?”
모르나가 이스토반에게 물었다.
“전쟁 중이니까 죽었는지도 모르지.”
“여행을 하다가 나중에 돌아와서 집을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겠죠?”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이스토반과 모르나는 집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집안은 전체적으로 손을 보아야 할 것같았지만 그런 일은 전쟁이 끝난 뒤에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들은 본채 옆에 있는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헛간처럼 생긴 작은 건물이었으나 안에는 잡다한 작업 도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스토반은 작업장을 수리하여 대장간으로 사용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모르나는 작업장으로 들어서자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자 착한 남편 이스토반이 그녀의 어깨를 꽉 안고 입을 맞췄다.
“저 드럼통에는 뭐가 들었을까요?”
모르나가 벽쪽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드럼통을 가리키며 이스토반에게 물었다. 드럼통은 모두 일곱 개나 되었다.
“글쎄….”
이스토반은 말끝을 흐렸다. 그도 드럼통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뭐가 들었는지 한 번 살펴봐요.”
모르나의 말에 이스토반은 드럼통 가까이 다가갔다. 드럼통은 뜻밖에 납땜으로 단단하게 봉인되어 있었다. 이스토반은 드럼통을 손으로 두드려보
았다. 드럼통에서 턱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로 미루어 드럼통이 꽉 차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비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나가 이스토반의 옆으로 다가왔다. 작업장 안에 이상할 정도로 차가운 냉기가 돌고 있었다.
“뭐가 들었어요?”
모르나는 남편 이스토반이 없었다면 차가운 한기 때문에 작업장에 들어올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르겠어. 드럼통 뚜껑이 납으로 봉인이 되어 있어서 안을 볼 수가 없어.”
“석유가 들어있는지 모르니까 한 번 열어봐요.”
모르나가 말했다. 이스토반은 작업장에서 지렛대를 찾아 납땜이 되어 있는 뚜껑을 열기 시작했다. 그 시간은 의외로 오래 걸렸다. 이스토반은 땀을 뻘뻘 흘리며 드럼통 뚜껑을 열고 안을 들려다보다가 갑자기 입을 틀어막고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모르나가 놀라서 드럼통 안을 들여다보다가 헉, 하고 자지러지는 신음을 내뱉으며 그대로 주저앉아 의식을 잃었다. 드럼통 안에는 놀랍게도 알몸의 여자 시체가 들어 있었다. 이스토반은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하여 아내 모르나를 안아서 침대에 눕힌 뒤에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반신반의하며 달려와 작업장에 있는 드럼통 일곱 개를 모두 개봉했다. 부다페스트 경찰은 일제히 구토를 하면서 경악했다. 나머지 여섯 개의 드럼통에도 발가벗은 여자들의 알몸 시체가 마치 통조림처럼 한 구씩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이러한 살인사건은 헝가리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흉악한 것이었다. 드럼통에서 발견된 일곱 구의 알몸 여자 시신들, 그것은 부다페스트 경찰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시체는 사망한지 오래되었으나 밀폐된 공간에 있었기 때문인지 다행히 부패되지는 않았다. 부다페스트 경찰은 즉시 수사에 착수했으나 피해자들의 신원을 밝힐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난처했다.
여자들의 손에서 지문을 채취할 수 있었으나 여자들이 범죄 전과가 없었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부다페스트 당국은 게자 비알로스키 경감에게 사건의 수사를 맡겼다. 게자 경감은 부다페스트의 수많은 살인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하여 명성을 얻고 있었다.
부다페스트의 경찰의학연구소는 시체를 검시하여 적어도 2, 3년 전에 여자들이 살해된 것이라고 소견을 밝혔다. 2년 전이면 1914년이고 그보다 더 오래일 수도 있었다. 게자 경감은 2, 3년 전의 일을 수사해야 하는 난관에 부딪쳤다. 그는 탐문수사를 시작했다. 집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친코타의 주민들 중에 한 사람도 없었다. 2년 전에 한 남자가 문제의 농가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만 간신히 밝혀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은 힘들겠어. 그는 신비에 싸인 인물이야.”
게자 경감이 형사들에게 말했다.
“집주인은 주위 사람들과 일체 사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집에는 얼마 있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부다페스트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탐문수사를 벌이고 돌아온 경관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사체의 신원을 밝혀서 살인마를 찾는 수밖에 없어.”
게자 경감은 수사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게자 경감은 일단 1913년부터 행방불명이 된 여자들의 명단을 뽑았다. 헝가리 전역에서 행방불명된 여자들의 숫자는 자그마치 450명에 이르렀다. 게자 경감은 수사 경찰을 총동원하여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6개월 만에 450명이 3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들은 친척이나 친지들도 없는 여자들로 누구 하나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여자들이었다.
“경감님, 이 여자를 한 번 조사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형사 한 사람이 행방불명자 명단 중에서 한 여자의 이름을 지적하며 말했다. 안나 그라노프라는 이름의 여자였다.
“뭘하는 여자야?”
“요리사입니다. 36세로 경기병 연대의 대령 미망인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미망인은 아직 살아있나?”
“그럼요. 행방불명 신고도 이 여자가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망인에게 가보자구.”
게자 경감은 형사들과 함께 안나 그라노프가 마지막으로 일을 했다는 경기병 연대 대령 미망인의 집으로 달려갔다.
미망인은 안나 그라노프가 자신의 집에서 일을 한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안나 그라노프가 3년 전에 더 좋은 일자리를 알아본다면서 집을
나간 뒤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미망인은 안나 그라노프의 소개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소개장은 안나 그라노프가 미망인의 집에서 일하기 전의 여주인이 써준 것이었으며 이름과 나이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사진까지 붙여져 있었다.
“이걸로 대조해보면 사체를 확인할 수 있겠군.”
게자 경감이 소개장을 부하 경관들에게 내주었다. 형사들은 사진과 드럼통 속의 사체 얼굴을 찍은 사진을 대조해 보았다. 확실히 안나 그라노프의 사진이 일곱 구의 시신 속에 있는 한 여자의 사진과 일치했다. 이로써 일곱 구의 시신 중 한 구의 신원이 밝혀진 것이다.
“안나 그라노프양의 소지품은 없습니까?”
게자 경감이 미망인을 다시 찾아와 물었다.
“트렁크가 있어요. 언젠가는 찾아올 것만 같아서 다락 속에 보관하고 있었어요.”
미망인은 다락 속에 깊숙이 처박아 두었던 안나 그라노프의 트렁크를 게자 경감에게 건네주었다. 게자 경감은 안나 그라노프의 트렁크를 샅샅이 조사했다. 그녀의 트렁크에는 자질구레한 옷가지들과 함께 ‘구혼광고’에 붉은 줄을 친 신문도 보관되어 있었다.
…마음씨 고운 여성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아내와 사별한 남자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미혼 여성, 혹은 저처럼 결혼에 실패한 우아한 미망인과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관심이 있는 분은 부다페스트 우체국 사서함 717호로 연락을 주십시오.…
구혼광고의 내용이었다. 수사는 비로소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게자 경감은 구혼광고를 실은 ‘페스티헬렙’ 신문사의 광고 담당자를 조사했다. 신문에 구혼광고를 낸 사람은 베라스키라는 이름으로 20여회나 광고를 하고 있었다. 살인마는 구혼광고로 여자들을 유인한 뒤에 살해한 것이 분명했다.
주소가 타페트시로 되어 있었으나 가공의 주소였다. 신문사에 대한 조사는 그다지 수사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게자 경감은 이번에는 사서함을 개설한 우체국을 조사했다. 그 결과 사서함 개설자는 엘레나 나기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게자 경감이 주소를 추적했으나 타페트시의 장의사로 되어 있는 가짜 주소였다. 살인마가 상당히 치밀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방법은 하나 밖에 없어.”
게자 경감은 기자회견을 하고 엘레나 나기의 필적을 공개했다. 사서함 사용료로 지불한 우편환의 필적이었다. 그러자 시민들이 곧바로 제보를 해왔다. 로자 디오시, 27세의 아름다운 여성이 자신이 엘레나 나기라고 불린 베라스키의 정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1914년 세르비아의 포로수용소에서 보낸 베라스키의 편지를 받은 것이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그 후에는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는 것이다.
“베라스키는 어떤 인물입니까?”
게자 경감은 베라스키가 살인마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물었다.
“그는 30대 후반이에요. 나이가 얼마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양철공이에요. 아름다운 금발머리에 푸른 눈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여자를 사로잡는 깊고 부드러운 목소리… 그런 남자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거예요.”
로자 디오시는 꿈꾸는 듯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게자 경감은 베라스키가 틀림없이 정력이 왕성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그를 처음 만났습니까?”
“1914년 봄이었어요.”
“그는 언제 군대에 나갔습니까?”
“1914년 7월이요.”
1914년 7월이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시기였다.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네.”
로자 디오시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로자 디오시 외에도 여러 사람들의 증인이 속속 나타났다. 그 여자들의 증언은 한결같이 베라스키가 아름답고 멋진 남자였으며 섹스에 강한 남자라고 말했다. 여자들은 대개 구혼광고를 보고 찾아와 기꺼이 돈과 몸을 바쳤다. 베라스키는 여자들에게 애인이 되어달라고 말한 뒤에 여자들이 응하면 지참금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지참금을 바친 여자들은 작업장에서 살해되어 드럼통 속의 통조림이 되었다.
게자 경감은 육군성을 통해 베라스키의 행적을 추적했다. 베테랑 형사와 살인마의 대결이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베라스키는 1914년 7월 보병연대에 입대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7월14일에 발발했으므로 그 이후의 일이었다. 그는 입대하자마자 바리에보 공방전에 참가했다. 바리에보 공방전은 4개월이나 계속된 치열한 전투였다.
그러나 헝가리 보병연대가 패배하여 베라스키는 세르비아군의 포로가 되었다. 로자 디오시가 베라스키의 편지를 받은 것은 이 무렵이었다.
그러나 헝가리의 보병연대는 헝가리 조셉 대공의 사열을 받고 있는 베라스키의 사진을 게자 경감에게 보내왔다. 수많은 병사들과 함께 사진에 찍힌 베라스키는 확실히 보기 드문 미남이었다.
게자 경감은 베라스키의 사진을 확대하여 부다페스트의 모든 사창가에 뿌렸다. 베라스키의 희미한 사진을 알아보는 매춘부들은 의외로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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