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3호> 대한민국에서 미국식 의회가 왠말이냐
<제493호> 대한민국에서 미국식 의회가 왠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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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10-09 09:00
  • 승인 2003.10.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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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그냥 두지 않겠다” 이기붕 분노이정재라면 동대문시장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깡패두목이 아닌가. 한때는 김두한의 부하로서 동대문지구를 담당했던 소두목이었으나 김두한이 손을 뗀 지금에는 사단병력의 깡패를 거느리고 있는 실력있는 두목으로 성장해 있었다.더우기 그는 정계에 진출하려는 야심을 품고 경무대 경비실에 있는 곽영주 경무관과 친하게 지내는 한편, 이기붕 의장에게도 손을 뻗쳐 선을 대고 있었던 것이다.이기붕 의장은 또 이기붕 의장대로 자기가 갖지 못한 완력을 이정재에게서 얻어 보려는 욕심으로 그를 가까이 하며 뒤를 보아주고 있었다.“내 이제까지는 참았지만, 김두한이 이놈을 단단히 혼내 주어야겠어.”이기붕 의장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출입문이 열리며 “의장각하! 괜찮으시겠습네까?”이때 입술에 붕대를 붙인 장경근 의원이 일그러진 얼굴을 해가지고 들어왔다. “아니, 장의원! 왜 병원에 누워있지 않고 나왔소?”이기붕 의장이 놀라서 일그러진 장경근 의원의 얼굴을 쳐다봤다.“저야 뭐 어떻갔습네까. 그것보다두 개헌안 문제가 염려스러워 한가하게 누워 있을 수가 있어야디요.”“아, 그래두 입이 아플텐데……….”이기붕 의장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이까짓거 아무 것두 아닙네다. 까짓 이빨 두어개 빠졌다구 죽습네까? 개헌안을 어케 말썽없이 통과시키느냐가 문제디요.”“내 장의원의 충정을 모르는 배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 몸을 해가지고 어떻게 일하시겠소? 몸도 좀 생각하셔야지.”이기붕 의장은 장경근 의원의 그 처참한 몰골을 보자 더욱 분노가 치솟았다. 이윽고 이기붕 의장은 격앙된 어조로“내 이놈을 이번엔 그냥 안두겠어요. 아무리 제놈이 깡패출신이라고는 하지만 그럴 수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장경근 의원이 흥분하는 이기붕 의장을 말렸다.

“고정하시라요. 의장각하!”“난 이번엔 절대 용서 못해요. 이정재를 불렀으니 곧 올거예요.”“이정재를 불러 뭘 하실라구요?”“김두한이를 혼내주라고 이르겠어요.”“의장각하! 고정하시라요. 지금 감정을 폭발시킬 때가 이닙네다.”“아니, 장의원? 언젠가는 장의원이 앞장서서 김두한이를 징계하자고 주장하지 않았소?”“예, 그때야 기랬디랬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양상이 다르디 않습니까?”“양상이 다르다니? 어떻게 다르단 말이오?”“전에야 국회 본회의에서 모욕적인 발언과 해당행위를 했으니끼니 응당 징계를 가해도 명분이 서디만, 이번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집안에서 일어난 일인데다가 대사(개헌안 통과)가 박두했으니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당내 반발을 살 우려가 있는 것이야요.”“음, 그러구보니 그럴 듯한 말이군.”이기붕 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경솔함을 뉘우치는 것이었다.이때 심부름 갔던 비서가 들어와 보고를 했다.“의장각하, 이정재씨를 불러 대령했습니다.”순간, 이기붕 의장은 가늘게 경련을 일으켰다.

“음, 수고했어. 내가 갑자기 몸이 불편하여 만나기가 어려우니 자네가 알아서 섭섭하지 않게 해서 돌려 보내라구.”“녜?”비서는 무슨 말인지 그 뜻을 잘 알수가 없어서 멍청히 서 있었다.“아, 아닙네다, 의장각하!”장경근 의원이 책사답게 작은 눈을 깜박거리며 이기붕 의장을 막았다.“기왕 예까지 부르셨으니 일단 만나보시라요. 나중에 얼마든지 이정재의 힘을 필요로 할 때가 있을 것이니, 잘 위무하여 두시는 것이 좋갔시요.”“응, 참 그렇겠구만.”이기붕 의장도 장경근 의원의 말뜻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기붕 의장은 곧 비서에게 “나가서 이정재를 들어오라구 해요.”왕년의 씨름선수답게 체격이 우람한 이정재가 돌아가려다 말고 비서의 부름에 송구스러운 걸음걸이로 이기붕 의장 앞에 와 넙죽 절을 했다.“그동안 기체 안녕하셨습니까?”“자네도 그동안 잘 있었나?”“예, 소인이야 뭐 의장님 덕분에 사업 잘 되고, 아이들도 다 잘 있습니다요.”“그 참 반가운 말이군.”이기붕 의장은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불쑥 이렇게 물었다.“자네 밑에 쓸만한 부하가 몇 명이나 있나?”“예?”“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심복이 몇 명이나 되느냐는 말씸이야요.”옆에 앉아 있던 장경근 의원이 말 참견을 했다.

“아, 네, 임화수, 유지광이 같은 뛰어난 아이도 있고, 행동대로 내세울 수 있는 아이가 열댓명, 그 외에 동원할 수 있는 조무라기 아이들이야 한 이백여명이 되지요.”이정재는 가뜩이나 넓은 어깨를 좌악 펴고서 자랑스럽게 말했다.“음, 꽤 많군.”이기붕 의장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런가 했더니“요새 자유당 일은 잘 보나? 종로에서 청년부장을 맡았다지?”“예,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지금은 청년부에 가입된 아이들이 한 삼백명 넘습니다.”“오, 그 반가운 소식이군. 잘 좀 해보라구.”이기붕 의장은 이렇게 말하여 이정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며 격려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문갑에서 백금으로 만든 회중시계를 하나 꺼내어 이정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이건 증표야. 앞으로 날 좀 도와줘.”“고맙습니다. 제 몸이 가루가 될 때까지 받들어 모시겠습니다.”이정재는 너무도 황송해선지 눈물까지 주르륵 흘렸다.“그럼, 좋아. 오늘은 그만 가보게. 내 다음에 일이 있을 때 다시 부를 테니.”이기붕 의장은 부드럽고 다정하게 말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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