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라, 너그덜 구경꾼들이 접근 못하게 모두 쫓아라!”치안국장 김종원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다.“자, 인자 합법적으로 하능기라. 법적으로 하입시더. 고만 해산하이소!”팔을 걷어붙인 김두한 의원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김종원을 노려봤다.“너, 김종원이 알아서 해! 만약 국회의원들에게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죽을 줄 알어?”그러자 김종원은 슬며시 자리를 피해 버렸다.“유석, 아무래도 이젠 더 못나가겠소. 우리 이만 의사당으로 돌아갑시다. 더 나가다가는 불상사가 날 것 같습니다.” 전 국회의장 신익희씨가 조병옥 박사에게 말했다.“해송(신익희의 아호)이 겁을 집어 먹었구먼.”그러자 조병옥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껄껄 웃었다. 국회의원들은 모두 게임이 끝난 선수들처럼 녹초가 되어 돌아가기를 원했다.“김 의원, 이만 돌아가자구.”조병옥 박사는 김두한 의원을 불러 말했다. 그러나 김두한 의원은“저는 아직 힘이 얼마든지 남아있다구요. 이까짓 무술경찰쯤 몇 천명이라도 막아낼테니!”김두한 의원은 이마에 밴 땀을 씻으며 씨익 웃었다.
“뭐, 오늘만 날인가.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는데. 오늘은 그만 하자구.”“그럼 그러지요.”의원들은 모두 일어나서 만세를 부르고 천천히 국회의사당으로 돌아갔다.“아무케두 김두한 의원을 제명처분 시켜야디 되갔습네다.”장경근 의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왜 또 그 자가 말썽을 부렸소?”이기붕 의장은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말썽을 부리다 뿐입네까.ㅡ 이번엔 배은희, 이갑성이랑 손을 잡고 ‘자유당 창당 동지회’를 만든다고 날뛰잖갔시요?”“뭐요? 자유당 창당 동지회?”이기붕 의장은 놀라워했다. 배은희라면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데, 뭐 또 ‘자유당 창당 동지회’를 만든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예, 내일 시천교 강당에서 발기인 회의를 연다고 합네다.”“무슨 소리요. 장의원? 우리 자유당이 엄연히 존재해 있는데, 창당 동지회란 뭐 말라죽을 귀신이야?”이기붕 의장의 입에서 심한 말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그래, 그 자들이 나와 맞서 보겠다는 수작이군?”“말하자믄 그렇디요.”“말하자면이 아니라 사실이 그런거잖아!”이기붕 의장은 마구 신경질을 부렸다. 그런가 했더니 이어서 말했다.
“누구 누구야. 주동 인물이?”“예, 배은희, 이갑성을 비롯해서 유지원, 함두영, 박재홍, 박기운, 김두한 등 현역국회의원과 족청계로….”“뭐야? 족청계?”이기붕 의장은 족청계라면 자다가도 기겁을 하고 깰 만큼 펄쩍 뛰는 사람이었다.“깨버려! 때려부수란 말예요!”이기붕 의장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가지고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예, 저도 그럴 생각으로 대책을 세워 놓았시요.”장경근 의원은 간사하게 웃으며 말했다.”대책을 세워 놓았어요?”“예, 조금도 염려마시라요.”이렇게 장담한 장경근 의원은 문을 열고 누군가를 불러들였다.“아, 이정재씨!”장경근 의원의 부름을 받고 들어선 사람은 깡패 두목 이정재였다.“각하! 부르셨습니까?”이정재는 큰 체구를 굽히며 극진히 절을 했다.
“이동지, 언제….”이기붕 의장은 언제 감옥에서 출옥했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뒀다. 이정재는 김두한 의원 납치사건으로 걸려들어 잠시 서대문 형무소에 가 있었다. 이윽고 이정재가 입을 열었다.“각하의 은혜로 이렇게 건재합니다요.”이정재는 황송한 듯 연신 머리를 굽신거렸다.“앉아요, 거기.”이기붕 의장도 백만 대군을 만난 것처러 어둡던 얼굴이 확 펴졌다.“이동지, 의장 각하를 위해서 또 한번 일을 맡아주어야 갔시요.”장경근 의원이 작은 눈을 깜박거리며 옆에서 거들었다.“아, 하다마다요. 각하를 돕는 일이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이정재는 전날의 실수를 사죄라도 하듯이 얼굴을 들지 못한 채 어쩔줄을 몰라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