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아버님,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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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4-11-19 09:00
  • 승인 2004.11.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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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님,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선생님, 제 밑에는 십만명이라는 적지 않은 단원이 있습니다. 저 하나 출세하기 위해서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는 줄 아십니까?”“알아, 나도 김의원의 그 마음을 충분히 알고도 남는다니까.”“그럼 어째서 못받아 주신다는 겁니까? 저를 믿어주고 격려해 주시던 분이 외유했다 해서 경원하는 이유가 뭡니까?”“참 답답하구만. 어디 정당을 나 혼자 하는 건가. 여러 사람이 다 의견의 일치를 보아야 결정할 수 있는 문제 아니야.”“제가 뭐 선생님 보구 돈을 달랩니까. 높은 자릴 달랩니까? 전 다만 「애국단」에 가입한 아이들을 모두 구제하여 신당에 조직원으로 가입시키거나, 아니면 방계단체로서 존속시키며 유기적인 연관을 맺자는 것 뿐입니다.”“방계단체로서?”대머리가 벗겨진 윤치영 공화당의장서리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김두한 의원을 쏘아보았다. 혁명정부가 허수아비(시쳇말로 가오마담이라고도 함)로 내세운 사람이지만 아무튼 윤치영은 혁명세력이 중심이 되어 만든 민주공화당의 당의장서리로서 겉으로나마 민주공화당을 이끄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김두한 의원은 지금 십만 단원의 사활을 놓고 윤치영과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방계단체로서 존속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면 자연 조직의 이원화를 꾀해야 할 것이고, 또 「애국단」원들 몇몇 간부의 지역(국회의원 출마지역)도 보장해야 할 것이 아닌가?”윤치영의 이 말에 김두한 의원도 잠시 말문이 막혔다.(지역? 그렇지. 최소한 우리 간부진 몇몇의 지역은 보장받아야 할 게 아닌가….)김두한 의원은 눈을 껌벅거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주시려거든 한 삼십석만 주십시오.”이 말을 들은 윤치영의 날카로운 눈이 풀어지며 빙그레 웃는다.“김의원,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시오?”“당의장님, 이건 농담이 아닙니다. 제가 농담으로 이런 보따리를 들고 다니겠습니까?”“김의원, 난 김의원하고 말 안하겠소.”“아니,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왜라니? 난 지금 김의원하고 그런 농담을 할 시간이 없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지금 우리 공화당은 가장 참신한 근대정당으로 출발하려고 하는 중이야.”“저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협조를 하려는 게 아녜요.”“김의원은 우릴 전폭적으로 지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당 사람들은 김의원의 그 폭력 조직을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에요.”“뭐요? 폭력 조직?”김두한 의원의 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다.“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 우리 당 사람들이 그렇단 말이야. 그러니 지금 우리 당으로서는 자네의 그 「애국단」인가 뭔가 하는 단체를 방계단체로서도 가당치 않다는 것이야.”“좋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민주공화당에 붙을 필요가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하지요.”“그렇게 화를 낼 일이 아니야. 내 좀 더 두고 생각해 볼테니 기다려 보라구.”“알겠습니다. 전 이만 가보겠어요.”김두한 의원은 몹시 불쾌한 낯으로 윤치영 당의장서리의 방을 물러나왔다.(폭력 조직이라서 안된다?)김두한 의원의 가슴은 텅 빈 듯 공허하고 다리가 자꾸 휘청거렸다.(내가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약해졌을까?)김두한 의원은 후둘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청진동 초선이네 집에 들어서자 초선이 버선발로 김의원을 맞이하며 “아이구, 이거 영감님이 웬 일이세요? 그런데 오늘 무슨 기분나쁜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기운이 하나도 없어보여요.”초선은 호들갑을 떨며 김두한 의원을 껴안다시피 하며 말했다.

그리고 뒤따라 오는 춘화를 향해 “오늘은 아무도 손님을 받지 말아라. 그리고 목욕탕에 목욕물 좀 채워 넣고….”하고 초선이 지시한다. 그 말에 김 의원이 말했다.“아니 목욕물은 웬 목욕물이야?”“아니에요. 기분이 언짢거나 피로하실 때는 목욕을 하셔야 기분이 풀리셔요.”초선은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말씨로 말했다. 이윽고 안방에 들어선 김 의원은 초선이 내 온 커피를 한잔 마시고 있자 방문밖에서 춘화가 “목욕물 다 채워놨습니다.”했다. 그러자 초선은 별로 내키지 않아 하는 김 의원의 옷을 벗기는 등 끌다시피 하며 목욕탕으로 안내했다. 목욕물은 알맞게 덥고 오렌지 냄새가 향기롭게 솟아올라 김 의원의 기분을 한결 좋게 했다.“어 기분 좋다!”김 의원은 저절로 튀어나오는 이 말을 외치며 모처럼 기분 좋게 목욕을 마치고 나와 술상을 받았다.“이건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직접 담가 보내신 모과주인데 한잔 맛보셔요.”초선은 김 의원의 옆에 앉아 은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그리고 부탁하지도 않은 권주가까지 멋들어지게 불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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