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과학수사파일 제 15 회
대한민국 과학수사파일 제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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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12-08 11:08
  • 승인 2006.12.0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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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발 혈액형 감정시 반복실험에 의해 오판 방지


모발 감정에 대한 질의

신고를 받고 사고현장에 도착해보니, 8세 가량의 남자아이가 도로상에 두개골이 파열되어 이미 숨져 있었다.
1985년의 일이었다. 수사를 시작한 끝에 목격자는 전혀 없고 타살의 흔적이 없어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되었다. 수사요원은 사고 차량을 수배 중 용의차량으로 추정되는 트럭 운전사를 검거했다. 그는 타이어 4개의 혈흔 검출 및 혈액형을 의뢰했고, 타이어에 부착된 머리카락을 의뢰하여 머리카락의 동일성 유무를 문의해 왔다.
실험실에서는 감정물에 대한 실험을 실시한 결과 4개의 타이어 중 1개에서 혈흔이 검출되었으며, 인혈로 증명되었으나 시료가 부족해 혈액형은 판정되지 않았다.
모발의 감정 결과에서 피해자 및 현장 타이어의 머리카락은 형태학적으로는 모발의 모첨부, 수질, 피질, 모근부 색깔 등이 서로 유사한 소견이었으며, 모발의 혈액형은 각각 O형으로 판정되었다.
나는 이상과 같은 감정 결과를 감정서로 작성하여 담당수사본부로 통보했다. 타이어에서는 인혈이 증명되었으며, 머리카락은 피해자의 것과 동일한 혈액형이었고, 형태는 서로 유사하다는 감정내용으로 보아 거의 범행차량이 틀림없음을 확신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수사요원들은 감정 내용을 더욱 분명히 해놓지 않고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간단한 내용의 감정 결과지만 여러 각도에서 질의를 해 최선의 답을 미리 구해 놓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때는 DNA분석법이 범죄수사에 도입되기 전이었다.
결국 해당 경찰서에서 몇 가지 질의를 해왔다.
- 현장(타이어) 및 피해자 머리카락의 유사성 정도는 동일하다는 뜻인가?
“유사하다는 것은 동일하다는 뜻이 아니며, 모발의 형태, 즉 모발의 모첨부, 수질, 피질, 색깔 등에서 상이점보다는 유사점이 더욱 많이 관찰된다는 의미다.”
- 현장 및 피해자의 머리카락은 동일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가?
“상이한 것보다는 동일한 것에 더욱 가까운 모발이다. 모발의 형태로는 ‘동일하다’, ‘동일하지 않다’는 표현을 할 수 없다. 동일인의 모발이라도 모발의 생성시기, 생성부위 등에 따라 모발의 형태가 동일하지 않고 차이가 있으며, 타인의 모발이라도 유사한 형태의 모발이 있을 수 있다.
동일인의 모발 여부가 중요하나 이상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동일인이라도 모발의 형태가 일정치 않은 이유 때문에 모발의 형태로는 동일인의 모발 여부를 증명해 낼 수 있는 기준이 없다. 따라서 다만 모발의 형태가 서로 유사하다, 또는 상이하다는 표현을 적용하고 있다. 증거물로서의 모발의 가치는 동일인의 모발임이 증명되지 않기 때문에 모발 자체만으로 동일인의 모발이라고는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유사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뿐 사건의 상황 및 정황증거들의 뒷받침이 더욱 중요하다.”
- 현장 혈흔 및 피해자의 혈액형이 O형으로 반응되는 바, 모발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있는가?
“모발의 혈액형이 O형으로 반응되는 것은 본 사건 감정물의 모발이 반드시 동일인의 모발이기 때문에 같은 O형으로 반응했다는 뜻은 아니다. 각 모발의 혈액형이 각각 O형의 현상으로 반응한 모발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각각의 모발은 O형인 혈액형을 가진 동일인일 가능성도 있으며, 그리고 동일인은 아니지만 혈액형이 같은 O형인 사람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만약 어느 한쪽의 모발의 혈액형이 같은 O형이 아닌 다른 혈액형인 A형 등으로 반응했다면 절대적으로 동일인의 모발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다.”
- 감정서 비고란에 ‘비분비형’인 사람의 경우 O형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고 했다. 본 건의 모발 혈액형은 비고란의 내용과 같이 예외로 혈액형 반응을 보인 것인가?
“한국인의 경우, 혈액형 물질이 타액, 모발 및 기타 인체분비액 등에 분비되지 않는 ‘비분비형’인 사람이 15퍼센트 정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혈액이 아닌 모발 등에서 혈액형 감정 결과가 O형으로 반응할 경우, ‘비분비형’에 관한 단서를 기재하고 있으나 본 감정물 모발의 혈액형은 ‘비분비형’이기 때문에 혈액형 물질이 분비되지 않아 O형과 같은 현상을 나타낸다.
감정서 비고란에 ‘비분비형’이기 때문에 O형과 같은 현상을 보인 것이 아니고, O형 혈액형인 모발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항H’라는 항혈청을 병행 사용하여 비분비형이 아닌 모발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 기타 참고사항이 될 만한 사항이 있는가?
“본 감정물, 현장 및 피해자의 머리카락은 동일인의 모발인지는 판별되지 않는다. 따라서 ‘동일한 혈액형을 지닌 유사한 형태의 모발’이라 함이 가장 객관 타당성이 있는 표현이다.”

또 다른 살인사건에서 어느 경찰서로부터 모발감정에 대한 질의를 해왔다.
- 모발에서 A형의 반응이란 어떤 의미인가?
“모발의 혈액형, 감정 결과가 A형의 반응을 보인다는 의미는 곧 그 사람의 혈액형이 A형이라는 뜻이다.”
- 혈액에 의한 혈액형 감정의 정확성이 100퍼센트라고 할 때, 모발에 의한 혈액형 감정의 정확성은 어느 정도(%)이며, 오판의 가능성은 없는가?
“모발 감정의 정확성을 퍼센트로 표현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발에서의 혈액형 감정 방법은 여러 단계의 실험조건 및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모발의 전처리, 감작과정, 모발의 세척, 해리과정, 판독과정, 어느 한 단계의 과정이라도 실험조건이 적합하지 않을 때에 혈액형이 오판되기도 하나 상당히 드문 경우다. 반복실험에 따라 혈액형의 오판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발의 혈액형 감정 시에 오판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발 혈액형의 감정 실험조건 및 실험방법이 부적합한 경우 생기는 오판의 가능성이 있다. 둘째, 변이형인 혈액형을 가진 사람의 혈액형 감정 시 혈구 응집의 정도가 불규칙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다. 셋째, 모발용 약품, 특 탈모제, 염색약, 탈색약 등을 사용한 모발의 경우, 넷째, 오염된 물, 흙, 인체분비액 또는 혈액 등에 침윤되었던 모발의 감정 시 오판의 가능성이 있다.
물론 현재 실시하는 모발의 혈액형 감정방법은 앞에서 열거한 오판의 가능성을 모두 제거할 수 있도록 설정된 실험방법이므로 혈액형의 오판은 거의 없다. 또한 반복실험에 의해서도 오판은 방지되고 있다.”
- 모발이 6일 동안 개울에 방치되었을 경우에도 혈액형 감정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그 정확성은 어느 정도인가?
“모발의 보존상태가 불결하여 모발이 부패하면 혈액형의 판정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모발이 부패하지 않는 한 상당기간(1~2년 이상), 물 또는 옥외에 방치된 모발이라도 혈액형 판정은 가능하다.
다음은 현장에서 모발 채취 시의 주의사항이다.
모발의 길이는 약 6센티미터 이상 되어야 혈액형 판정이 가능하며, 형태의 비교를 위해서는 최소한 3점 이상의 모발이 채취되어야 한다. 또한 모발뿌리가 부착된 것이 유리하다.”
1980년대는 모발의 개인식별을 더욱 세분화하기 위해서 모발뿌리 세포에서의 효소형 검출 및 주사형 전자현미경에 의한 형태의 관찰은 물론 원소분석 등을 활용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DNA 분석법이 도입되어 세포핵 DNA분석, 미토콘드리아 DNA분석 등을 실시하여 동일한 모발 여부에 대한 개인식별은 거의 완벽하게 해결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일러스트 이영우>
www.minggu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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