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국단’ 한 번 잘 키워 보세요. 나중에 민정이양할 때 큰 힘이 될겁니다.”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애국단’을 잘 키워 보라니. ‘애국단’은 이미 해체된 거나 다름 없는 비밀결사가 아닌가.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김두한 의원은 이윽고 침통한 말투로“‘애국단’은 이미 해체된거나 다름없는 상태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종필씨는 실망했다는 듯이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그래요? 그렇다면 기대가 깨지는데요.”“기대가 깨지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앞으로 민정이양을 하는데 있어서는 ‘애국단’과 같은 철저한 반공정신으로 뭉친 단체가 필요해요. 그래야 우린 안심하고 본연의 임무로 돌아갈 수 있거든요.”“아, 그렇습니까!”김두한은 매우 기뻤다. 이제야말로 뜻을 펼 수 있게 되었다 싶었다.“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조직하면 되지오.”“그렇게 간단히 됩니까?”“당장이라도 할 수 있지요. 지금 우리 아이들이 전국의 조직망을 재점검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아, 그래요.”김종필씨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아직은 그 조직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마십시오.”“저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이렇게 대답하고 난 김두한 의원은 빙그레 웃었다. 여러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그런 웃음이었다.아무튼 그날부터 김두한 의원의 신당 구성의 방향은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이제 그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그래 ‘애국단’을 새로 조직하는 거다. 전국적인 규모로 조직을 확대해 나가는 거다.)김두한 의원은 ‘애국단’과 같은 성격이 뚜렷하고 철저한 반공정신으로 뭉친 단체를 조직하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내가 조국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이거야. 어차피 우리는 공산주의와 싸워야 하니까.)김두한 의원은 저절로 신바람이 났다.(‘애국단’을 성공시키려면 ‘자활개척단’에 필요한 자금 지원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지금 혁명정부가 지향해 나가는 것이 바로 사회정화와 반공정신의 함양이 아닌가. 그렇다. 뭔가 나는 혁명정부 사람들과는 서로 상통하는 점이 있다!)김두한 의원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자신감에 부풀어 있었다. 이윽고 김두한 의원은 많은 부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외쳤다.
“우리 ‘애국단’의 투철한 반공정신은 반공을 제일의 국시로 삼고 있는 혁명정부의 정신과 서로 상통한다. 그러므로 우리 ‘애국단’은 전국적인 조직망으로 확대, 강화하고 혁명과업을 도와 국가 백년대계를 건설하는데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김두한 의원은 지금껏 개인적인 야망이나 사심을 가지고 일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는 아버지 백야 장군의 정신을 받들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초석이 되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김두한 의원의 이러한 순백하고 이상적인 운동에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은 자금의 고갈이었다. 어떤 훌륭한 운동도 자금이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 때 부하인 신덕균이 김두한 앞에 나서더니 “형님, 지금 자금이 단 한푼도 없습니다. 아이들 줄 차비조차 없습니다.”라고 울상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자금이 없다고?”김두한 의원은 이렇게 한 마디를 뱉은 후 쓰게 입맛을 다셨다. 그런가 했더니 “덕균이, 우리 집에 가서 집문서를 달래서 가져와.”라고 말했다. 김두한 의원은 자기 집문서를 가져다 집을 팔든가 잡혀서 자금을 마련할 요량이었다.“잊고 계셨군요. 형님네 집문서야 벌써 잡혀서 쓴 지가 옛날이에요. 그걸 모르고 계셨다니?”신덕균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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