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요시코의 묘기에 감격한 신사들이 앙코르를 연발하며 열렬히 기립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이윽고 공연이 끝나자, 바깥으로 나오며 대근이 은근 슬쩍 물었다.“어떠냐 오강쇠. 미아리 텍사스 같은 데서 보던 홀딱 쇼하곤 차원이 다른 것 같지 않아?”“글세. 그런데 그 요시코 말이야. 걔야말로 진짜 명기 아닐까.”“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냐. 근거가 있어?”“너도 눈으로 확인했잖아. 거기 힘이 얼마나 세면 폭음탄까지 발사하겠니.”“이런 멍청이. 그건 용을 써서가 아냐. 다 요령으로 하는 거지. 그리고 나는 말이야. 요시코 같이 큰 여자는 별로야. 작아도 귀엽고 애교많은 마사코 같은 여자가 더 좋아. 넌 어떠냐.”“야 이대근. 너 정말 섹스 천국에 살다보니 엄청 배가 부른가 보군. 한국에 있을 땐 찬밥 더운밥 안가리더니. 그리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말이다. 아무리 못 생긴 여자라도 명기라면, 신문지 덮어 놓고도 할 자신이 있어.”
“흐흐 과연 오강쇠답군. 아무렴 넌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하지만 신문지까지야 덮을 필요 있겠냐. 네가 상대할 교오코는 일본 남자들도 침을 흘릴 정도로 절세 미년데. 안 그래?”대근의 대꾸를 듣는 순간, 강쇠의 뇌리 속으로 고혹적인 교오코의 자태가 어른거렸다. 강쇠는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결전의 날을 기다렸다.마침내 기다리던 주말이 되자, 교오코와 마사코는 약속시간에 맞춰 대근의 도장에 나타났다. 넷은 그길로 곧장 신칸센 열차를 타고 삿포로로 향했다. 열차 안에서 교오코가 말했다.“삿포로는 저의 어머니 고향이죠. 그래서 저는 삿포로를 잘 알아요. 삿포로는 눈의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유서 깊은 온천 또한 많아요. 전에 말했던 혼탕도 그 가운데 하나구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 지금 몹시 흥분돼요. 거기 가서 강쇠씨가 저를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하니까 아…”교오코가 별로 수줍어하는 기색도 없이 자신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털어놓자, 강쇠가 편하게 말을 놓으며 대꾸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교오코를 신체검사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내 거시기가 후끈 달아오르는군. 게다가 혼탕이란 데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지.”“흠. 여자 알몸을 훔쳐보는 게 목적이라면, 기대 않는 게 좋을 걸요. 요즘은 혼탕에 젊은 아가씨는 별로 없으니까. 그보다도 강쇠씨. 강쇠씨 장담을 믿어도 되는 건가요? 만약에 말예요. 강쇠씨가 저의 증조부님만큼 막강해서 저를 굴복시킬 수 있다면, 전 정말 강쇠씨를 평생 은인으로 모실 거예요.” 교오코는 기대감에 부풀어 삿포로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일행을 어느 노천온천으로 안내했다. 싱그러운 수목들 속에 자리잡은 온천은 주위 경관이 빼어나게 수려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안으로 들어가니 남탕과 여탕을 구분하는 표지판이 보이는 게 아닌가. “어? 이게 뭐지. 이건 혼탕이 아니잖아.”강쇠의 표정이 싹 달라지자, 교오코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안심하세요 강쇠씨. 저런 건 있으나 마나니까. 여기서부턴 남녀가 탈의실도 같이 사용하고 서로 거리낌없이 돌아다녀도 돼요. 그러니까 업소측에서 편의상 남탕과 여탕을 구분해놓은 것 뿐이죠. 자, 어서 절 따라 오세요.”교오코는 먼저 탈의실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완전히 알몸 상태가 되어 나왔다. 눈부시게 하얀 살결에 봉긋한 젖가슴. 그 아래로 잘록한 허리에 이어 배꼽 부근에 시선이 이르자, 강쇠는 그만 넋을 잃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오! 비너스의 현신인가. 교오코. 그대야 말로 진정 완벽에 가까운 걸작품이 아니신가.”그러나 감탄도 잠깐, 강쇠는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고는 본래의 목적인 신체검사에 들어갔다. 잠시 신체검사에 응하던 교오코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강쇠를 채근했다.“얼른 탈의실부터 들어가요. 사부님과 마사코가 뒤에서 기다리잖아요.”그 말에 강쇠는 반사적으로 뒤돌아보았다. 어느틈에 탈의실에서 나온 대근과 마사코가 각자 목욕 타월을 든 채 서 있었다. 강쇠는 서둘러 탈의실에 들어갔다. 이윽고 탈의실 밖으로 나온 강쇠는 당당한 자세로 교오코 앞에 우뚝 섰다. 그 순간 두 여자의 입에서 각기 다른 반응이 터져나왔다. 캭! 헉! 하나는 비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탄성이었다. 비명은 마사코가 질렀고, 탄성은 교오코가 내질렀다.“강쇠씨. 대단해요. 정말 이렇게 믿음직한 건 처음 봐요. 하지만 한국 속담에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던데, 길고 짧은 건 두고 봐야 알겠죠? 호호호.”교오코는 알 듯 모를 듯 염화시중의 미소를 흘리며 탕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르던 강쇠의 발걸음이 멈칫 섰다.
탕 입구에서부터 남탕과 여탕으로 각기 갈라졌기 때문이었다. 별 수 없이 남탕으로 들어간 강쇠는 탕 주위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노천탕 곳곳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기화요초와 아름드리 나무들이 서로 어우러져 기품 어린 정취가 느껴졌다. 중앙에 커다란 자연석 하나가 통로를 가로막고 있었는데 건너편에서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귀가 번쩍 뜨인 대근이 퉁명스레 내뱉었다.“젠장 탈의실은 같이 쓰게 하면서 중간에 쓰잘데 없이 돌덩이는 왜 갖다놓은 거야. 야 오강쇠. 어서 저기로 가보자구.”강쇠는 자연석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자연석에 기대 서보니 여탕이 훤히 보였다. 이럴 바에 남탕과 여탕의 구분을 왜 굳이 했을까 싶었다. 교오코의 말처럼 편의상 그랬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강쇠는 여탕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과연 교오코의 말처럼 탕 안에는 쭈글쭈글한 할머니들 뿐 젊은 여자라곤 교오코와 마사코 둘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다 할머니들은 강쇠와 눈이 마주쳐도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그 할머니들 속에서 교오코와 마사코는 간간이 유쾌한 웃음을 날렸다. 얼마 후에 있을 희로애락을 떠올리고 있음인가.이윽고 탕에서 나온 일행은 캔맥주 하나씩을 들고 마주앉았다. 간빠이! 하고 외치며 교오코가 건배를 제의했다. 넷은 일제히 간빠이! 하고 캔을 부딪히며 맥주를 마신 후 각자의 방을 찾아 들어갔다. 마침내 둘만의 시간이 되자, 교오코는 기다렸다는 듯 강쇠의 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강쇠는 솟구치는 흥분을 억누른 채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런 다음 교오코의 긴 눈썹에 키스를 했다. 교오코의 아름다운 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그 느낌을 감지하며 강쇠는 주문을 외웠다. ‘서두르지 마라 오강쇠. 서두르다보면 될 것도 안되는 법이니라.’ 그 주문은 강쇠가 중대한 실전에 임할 때면 반드시 외는 주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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