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잔인했던 어린이 유괴 사건
1991년 10월 어느 날. 오후 6시경 경기도 소재 공터에서 어린이들이 놀고 있었다.
이때 한 승용차가 아이들 앞에 멈추어 섰다.
어느새 이 어린이들 중 L군(7세)이 승용차 조수석에 태연히 앉아 있었다.
문방구를 알려주면 장난감 총을 사주겠다는 낯선 아저씨의 말에 L군은 귀가 솔깃했던 것이다.
L군 집에서는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즉시 관할 파출소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서에서는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그러나 어린이 유괴범의 조속한 검거는 물론 어린이의 신병 보장을 생각해야 했다.
당일 밤 9시경. L군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L군의 고모가 전화를 받았다.
“내가 L군을 데리고 있으니 부모를 바꿔달라며 다시 전화를 하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수사요원들은 L군 집에 대기하며 범인으로부터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다음 날 새벽 2시경 전화벨이 울렸다.
“내가 L군을 데리고 있으니 아이를 살리고 싶으면 오늘 오후 2시까지 현금 1,500만원을 준비하라”
는 범인의 음성을 녹취하는 데 성공했다. 곧바로 녹취된 범인 목소리를 테이프에 담아
각 방송사에 보내고 수사요원들은 모두 녹음기와 테이프를 가지고 다니며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서 목소리를 들려주며 범인 검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사건 발생 12일 후 낮 11시경.
어느 한 청년이 범인의 목소리가 귀에 많이 익은 음성이라며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을 제보해 왔다.
수사요원은 용의자가 다니는 회사를 방문하여 목소리를 회사 직원에게 들려주며
확인시킨 결과 그들의 직장상사인 G씨(23세)의 목소리 같다는 말을 들었다.
수사요원은 G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검거에 박차를 가했다.
수사요원들은 G씨의 소재 파악을 위해 탐문수사를 하던 중 G씨의 애인인 K양(25세)을 찾아냈다.
애인 K양을 설득하여 유괴범인 G씨에게 호출기로 연락을 취하도록 하고
밤 10시경 X다방에서 만나기로 약속해 놓았다.
미리부터 X다방엔 수사요원들이 잠복해 있었고 용의자 G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수사요원들은 지체 없이 G씨를 덮쳐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G씨는 조그만 사업을 시작했으나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았고
도박으로 거액의 빚까지 지고 사업도 망하자 어린이 유괴를 계획했다.
대형 가방을 미리 구입했고, 유괴 상대를 물색하기 위해 여기저기 배회하다 L군을 유괴하는데 성공하고
L군 집에 두 차례나 협박전호를 걸어 돈을 요구했던 것이다.
용의자는 L군이 울면서 “집에 데려다 달라”고 계속 애원하자 L군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숨진 것을 확인한 용의자는 준비했던 대형 가방에 숨진 L군과 무게 10kg의 돌을 함께 넣어
4km 떨어진 하천에 던져버린 다음 태연하게 협박전화를 했다.
국과수에서 시체 부검이 실시되었고 간장, 폐장, 심장, 신장, 비장 등에서
물속에 서식하는 부유 미생물인 플랑크톤이 검출되었다.
익사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플랑크톤의 검출 유무를 증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은 인체의 폐로 들어가 삼투압에 의해 혈관 속에서 심장을 경유해 전신에 퍼진다.
또한 물은 위를 경유하여 소장까지 도달한다. 익사의 경우 물이 십이지장 아래까지 도달하나
사망 후 유기된 시체라면 폐와 위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시체를 부검한 결과 각 장기 모두에서 플랑크톤의 검출이 증명된 것으로 보아 어린 피해자는
목숨이 채 끊어지기도 전에 물속에 던져진 것이 분명했다.
각종 사고와 유괴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보험도 나왔다고는 하지만
어른들의 무관심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 어떠한 범죄보다 죄질의 정도가 심한 유괴라는
범죄야말로 이 땅에서 영원히 근절되어야 하겠다.
제4화 검게 타버린 승용차
승용차 한 대가 지방 국도를 달리다 갑자기 도로를 벗어나 언덕 아래로 추락하여 불에 타버린 사고가 있었다.
다 타버린 차량안에 남자로 보이는 시신 1구가 있었으나 신원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불에 타 있었다.
수사요원들은 타버린 시신의 검안을 의뢰하는 한편
무엇보다 시신의 가족을 찾는데 수사력을 모았다.
국과수에서는 시신의 두개골을 감정하여 신원을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연구소에서는 워낙 심하게 불에 탄 시신이라 DNA분석법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슈퍼임포즈 감정기법을 적용하기로 하고 시신의 생존 시 얼굴사진을 가족에게 요청했다.
슈퍼임포즈란 물건과 물건을 이중으로 겹치게 한다는 사진감정기법 용어로 시신의 두개골과
장본인으로 추정되는 평소 얼굴 사진을 중첩시켜 여러 부위가 일치하는지를 비교하여
신원을 확인하는 고도의 정확성을 지닌 감정기법이다.
먼저 피해자 가족들이 제출한 남자의 사진을 촬영. 네거티브 필름으로 현상했다.
그 다음 감정 의뢰된 두개골을 생존 시 얼굴 사진들과 동일한 크기,
동일한 각도로 슈퍼임포즈 장치를 이용하여 촬영해 포지티브 필름으로 현상했다.
이 두 종류의 필름 원판을 관찰 상자 위에 올려놓고 중첩시켜서 각 부위의 특징점들을 비교 검토했다.
머리끝의 위치, 눈, 코, 치아, 입의 위치와 형태,
그리고 아래턱 선의 형태 등을 관찰한 결과 두개골의 사진과 실제 생존 시 얼굴 사진이 거의 오차 없이 일치했다.
따라서 “본 건의 두개골과 제출된 사람의 사진은 동일인이라고 보아도
모순점이 없는 것으로 추정됨”이라는 감정 결과를 통보했다.
수사요원은 수사를 계속하여 이 사건은 피해자의 운전 부주의로 도로를 이탈해
언덕 아래로 추락하면서 불이 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와 같은 슈퍼임포즈법은 1984년에 국과수에 도입되었고,
그 후 기술습득은 물론 장비와 시설을 모두 갖추고 많은 감정 실적을 올렸다.
우리나라 여름철 폭우와 홍수 때 유실된 묘지에서 수거된 두개골을 대상으로 이 감정기법을 이용,
신원을 확인하는가 하면 삼풍백화점 붕괴시 훼손된 두개골을 복원하여
슈퍼임포즈 감정기법을 적용, 신원을 확인한 사례도 있다.
슈퍼임포즈 법은 대형 참사, 즉 열차사고, 항공기 추락사고,
폭발사고 그리고 대형 화재사건 등에서 뼈만 남은 시신에 두개골이 온전하게 존재할 경우
신원 확인에 대단히 가치 있는 감정기법으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글 : 최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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