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4호>법정에서의 두 사내 눈물
<제534호>법정에서의 두 사내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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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4-07-29 09:00
  • 승인 2004.07.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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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 상대로 고소 제기한 일 없습니다”방청석에 있던 김두한의 부하들이 소리소리 지르며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조용히들 하시오. 떠들면 모두 퇴정시키겠소.”정리가 고함을 쳐서 흥분을 다소 가라앉혔다. 이윽고 검사와 판사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고, 이어서 개정의 망치소리와 함께 재판이 시작되었다. 지루한 검사의 논고가 끝나고 변호인단의 반대신문이 시작되었다.“방금 검사는 기소 논고를 통해 건중친목회의 석상에서 피고인이 미제 사오구경 권총으로 증인 김관철을 살해하려고 실탄 네 발을 발사했다고 하는데, 피고인은 그 당시 미제 사오구경 권총을 가지고 있었습니까?”변호인의 이런 반대신문에 김두한은 침착하고 담담하게 대답했다.“네,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렇다면 피고인은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경위로 그 권총을 소지하게 되었습니까?”“건중친목회의 간부회의가 있기 전날 김관철이가 제게 가져다 준 것입니다.”“검사의 논고엔 피고인이 항시 증인 김관철의 행동을 의심하고 있었고, 언제고 기회만 있으면 제거해야 되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피고인이 김관철을 건중친목회 감찰국장이란 자리에까지 올려 놓고 그의 행동을 의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김관철은 8·15해방 이후 줄곧 본인과 동지적인 입장에 있었던 사람이고, 얼마 전까지도 우리와 생사를 같이 해온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항시 김관철을 내 오른팔과 같이 믿었고, 특히 건중친목회를 운영하는데 있어서는 단 한번도 그를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그렇다면 사건 당시 김관철을 배신자라고 규정짓고, 그 사람에게 권총을 발사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제가 권총을 쏘게 된 것은 추호도 살의가 없었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김관철의 요구에 의해 그렇게 한 것이며 그 당시 건중친목회의 형편으로 보아 그러한 방법으로 이탈자를 방지하자는 김관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피고인은 과거에도 권총을 쏴 본 경험이 많이 있습니까?”“예, 해방후 공산당들과 싸울 때 늘 권총을 휴대하고 다녔으며, 내 손으로 공산당원을 쏴 죽인 숫자만도 수십명이 됩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피고인이 김관철을 죽이려고만 마음 먹었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가 있었단 말씀이군요?”“네 그렇습니다. 제가 그 때 관철이를 정말 죽일 생각이었으면 단 한 발도 빗나가는 실탄이 없이 네 발 모두 명중시킬 수가 있었습니다.”“그 때 피고인이 김관철을 향해 권총을 발사할 때 피고인과 김관철과는 어느 정도의 거리에 있었던가요?”“김관철과 나와의 거리는 그 때 소파에 함께 앉아 있었으니까 약 2미터 내외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그렇다면 비단 피고인처럼 권총에 능한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능히 명중시킬 수 있는 거리였겠군요?”“그렇습니다. 그런 거리에서는 누구라도 상대를 쏘아죽일 수가 있습니다.”“이것으로 반대신문을 그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그러나 김두한이 법정에서 무엇이라고 주장하든 문제는 고소인인 김관철의 진술이었다.변론인의 반대신문에 이어 재판장은 증인 김관철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증인이 피고인을 알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8·15해방 직후 반공투쟁을 할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그동안 피고인과 의견이 달랐다든가 기타 다른 이유로 피고인과 싸운 일이 있는가?”“전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피고인에게 불만을 품은 일은?”“설사 어떤 일에 있어서 내심 불만스러운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단장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기 때문에 부하된 사람으로서는 불만이 있더라도 불만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그렇다면 피고인을 상대로 피고인이 살인미수를 했다고 당국에 고발하게 된 동기와 그 경위를 말해 보시오.”재판장의 이런 질문에 피고석에 선 김두한을 비롯하여 방청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이 감돌았다.“저는 단장님을 상대로 고소를 제기한 일이 없습니다.”김관철의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오자, 방청석에서 일제히 와아!하는 함성이 일어났다. 너무도 뜻밖이요, 감격적인 증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고소를 제기한 일이 없다니?”재판을 주재하던 판사를 비롯하여 검사·변호사도 모두 자기의 귀를 의심하며 웅성대기 시작했다.“재판장님, 허락해 주신다면 그동안의 말못할 사정으로 단장님을 제가 고소한 것처럼 된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일이 이쯤되자 동석했던 종로경찰서 사찰주임이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좋소, 증인에게 말할 기회를 줍니다.”재판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김관철은 자세를 가다듬고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조금전 검사의 논고를 저도 자세히 들었습니다만, 김단장이 무기를 불법소지하고 살인미수를 했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며, 무기를 불법으로 소지하고 있던 사람은 바로 저였고 그 무기로 마치 살인을 할 듯이 가장하여 저를 쏘라고 교사한 사람도 저였습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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