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한을 찾아온 김종필씨
김두한을 찾아온 김종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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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4-11-05 09:00
  • 승인 2004.11.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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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잘 쓰는 국회의원을 누가 모르겠냐?”“그 많은 사건 중에도 제일 잊혀지지 않는 사건은 전국 철도노조의 파업을 수습한 것이었지. 나는 5백명의 완전무장한 아이들을 트럭에 태우고, 앞대가리와 꽁무니에 각각 기관총을 설치한 후 서울역을 출발하여 서서히 남행을 시작했단 말씀이야. 그 광경은 서부영화가 무색할 지경이었지….”김두한 의원은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찌니는 김두한 의원의 이야기가 별로 흥미 없다는 듯이 그냥시큰둥한 표정을 지은 채 듣고 있었다. 동상이몽이라던가.아무튼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을 속에 품고, 즐거운 듯이 옛이야기의 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자금, 김두한 의원에게는 자금이 없었다.조직을 움직이는 데는 생명줄같은 자금이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판국에 불순한 자금원이 아닌, 건전하고 깨끗한 자금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두한 의원은 지그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의 감은 눈 속엔 일본서 건너온 마찌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성남장 호텔로 그를 찾아와 「애국단」을 건전한 반공청년단으로 키울 것을 종용하던 혁명정부 사람의 얼굴도 떠올랐다.“아, 김종필씨만 있었어도 무슨 해결책이 있을지 모르는데….”김두한 의원은 눈을 떠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저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이내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김종필씨는 지금 외유중이라는데 어디에 가 계실까?)김두한 의원은 자기와 뜻이 맞는 그 사람을 그려보았다. 무슨 일 때문에 외유중이라는데, 알만한 사람을 통해 언제 돌아올지 물어도 모르겠다는 것이다.(아아!)김두한 의원은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사건과 수많은 일을 겪어봤진만, 그 순간처럼 가슴답답해 보기는 처음이었다.이제 민정이양이 곧 실시될 것이다. 혁명정부에서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금지했던 정치활동을 재개했으며, 해산시켰던 정당의 등록도 다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판국에 자금난으로 활동을 펴지 못하게 되면 영영 일어서지 못하게 된다 싶으니 김두한 의원은초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답답한 마음을 풀겸 사무실을 나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차를 타지 않고 시가지 중심부를 걸었다.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그의 발길은 어느새 청진동 초선이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청진동 골목길. 낮은 추녀의 기와집들이 웅기중기 이마를 맞대고 있는 오래된 골목. 우중충한 골목길로 나이어린 넝마주이 한 어린이가 큰 소쿠리를 어깨에 걸머지고 지나갔다. 싸리나무로 엮어서 만든 큰 소쿠리에 휴지가 가득 들어 있어 무거워 보였다.그걸 본 김두한 의원은 울컥 자기의 수표교 어린 시절이 생각나 자기도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김두한 의원은 곧 걸음을 멈추고 지나가는 나이어린 넝마주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저 어린이가 하루에 벌어들이는 돈이 얼마나 될까?)이런 생각을 하며 김두한 의원은 걸음을 재촉하여 넝마주이를 쫓아갔다.

이윽고 넝마주이 곁에 이르러서야, “얘, 너 이렇게 넝마를 주워 모으면 하루벌이가 얼마나 되냐?”덩치가 큰 김두한 의원이 이렇게 묻자 어린이 넝마주이는 낭패한 기색의 표정을 지어 보이며“지는 잘 몰라유….”어린이 넝마주이는 비실비실 김두한 의원의 눈치를 살피며 피하려는 것이었다.“잘 모른다니? 소쿠리를 메고 다니는 자기가 하루에 벌어들이는 수입을 모르다니 그게 말이나 되냐?”“예 몰라유….”라고 말하는 어린이 넝마주이의 표정에서 김두한 의원은 그 어린게 뭔가 두려워하고 있음을 느꼈다.“난, 뭐 널 해치려는 사람이 아니다. 너, 혹시 김두한 의원을 아느냐?”김두한 의원이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하자, “네, 알아유. 주먹 잘 쓰는 국회의원을 누가 모를라구유, 알지유, 알구말구유.”하고 자신있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김두한 의원은 빙그레 웃었다.“그 김두한 의원이 바로 나다. 이제 알겠느냐?”그러자 어린이 넝마주이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서 김두한 의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난, 주먹도 잘 쓰지만 너희들의 친구야. 조금도 겁낼것 없어.”“아, 이제보니 낯이 익네유.”‘뭐가?”“신문에서 봤시유.”“응, 난 또 뭐라구….”김두한 의원은 웃으면서 넝마주이 어린이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김두한 의원이 궁금한 것은 이런 어린이가 하루에 얼마나 벌며, 주워들인 넝마나 휴지는 어떤 경로를 거쳐서 판매되고 있는지 그 유통과정이었다.“말도 마셔유. 우리덜은 왕초밑에 다섯명이 찍쇠 노릇을 하는데유, 얼마받고 파는 것은 몰라유.”“그럼 너희들은 월급을 받고 일하냐?”“워디가유. 그냥 밥만 멕여주구, 잠만 재워주지유.”“밥 먹구 잠만 자?”“그리구설람에 많이 주워오지 못하는 날엔 지토코니 매를 맞아유.”“매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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