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9호> 말썽이된 첫 발언
<제489호> 말썽이된 첫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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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09-08 09:00
  • 승인 2003.09.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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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은 충혈된 눈으로 의원들을 둘러보았다김의원은 맹수가 포효하듯 사자후를 토했다.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옳소!”“옳소!”방청석에 있던 김두한의 부하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소리소리 질렀다.“방청석에서는 조용하세요.”의장석에 앉아 있던 이기붕 의장이 방청석을 향해 정숙하기를 명했다. 그러나 듣지 않아 마침내 경위들이 달겨들어 소란한 방청석을 진정시키는 등 그래도 떠드는 사람들은 끌어내었다. 김의원은 발언을 계속했다.“의원동지 여러분! 우리 나라는 법치국가예요. 법치국가에서 이럴 수가 있어요? 함부로 사람을 납치하고, 구타하고, 구속하고… 나 김두한은 눈물을 머금고 자유당에 입당한 것입니다.”흥분한 김두한은 단상을 탕 내리쳤다.그러는 바람에 물컵이 굴러떨어져 챙강하고 깨졌다.

그런가 하면 의사당 안이 다시 술렁거렸다.“아니, 저 자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야?”자유당 의석에서 어떤 의원인가 이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런가 하면 의장석에 앉아 있는 이의장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마치 화롯불 앞에 다이너마이트를 놓고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그러나 이 김두한이는 결코 소신에 어긋나는 일에는 찬성하지 않겠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맹세하겠습니다.”김두한은 또 한 번 단상을 내리쳤다.“옳소!”“옳소!”방청석에서는 또다시 술렁거리는가 하면 소란이 일었다.

“아니, 이 자가 보자보자 하니까, 입에서 튀어나오는대로 지껄이고 있네.”자유당의 책사인 장경근 의원은 안절부절 못하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몸둘 바를 몰라했다.아무튼 김두한은 솥뚜껑같은 주먹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하고 싶은 말을 죄다 쏟아 놓는 것이었다.“나, 김두한은 이 자리를 빌려 나를 뽑아준 종로 을구 유권자와 전국민에게 사과를 드립니다.… 무엇이냐 하면, 나는 이 무쇠같은 주먹을 가지고 독재와 끝까지 싸우겠다고 약속하고, 또 선거구민들은 그렇게 믿고 나를 뽑아 주었는데, 나는 그 뜻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김두한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김두한의 발언은 계속되고 있었다.“그러나 이 김두한이는 나를 밀어준 선거구민과 국민들을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내가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자유당에 몸담고 있지만, 정의를 위해서 이 주먹을 쓸 것입니다! 결단코 배반하지 않겠습니다.”이 엉뚱한 발언에 야당에서는 환영의 박수를 쳤다.“잘 한다. 잘 해!”야당의 보스격인 조병옥 박사는 그 무서운 호랑이상을 펴고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러나 자유당쪽에서는 반발이 심했다.“집어쳐라!”“그만 내려와라!”자유당 의원들은 마구 이렇게 악을 써댔다.“시끄러워! 너희들이 뭔데 함부로 내려와라 마라 하는거야! 나는 당당히 발언권을 얻어서 발언하고 있는 중이야!”김두한이 거세게 나오자 자유당 의석에서는 쥐소리도 나지 않았다. 김두한은 계속해서 발언했다.“나 김두한은 내 목에 칼을 들이댄대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야 마는 사람입니다. 더욱이 국민의 대변자로 이 의정단상에 선 이상 왜 내가 할 말을 못한단 말이오.”김두한은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의원들을 둘러보았다.

“의원동지 여러분!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시오. 여러분도 겪어보아 잘 아시겠지만 이번 5·20 선거는 선거도 아무 것도 아니에요. 경찰이 뒤에서 조종하는 깡패들이 백주에 테러를 하고, 경찰과 공무원이 공공연히 선거 간섭을 하고, 공갈, 협박, 납치를 일삼는 당락을 조작하는 사상 최대의 부정선거였다 이 말이에요!”김두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의사당은 온통 발칵 뒤집혀 수라장이 되었다.“집어 치워!”“이 새끼야, 내려오지 못해!”재떨이와 명패가 날고, 멱살잡이가 벌어지는가 하면 곳곳에서 비명과 아우성이 일어났다.“조용하세요! 그만 진정들 하세요!”이기붕 국회의장이 아무리 정숙을 부르짖어도 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하는 수 없었는지 이기붕 의장은“정회를 선포합니다.”하고 방망이를 세번 때렸다. 정회 선포로 의사당 안의 혼란은 일단 멎었지만, 김두한 의원의 발언 여파는 매우 컸다. 그것은 마치 물결파장처럼 점점 크게 번져나가 정치문제로까지 비화했다.

특히 조병옥 박사는 김두한 의원에게 다가와, “김의원, 참 잘 말했어. 김의원다운 말이었어. 백야 장군께서 지하에서 들으시고 매우 기뻐하셨을 걸세.”이렇게 말하며 격려해 주었다. 그러자 김두한 의원은 그답지 않게 수줍어하기까지 하며“뭘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도 못했는데요……….”조병옥 박사가 내미는 악수를 받았다.그런데 그날, 서대문 ‘경무대’라고 불리는 이기붕 의장 댁에서는 자유당의 수뇌들이 모여 김두한의 발언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의논이 분분했다.안되갔시오. 의장님, 적절한 징계조치를 하여 본보기를 보여야디요.”자유당의 책사인 장경근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그러나 이기붕의장은 입장이 매우 난처한 듯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가까스로 개헌선인 136명을 겨우 채웠는데 함부로 징계해서 반발을 사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언제나 신중하고 온건한 이재학 의원의 말이었다.“기래도 이번 만큼은 따끔한 징계를 내려서 다시는 그따우 헛소리를 못하게시리 해야갔시오. 앞으로 당을 이끌어 나가려면 당원들의 단결과 행동 통일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져야 할텐데, 김두한 의원같은 반동간나새끼가 나오면 곤란하단 말씀이디요.”지혜의 주머니라고 불리는 자유당의 책사인 장경근은 어디까지나 김두한 의원을 징계조치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기붕 의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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