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언니와 잠자리를 같이 한 남자마다 죽어서 나갔어요. 그게 어쩌다 한 번 정도였음 모르겠는데, 열여덟 살 때 처음 잔 남자가 경련을 일으켜 언니 위에서 숨을 거뒀고, 그 뒤에도 잠자리를 한 남자마다 관계 도중에 급사했어요. 그러다보니 피해자 가족도 물론 놀랐지만 언니는 더 놀랍고 가슴 아팠죠.”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자,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잠시 후 성질 급한 대근이 못 참겠다는 듯 말문을 터뜨렸다. “그거 참 괴이하기 짝이 없는 일이로군.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뭐 때문에 하다가 말고 죽는단 말입니까.” “의사들이 밝힌 사인은 대부분 심장마비였어요. 하지만 건강한 남자들마저 그런 식으로 죽는 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물어보았죠. 그랬더니 점쟁이가 언니를 똑바로 쳐다보며 내뱉더래요. ‘살이 끼었다. 네 거기에 급살이 끼었어!’ 그 말을 듣고 언니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벌벌 떨면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두문불출하기 시작한 거예요.”
“하지만 점쟁이 말만 듣고 어떻게 속단하죠? 재수가 없어 우연히 그런 일이 반복됐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에요. 처음엔 우리 가족도 반신반의했죠. 그 점쟁이가 잘못 짚을 수도 있다 싶어, 이번엔 사주 풀이로 소문난 스님을 찾아가서 물어봤어요. 가고시마에서 교토까지 먼 길을 물어 물어 찾아갔는데, 스님이 언니를 보자마자 대갈일성을 터뜨리는 게 아니겠어요. ‘살(殺)!’ 지난번 점쟁이에 이어 똑같은 소리를 들으니 언니의 얼굴이 절망적으로 변했죠. 그때 저도 같이 있었는데, 언니가 너무나 안돼 보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님에게 물어봤죠. 무슨 방법이 없겠냐고요. 하지만 스님은 묵묵부답이에요. 마치 긴 얘기 듣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는 듯 아무리 통사정해도 오불관언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언니가 엎드려 절을 올리고 돌아서려는데, 스님이 딱 한마디 던지더군요. ‘교(交)! 라고요.” “교(交)라니, 거기에 심오한 뜻이 담겨 있기라도 한 겁니까.” 강쇠의 질문에,사사코는 그때 스님과 나누었던 일화를 털어놓았다. “교(交)라니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스님. 부디 불쌍한 중생을 가엾게 여기시어 한말씀만 해주십시오.” 이에 스님은 뚫어져라 언니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탄식하며 말했다.
“허허,보면 볼수록 예사롭지 않은 상이로고. 이보시오 보살님. 그대는 남자를 멀리 하시오. 남자를 가까이 했다간, 상대한 자들마다 제 명을 못 채우고 비명횡사당할 것이오. 그것은 그대의 옥문이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요사스런 구조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오. 바로 그 때문에 그대와 합방을 하는 사내는 극도의 쾌감을 맛볼 것이나 그로 인해 순식간에 양기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최후를 맞게 될 것이오.” “아아, 두렵습니다 스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는데, 진정 아무런 방책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사사코 언니가 죄지은 사람처럼 몸을 떨며 간청하자, 스님의 눈에 동정심이 비쳤다. 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골똘히 생각한 끝에 대답했다. “잘 들으시오 보살님. 그대가 살 방도가 전혀 없는 건 아니오. 그대의 강한 음기를 이겨낼 출중한 양기를 가진 사내가 나타나 그대에게 교(交)의 진수를 가르쳐준다면.” 그 말에 사사코 언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러나 이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스님. 정말 그런 사내가 있을까요. 저는 첫 남자를 졸지에 잃은 후론, 일부러 튼튼한 사내들만 골라 상대했습니다. 다들 역도 선수에 레슬링으로 다진 강건한 체력의 사내들이었죠. 하지만 그들도 비명에 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판국에 아무리 강한 사내라고 한들 저의 음기를 배겨낼 수가 있겠는지요.” “바로 그것이 타고난 그대의 업이요. 그러나 업장소멸이라, 그대의 사주를 보면 그대의 업을 풀어줄 사내가 있는 듯 보이오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사코 언니가 스님의 장삼자락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 “오오 정말인가요. 그렇담 그 사내가 누구이옵니까. 어디 있는지 가르쳐만 주신다면 천리 길을 마다않고 찾아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스님.” “그 사내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오. 다만 그대와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났으며 그대가 강한 음기를 받고 태어났듯 그 사내 역시 만 명의 군사를 합쳐놓은 듯 강한 양기를 안고 태어난 자라는 것밖엔.” 거기까지 털어놓은 사사코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교오코를 비롯한 여자들은 모두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여자로서, 사사코 언니의 운명이 너무나 기구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강쇠가 한참 만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언니는 지금 어쩌고 있습니까. 가고시마 집에서 같이 살고 있나요.” “아뇨. 언니는 그 뒤로 가족과 떨어져 멀고 먼 무인도를 찾아 들어갔어요.” 그 말에 강쇠가 깜짝 놀라 물었다. “무인도를? 아니 거기를 왜 혼자 들어갔어요?” “사람 왕래가 많은 데선 살기가 어려웠어요. 언니가 워낙 미인이다보니 남자들이 가만히 놔두질 않았어요. 그렇다고 온종일 방에서 벽만 긁으며 지낼 수도 없고. 어쩌다 외출이라도 하면 남자들이 언니를 보고 집까지 쫓아와요. 언니가 쌀쌀맞게 대해도 막무가내였어요. 그중에 한 남자가 상사병에 시달리다 못해 한밤중에 몰래 들어와서 강제로 겁탈을 하다가 또 그만…. 그때 받은 충격으로 언니는 정말 크게 상심했죠. 비록 언니가 원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었지만, 똑같이 불행한 결과를 보니 언니 심정이 어땠겠어요. 그래서 남자가 없는 델 찾다가 아예 사람이 살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난 거죠.” 바로 이때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대근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정의감에 불타는 눈으로 사사코를 째려보며 소리쳤다. “거기가 어딥니까. 내 당장 언니가 있는 그 무인도로 달려가겠소.” (계속)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