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영감님도, 그렇게 화만 내시지 말고 제 입장도 좀 생각해 달라 이말씀입니더. 깡패들이란 원래 보복하는 버릇이 있어서 혹시라도 영감님께 화가 미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입니더.”“그런 노파심 집어쳐! 당신 말하는 투가 깡패들 하구 한 통속 같구먼.”“뭐라꼬예?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섭케 하십니꺼?”“그렇지 않고 뭐요? 깡패는 잡으면 될 것이구, 테러범은 강력히 막으면 없어질 것인데, 깡패들의 보복이 두려우니 날보구 부산을 떠나달라구?”“정히 그러시다모 맘대로 해 보이소. 내는 책임지지 않겠심더.”경찰서장은 이런 말을 남기고 돌아가 버렸다. 경찰서장을 보내고 난 김두한 의원은 마음속으로(참 한심한 놈들이군. 소위 경찰서장이란 작자가 저 꼴이니, 치안이 제대로 될리 있나.)김두한 의원은 몹시 불쾌한 듯이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혀를 찼다. 그 때 옆에 있던 신덕균이 나서며“형님, 아무래도 이 곳을 떠나는 것이 좋겠어요.”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왜 겁이 나느냐?”
“아니오. 그렇지만, 저 자들이 가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혹시 형님이 몸을 다치실까봐 그렇지요.”“걱정말아. 그깟 새끼들 몇 백명이 떼로 몰려 온다고 내가 눈하나 깜짝 할 것 같으냐?”“그래도 지금은 옛날과는 다르잖아요.”신덕균은 김두한이 국회의원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김두한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자, 이젠 그런 걱정일랑 말고 어떻게 하면 저 거리의 불쌍한 아이들을 설득하여 ‘자활개척단’에 들어오게 하느냐 하는 문제를 연구하라구.”“참, 형님도 딱하십니다. 제가 그동안 말씀은 안드렸지만 아이들을 많이 끌어 모은다 해도 걱정이 아닙니까?”“왜? 아이들이 많이 모이면 좋지 뭘 그래.”“어째서 좋습니까. 당장 아이들을 먹일 게 없잖아요. 그리고 황무지를 개간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할텐데….”신덕균의 말이었다. 하지만 김두한 의원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덕균아, 이 김두한이가 언제 돈 가지고 일하는 거 봤니? 비록 정부에서 냉대하고 돈을 대주지 않더라도, 이 김두한이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먹이고 입히고 개간에 필요한 돈을 댈테니 염려마라.”김두한 의원의 결심은 단단했다. 바위라도 그의 결심을 깨뜨리지 못할 것 같았다. 신덕균도 김두한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지라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두한 의원이 그의 굳은 결심을 스스로 철회화지 않으면 안될 일이 서울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그가 서울에 없는 사이, 자유당에서는 중앙위원회를 열고 김두한 의원을 당에서 제명해 버렸던 것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야 부산에서 통고 받은 김두한 의원은 화를 벌컥 내었다.
“이 새끼들! 언제는 감옥에다 집어넣고 당에 들라고 하더니, 본인에겐 물어보지도 않고 저희 맘대로 제명을 시켜?”그러나 이런 결과가 언젠가는 닥쳐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별 충격은 없었다.“덕균아, 어서 짐을 싸라!”“예?”너무도 갑작스런 일이라 신덕균은 어리둥절했다.“어서 짐을 꾸려. 곧 서울로 가야겠다.”비록 사필귀정이라고는 하나, 그 자신 정치생명을 위해서 뒷수습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급히 올라가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자유당에서 제명 당한 김두한 (좋아, 이제부터야. 나의 정치투쟁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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