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0호> 조병옥 박사와 의형제 맺은 김두한
<제500호> 조병옥 박사와 의형제 맺은 김두한
  •  
  • 입력 2003-11-27 09:00
  • 승인 2003.11.27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기붕의장은 엉뚱한 말을 꺼내었다.“무슨 일로요?”“어, 배은희 의원을 어른께 가까이 못하도록 막으려는 것이에요.”이 말에 장경근 책사가 말했다.“아, 그렇습네까? 거 참 잘 됐구만요. 그렇잖아도 그 영감쟁이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데.”장경근 의원은 반색을 하며 환하게 웃었다.“배은희 의원이 경무대 출입을 못하도록 막는 것은 참 잘하신 일이에요.”이재학 총무도 한마디 거들었다.“그런데 배은희 의원이 이끄는 반대파가 정확히 몇명이나 되지요?”이기붕의장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묻는다.“아, 그것 말씀이야요. 그러니끼니 고거이 좀 이상하게 되었시요. 그 왜 있지 않습네까. 신임 변영태 국무총리 인준 때 저들이 결속한 걸보면 도합 75명이야요.”장경근은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뭐라? 75명이나 된다구?”이기붕의장은 아직도 반기를 든 자유당 의원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막연히 몇 십명이 작당하여 자기에게 반항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75명이 모두 한덩어리로 결속한 세력은 아니구요. 그저 배반할 가능성이 많은 의원 수가 그렇다는 말씀이지요.”온후한 이재학 의원이 이기붕의장을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기붕의장은 표정이 노랗게 질린 채 말을 하지 못했다. 이윽고 장경근 의원이 나서며 “의장 각하, 안심하시기라요. 배은희 영감쟁이만 잡으면 모두 날개 부러진 매꼴이 되니까네 저들이 뭘 어쩌겠습네까?”그 특유의 장담하는 소리를 텅텅 내쏟는 것이었다.“장의원, 그렇게 장담해 놓구 먼저처럼 또 날 골탕먹이려구?”이기붕의장은 조그만 체구에 소심한 편이지만, 그 답지않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장경근 의원이 당황해 하며 “아, 아닙네다. 제가 어찌 흰소리를 하여 의장 각하를 골탕먹이갔습네까!”손까지 흔들어대며 말했다. 그러자 이재학의원이 나서며“…그건 장의원 말이 맞아요. 반대파는 사실 어떤 조직적인 힘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고 자연발생적으로 모인 집합체이기 때문에 배은희씨만 잡으면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하고 장경근 의원이 편을 들어주었다.“그럼 이 총무는 거기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까?”이기붕의장은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예, 여기 반대파의 명단과 그 성분을 분석한 자료를 가지고 왔습니다.”이재학 총무와 장경근 의원은 가지고 온 두툼한 서류뭉치를 펼쳐 놓는 것이었다.“이 사람은 원래 족청계(族靑系)로서 지금은 이갑성 쪽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장조카가 6·25 사변때 부역(附逆)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경찰이 다그치면 꼼짝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분석해 나가다가 맨 나중으로 김두한 의원에 이르러서였다.“김두한이? 이 자는 언제나 곯치 아픈 사람입니다.”이기붕의장은 양미간을 찌푸렸다.

이재학 총무의 말은 계속되었다.“여기 분석표대로 김두한이 제일 문제아로 나와 있어요. 자유당 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공공연히 야당과 손을 잡고 개헌 반대운동을 펴고 있단 말씀이에요.”이재학은 이렇게 말하고는 머리를 흔들어대기까지 했다.“그러니끼니 말씀이야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고 봐요.”장경근 의원이 눈을 깜박이며 이기붕 의장의 눈치를 살폈다.“장의원 말씀해 보세요. 무슨 좋은 묘안이 없겠는지?”이기붕의장은 여전히 벌레씹은 것 같이 오만상을 찌푸리고서 말했다.“와 없갔시요. 간단하디요.”땅딸보 장경근 의원은 회심의 미소까지 지어보이며 자신있게 말했다.“어떤 방법이 있는데?”“의장 각하께서 분부만 내리시라요. 그럼 간단히 해결되는 수가 있시요.”“어떤 방법이 있길래 그래? 빨리 말해 보라구.”“거 왜 있지 않습네까. 주먹 쓰는 이정재 말이야요. ‘눈에는 눈’ 하는 식으로 이번에 한번 써먹어 보시라요.”

순간, 이기붕의장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바로 그것이다 싶었다. 이기붕의장은 곧 비서를 시켜 이정재를 부르라고 지시했다.“이정재를 시켜서 친다면 사회에서도 저희 깡패들끼리 헤게모니 쟁탈전쯤으로 알게 아니갔습네까.”장경근 의원은 자기의 책략이 놀랍지 않느냐는 듯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다동(茶洞) 골목길 깊숙이 들어앉은 술집이라기보다는 요정집. 손님도 별로 없이 요정집 안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이 조용한 요정의 뒷방에 사나운 호랑이가 한마리 떡 버티고 앉아 있었다.“원 이 녀석. 싸울땐 비호(飛虎)처럼 날면서 어찌 걸음이 이리 느린고?”호랑이는 이마에 주름살을 깊게 지으며 혼자 술을 자작자음하고 있었다.“영감님, 기생 아이를 들여보낼까요?”방문 밖에서 요정집 지배인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어왔다.“좀 있다가.”방안의 대답은 짤막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우렁차고 힘이 있었다. 아까부터 방안에 혼자 앉아서 누군가를 초조히 기다리며 술을 자작자음하고 있는 호랑이상의 사나이. 그는 야당을 이끌어가다시피 하고있는 정치인 조병옥 박사, 바로 그 사람이었다.<다음호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