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2호> 내가 대통령 하겠소!
<제502호> 내가 대통령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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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12-16 09:00
  • 승인 2003.12.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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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통령 하겠소!”“흥분하지 말고. 정치란 흥분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잘 해보라구!”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조병옥 박사의 왕방울 눈은 호랑이 눈, 김두한의 작은 눈은 사자의 눈. 호랑이와 사자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잘 해보세.”“예, 힘써 해보겠습니다.”김두한은 조병옥 박사를 대할 때마다 웬지 위압감을 느꼈다. 어느 때는 형님처럼 다정다감하고, 또 어느 때는 아버지처럼 근엄하게 꾸짖어주는 조병옥 박사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조병옥 박사는 또 조병옥 박사대로 김두한을 만나면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각이 나서 측은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하였다.(저 녀석을 잘 공부시켜 키웠으면 큰 인물이 하나 날 수 있었을 텐데.)이런 생각을 하며 조병옥 박사는 누구보다도 김두한을 아끼고, 김두한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섰던 것이다.뒷골목 세계에서 주먹으로 용맹을 떨쳤던 김두한과, 정치무대에서 군림하던 조병옥 박사와 만나게 된 것은 해방과 더불어서였다.

한 사람은 반공청년단을 이끌고 빨갱이를 소탕하는데 일익을 담당했고, 또 한 사람은 미군정 시절에 경무부장으로서 간교한 북한 공산당 폭동을 진압하다가 서로 의기가 투합했던 것이다.“조박사님, 저는 아버지도 형님도 없습니다. 제 형님이 되어 주십시오.”김두한 의원은 취기가 오르자 용기를 얻었는지 불쑥 이렇게 말했다.“어, 그 좋지 ….”조병옥 박사도 취기어린 눈으로 빙그레 웃으며 응석부리는 김두한 의원을 건너다 보았다.“정말입니다. 이제부턴 조박사님을 내 친형처럼 모시겠습니다.”김두한 의원은 비록 취했지만 그 표정만은 진지했다.“좋아, 그럼 이제부터 동생이라고 부르겠네, 동생!”호방하고 너그러운 성품의 조병옥 박사는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형님!”김두한은 왈칵 울음을 쏟으며 조병옥 박사의 손을 잡았다.“이 사람아, 대장부가 울긴 ….”그러는 조병옥 박사의 눈에도 어느 틈엔지 그윽히 눈물이 고여 있었다.“이렇게 질질 끌다가는 공고 3개월이 지나버리지 않겠어요?”초조해진 이기붕 의장은 참모들을 불러 놓고 대책을 논의했다.

“그렇다구 해서 지금 개헌안을 상정하면 통과가 어려울 것 같은데 어쩌지요?”국회 원내총무인 이재학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들은 아무리 자기네 당 의원들을 점검하고 회유해도 승산이 없었던 것이다.“죽으나 사나 한번 해보는 거디요 뭐. 정히 안되믄 강압적으로라도 해나가는 거야요.”언제나 강경론을 펴곤 하는 책사 장경근이 실눈을 깜박이며 야무지게 말했다. 그러자 이기붕 의장이 나서며“강압으로 한다고 되겠소? 지금까지 아무리 음성적인 압력을 가해도 듣지 않던 자들인데 ….”이기붕 의장은 고개를 흔들었다.“그러믄 방법은 단 한 길밖엔 없는 것이야요.”장경근 의원은 언제나 책사답게 얕은 꾀에 머리가 번뜩이고 있었다.“그래,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소?”이재학 원내총무가 궁금하여 먼저 물었다.“장의원, 어서 말해 보세요.”이기붕 의장도 재촉하며 장경근 의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국회법을 개정하는 것이야요. 이제까지는 중요 안건을 비밀투표로 처리했는데, 이걸 공개투표로 하는 것이디요.”“뭐? 공개투표?”“아니, 장의원!”“뭐 그렇게 염려마시라요. 다른 나라의 예도 있고, 또 헌법개정같은 중대사를 비밀로 처리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야요. 안 그렇습네까, 의장 각하!”장경근 의원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흐흠!”“하,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결국 그들이 짜낸 결론은 국회법을 개정하여 이번 삼선개헌안을 기명투표로, 즉 공개투표로 하자는 것이었다.“그럼, 어서 의원총회를 열어 당의 의안으로 만들어 국회에 상정토록 하세요. 시간이 없으니까 서두르는 게 좋을 것이에요.”그리하여 자유당은 국회법 개정 문제를 가지고 의원총회를 열었다.“우리가 오늘 이렇게 모인 것은 국회법을 개정하는 의안을 상정시키기 위해서입니다.”이기붕 의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니 지금 삼선개헌안을 통과시키느냐 못하느냐 하는 중대시기에 그따위 국회법 개정안 같은 하찮은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자는 게요?”과격한 몇몇 의원이 큰소리로 더들며 거센 반발을 보였다.

“아, 좀 조용히 하세요. 우리가 지금 삼선개헌안을 원만하고 공정한 방법으로 통과시키기 위하여 국회법을 개정하려는 것이에요.”이기붕 의장이 강경한 목소리로 의원들의 정숙을 요청했다. 그러자 떠들던 의원들은 찔끔했다.이기붕 의장의 태도가 너무도 강경하고, 비장했기 때문이었다.“생각해 보세요. 개헌안과 같은 중대한 문제를 비밀투표로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민주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도 이런 중대 문제는 기명투표 한대요. 말하자면 역사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서도 기명투표가 민주주의 원칙인 것 같아요.”이기붕 의장의 그럴듯한 설명에 대부분의 자유당 국회의원들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일부 반대파에서는 강경하게 반발하고 나섰다.“기명투표는 안됩니다. 기명투표란 곧 공개투표를 하자는 말인데, 우린 그런 치사한 비민주적인 오점을 남겨 역사의 심판을 받기는 싫어요.”<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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