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이 그는 정회를 선포하고, 여야간의 과열이 식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어쨌든 자유당으로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오늘 안에 모든 것을 끝내버려야 하기 때문에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더욱이 어떠한 일이 있어도 개헌안에 찬성토록 설득하거나 그것이 안되면 최소한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막겠다고 장담했던 이정재가 야생마같은 김두한 의원을 놓쳐 국회의사당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이기붕 의장이나 그의 측근 참모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의장 각하!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이기붕 의장의 측근 참모들이 조심스런 얼굴로 물었다.“강행하세요. 나는 어른께 약속했어요. 국민이 원하는 헌법 개정인만큼 상정 즉시 통과될 것이라고요.”비록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이기붕 의장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아, 네. 알겠습니다.”자유당 참모들은 다시 모여 전략을 짠 다음 본 회의를 속개시켰다.그동안 김두한 의원은 라디오 임시뉴스를 듣고 부랴부랴 양복을 가지고 달려온 비서들에게 옷을 받아 갈아 입었다.
“나 김두한은 불사조야. 내가 그깟놈들 손에 죽을 줄 알고? 어림없지.”김두한 의원은 여러 의원들에게 둘러싸여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이야기를 신명나게 얘기하고 있었다.그것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리영화를 관람하는 듯한 아슬아슬한 이야기였다.정말이지 그냥 웃어 넘길 일이 아니라고 의원들은 생각했다. 사실 남의 얘기가 아니고 의원들 자신이 당하게 될 일이 아닌가.“이러다간 정말 나라가 망하고 말겠구만!”호랑이상의 조병옥 박사도 김두한 의원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윽고 사회자 최순주 부의장의 목소리가 의사당 안을 울렸다.“지금부터 제82차 본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최순주 부의장이 방망이를 쳐서 개회를 알리고 그들의 전략대로 밀고 나가려 했다.그러나 과열된 야당의원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우선 김두한 의원을 테러한 그 배경부터 조사하고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아우성쳤다.“백주에 헌역 국회의원을 개헌안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살해하려는 테러단이 난무하는 이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개헌안을 심의할 수 있단 말이오!”
“이건 제2의 부산 정치파동이다!”이렇게 되니 자유당으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하루 동안에 모든 것을 끝내버리려던 그들은 작전을 변경시켜 야당의원들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그래서 어르고 구슬리기를 엿새, 드디어 그들은 야당의원들이 지친 기색을 알자 전격적으로 질의종결을 해버리고 표결에 들어갔다.그러나 야당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시간을 끌어 국민의 여론이 비등해지기를 바랐으나 수적으로 밀고 나오는 자유당에 의해 모든 것이 봉쇄되고 말았다.투표 진행은 30분, 역사적인 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재적의원 203명 중 136표를 얻어야 개헌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3분의 2석이 된다.“이제 모든 의원이 개헌안에 대한 가부투표를 마치셨습니다. 곧 개표를 시작할테니 감표의원 나오세요.”사회를 맡은 최순주 부의장이 감표의원을 호명했다.(아, 부결돼야 할텐데….)야당의원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당의원들은(통과되지 않으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으로 표정을 짓고서 개표 결과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개표가 완료되고 검표가 끝나자 최순주 부의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투표결과를 발표했다.“재석의원 203명 중 재적 202인, 가에 135표, 부에 60표, 기권 7표. 이에 본 개헌안은 부결되었습니다.”의사봉이 땅땅땅 세번 울리자 의사당 안이 갑자기 떠나갈 듯 소란스러워졌다.“만세! 만세!”“민주주의가 다시 태어났다!”야당 의석에서는 모두 일어나서 발을 구르며 기뻐했고 여당 의석에서는“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야?”“어이쿠, 이젠 끝장났구나!”초상 난 집처럼 탄식과 한숨만이 흘러나왔다.“선생님, 이겼습니다! 이겼어요!”“아, 김의원. 수고했네. 이번 승리는 자네의 공이 컸어.”<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