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하리만큼 뇌쇄적인 미소에 대근은 심장이 얼어붙은 듯 말을 더듬거렸다.“가 가시죠. 릴리양. 오늘 밤은 제가 확실히 쏘겠습니다.”이에 히로미가 대근을 얼른 제지하고 나섰다.“잠깐만요. 쏘는 건 나중에 쏴도 되니 우선 공원부터 가요. 네?”“공원엘요? 아니 이 밤중에 거긴 왜 갑니까.” “실은 저… 점검부터 받고 싶어요. 낮에 강쇠씨가 약속했잖아요. 제가 명기인지 아닌지 점검해주겠다고.”“점검은 나중에 모텔에 가서 하면 되지 않습니까.”“아뇨. 난 모텔 같은 데보다 탁 트인 곳이 좋아요. 솔직히 말하면, 그전서부터 멋진 야외 정사를 꿈꿔왔거든요. 그런 곳이라면 아마도 오래 오래 추억에 남을 거예요. 어때요 강쇠씨?”“나야 뭐 장소 불문이니 상관없지만, 내 친구와 릴리양이 어떻게 생각할지.”그러자 생글거리며 듣고 있던 릴리가 반짝 호기심을 드러내며 물었다.“호호호 저 역시 장소 불문이에요. 그런데 참 궁금한 게 있어요. 히로미한테 들으니 변강쇠가 한국에서 섹스를 제일 잘한 남자라고 하던데, 실제로 있었던 사람인가요?”
“아아, 그 양반은 실존 인물은 아닙니다. 물건이 크고 정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절륜한 사나이를 상징하는 말인데, 그 이름 속에는 저희 조상님들의 성에 대한 해학적인 요소가 다분히 배어 있죠.”“글세, 얼른 감이 잡히지 않네요. 도대체 물건이 얼마나 크고, 정력이 세길래 그런 거죠?”“아, 그 점에 대해선 한국 고유의 판소리 사설 ‘변강쇠 타령’에 잘 묘사돼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강쇠는 아랫배에 불끈 힘을 넣었다. 그런 다음, 옹녀가 변강쇠의 물건을 흘낏 들여다본 소감을 판소리 가락으로 신나게 풀어냈다.“이상히도 생겼네. 맹랑히도 생겼네. 전배사령(前陪使令) 서려는지, 쌍걸낭을 느직하게 달고, 오군문(五軍門) 군뇌(軍牢)던가 복덕이를 붉게 쓰고, 냇물가에 물방안지 떨구덩 떨구덩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털고삐를 둘렀구나. 감기를 얻었던지 맑은 코는 무슨 일인고. 성정도 혹독하다. 화 곧 나면 눈물난다. 어린아이 병일는지 젖은 어찌 게웠으며, 제사에 쓴 숭어인지 꼬챙이 구멍이 그저 있다. 뒷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가리 둥글린다. 소년인사 다 배웠다 꼬박꼬박 절을 하네. 고추 찧던 절굿대인지 검붉기는 무슨 일인가. 칠팔월 알밤인지 두 쪽이 한데 붙어 있다. 물방아, 절굿대며, 쇠고삐, 걸낭 등물 세간 걱정없네.” 강쇠의 ‘변강쇠 타령’을 들은 릴리가 배꼽을 잡고 깔깔 웃었다.
어찌나 크게 웃는지 목젖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였다.“카카카카… 그 옹녀라는 여자, 입담 하난 껄쩍지근하니 끝내주네요. 남자 거길 어쩌면 그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가 있죠?”“입담 뿐만 아니라 교접시의 용감무쌍함도 끝내주죠 흐흐흐. 그런데 말입니다. 입담으로 따지면 변강쇠도 결코 만만찮아요. 옹녀 그곳을 본 변강쇠 소감이 어떤지 마저 들어볼래요?”“강쇠는 척, 하니 팔소매를 걷어붙이고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런 다음, 변강쇠와 옹녀가 만나 수작을 부리는 장면부터 신명나게 불러제꼈다.“…둘이 손을 마주 잡고 바위 위에 올라가 대사(大事)를 치르는데, 신랑 신부 이력이 난 터라 이런 야단이 없구나. …강쇠 놈이 여인의 양각 번쩍 들고 옥문관을 굽어보며, ‘이상히도 생겼구나. 맹랑히도 생겼구나. 늙은 중의 입이런가 털은 돋고 이가 없다. 소나기를 맞았던지 언덕 깊게 패였다. 콩밭 팥밭 지났는지 돔부꽃이 비치었다. 도끼날을 맞았든지 금바르게 터져 있다. 생수처 옥답인지 물이 항상 고여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옴질옴질 하고 있노. 천리행룡 내려오다 주먹바위 신통하다.
만경창파 조개인지 혀를 삐줌 빼였으며 임실 곶감 먹었는지 곶감씨가 장물이요 만첩산중 으름인지 제가 절로 벌어졌다. 연계탕을 먹었는지 닭의 벼슬 비쳤다. 파명당(破明堂)을 하였는지 더운 김이 그저 난다. 제 무엇이 즐거워서 반쯤 웃어 두었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조개 있고, 연계 있고, 제사상은 걱정없다.’ 하였더라.” 강쇠가 소리를 끝내자마자, 릴리는 또 다시 감탄해 마지 않았다.“호호호. 들을수록 점입가경이네요. 변강쇠라는 남자, 관찰력이 정말 캡이에요. 그런데 말예요. 주먹바위도 알만 하고, 닭벼슬도 어딜 말하는지 감이 잡히는데, 곶감씨는 뭘 뜻하는지 알쏭달쏭하네요. 하지만 어쨌거나 이런 가사를 창작해낼 정도면, 강쇠씨 조상님들께선 성에 대한 해학이 특별하셨던 것 같아요.”“잘 봤어요 릴리양. 그 옛날부터 저희 조상님들은 성에 대해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졌던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남녀가 지나치게 색을 밝히는 것을 경계했던 것도 같아요. 색정남녀로 대표되는 변강쇠와 옹녀의 비극적 결말이 그것을 잘 말해주죠.”“흐음. 그건 우리 일본과 분명히 차이가 있네요. 일본인들은 성을 ‘가볍고 당당하게’ 받아들이지 결코 경계하지는 않거든요. 오죽하면 남신과 여신의 교접으로 일본이라는 국토가 탄생했다는 신화가 전해져오겠어요.”바로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히로미가 불쑥 끼여들었다.
“강쇠씨 잠깐만요. 물어볼게 있어요. 옹녀라는 여자 말예요. 그 여자도 명기였나요?”“그야 물론 희대의 변강쇠와 맞짱을 뜰 정도니까, 명기도 보통 명기가 아니었겠죠.”“그렇담 이상하잖아요. 그 정도로 특출한 명기였다면 남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텐데, 어째서 비극적으로 결말이 난 거죠?”“아 그건 옹녀가 무시무시한 명기여서 그랬을 겁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치면 엽기적인 명기라고나 할까, 아니면 팔자가 기구해서 그런가. 하여튼 옹녀가 열다섯 때 처음 시집을 갔는데, 첫날 밤에 서방이 급상한(急傷寒)으로 죽고, 열여섯에 얻은 서방은 당창병(唐瘡病)에 튀고, 열일곱 때 만난 서방은 용천병에 펴고, 열여덟에 얻은 서방은 벼락맞아 식고, 열아홉때 서방은 대적으로 포도청에 떨어지고, 스무살 때 서방은 비상먹고 죽으니, 옹녀로선 정말이지 송장치기 신물이 날 정도였을 겁니다. 하여간에 그런 걸 보면 명기라고 무조건 사족을 못쓰고 덤벼들어선 곤란하다고 봐요. 비명에 돌아가신 서방님들의 입장에서보면 옹녀가 양기를 몽땅 뺏어간 탓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중국의 성고전서에는 우리 남자들이 양기를 보전함에 있어 지장을 초래할지 모를 여자로, 다음과 같은 예를 든 바 있습니다. 첫째가 치골과 음핵이 이상 발달한 여성, 둘째로 체취와 분비액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여성, 셋째로 질이 없는 여성,넷째로 질이 딱딱한 여성, 다섯째로 경련을 잘 일으키는 여성 등인데, 반대로 양기를 북돋워 주는 여성도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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