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실에 들어서 보니 아닌게 나니라 낯선 사람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낯선 사람은 김의원을 보더니 넙죽히 절을 하며“김의원님, 고생이 많으셨지요?”낯선 젊은이는 은근한 목소리로 김의원에게 말했다.“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누구의 지시로 날 만나러 왔소?”김두한의원은 퍼뜩 잡히는 데가 있어 그 낯선 젊은이를 노려보았다.“자, 좀 앉으십시오. 앉아서 차를 드시면서 차근차근 의논합시다.”젊은 친구는 어디까지나 공손하고 침착하게 말했다.“뭐요? 어서 용건이나 말하시오.”김두한의원은 권하는 의자에 앉으면서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비교적 부드러운 편인 젊은 친구는 김의원에게 담배를 권했다.
그리고 김의원의 눈치를 살펴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것이었다.“실은………저는 서대문 이기붕의장댁에서 보낸 사람입니다.”“뭣이? 서대문 이의장댁에서 온 사람이라고?”김두한의 눈빛이 불을 뿜듯 번쩍였다. 이기붕의장이라면, 자유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김두한의원도 간수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 국회가 개원되자 이기붕씨가 국회의장에 당선되었다는 것을.“그래 나를 찾아온 용건이 뭐요?”김두한의원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이렇게 물었다.“의장님께서 김의원님의 신변을 무척 염려하고 계십니다……….”이의장이 보낸 젊은이는 째려보듯이김두한의원의 표정을 읽고 있었다.
“이의장이 어째서 나한테 그토록 관심을 가지고 있지?”“아, 그 분은 누구보다도 인정이 많고 자상하시니까요.”“그래? 내 신변을 알아 어쩌겠다는 거요? 날 석방시키기 위해 국회에 결의안이라도 낸답니까?”“그야 뭐………의장님께서 힘쓰시면 국회 결의를 거치지 않더라도 석방시키는 방법이 있겠지요……….”“그럼 좀 빠른 시일내에 석방시켜 달란다고 전하시오.”김두한의원은 그들이 왜 자기를 찾아와 이런 미끼를 던지는지 빤히 속을 들여다 보면서도 모르는 척하고서 말하는 것이었다.“의장님께서야 당장이라도 그런 단안을 내리고 싶으시지만, 주위의 여론도 있고 해서……….”
“주위의 여론이 어떻다는 거요?”“실은, 김의원님이 우리 자유당 소속이라면 주위 여론이야 어떻든 당장에 단안을 내리시겠지만……….”“난 무식해서 당신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소. 이거면 이거구, 저거면 저거라구 딱 부러지게 잘라서 이야기 하시오!”“아, 그러지요………. 실은 김의원님은 무소속으로서 우리 자유당 입후보자를 물리치고 당선되셨다고 당내 반발이 거세어 의장님 마음대로 결정하기에는 힘이 든다 이런 말이지요. 그러니, 이런 기회에 김의원님이 우리당에 입당하시면 의장님 입장도 서시고 또……….”
젊은이가 계속해서 무슨 말인가 꺼내려 할 때 김두한의원이 나서며, “집어쳐! 그따위 여우같은 소릴 하려구 날 찾아왔어? 어림없는 소리말아.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갈 것 같아?”김두한은 주먹으로 책상을 꽝 치고 일어서버렸다.“다시는 내 앞에 와서 그따위 여우같은 소릴 지껄이지 마!”문을 확 열어젖히고 나가는 김두한의원의 주먹은 부르르 떨고 있었다. 김두한의원을 설득하여 자유당으로 끌어 들이려고 왔던 젊은이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가 이기붕의장에게 그대로 보고했다.(김두한의원이 그처럼 강경하게 반발하면 큰일인데……….)소심한 이기붕의장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그 때였다.“의장각하, 까짓거 염려 놓으시라요. 시간이 지나면 제가 안들어오곤 못배길거야요.”옆에 있던 이기붕의장이 가장 신임하고 있는 참모 장경근의원이 말했다.“그래, 무슨 좋은 수라도 있소? 장의원?”이의장이 귀가 솔깃한지 귀를 장의원이 앉아 있는 자리 가까이로 기울이기까지 하며 말했다.
“있구말구요. 그까짓거 쉽디요.”장경근의원은 이렇게 말하며 책사답게 실눈을 깜박거렸다. 그리고 이의장 옆으로 다가가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이듯이 말했다.“음, 음, 그것 참 신통한 착안이로군.”이의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자유당은 사실, 3대 국회가 개원된 후 말할 수 없는 고민에 싸여 있었다.그들은 이번 3대 국회에서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이승만 박사를 종신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삼선개헌안을 추진시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재적 국회의원 203명 중 개헌을 할 수 있는 3분의 2선인 136명이 있어야 하는데, 당선된 자유당 소속 국회의원은 불과 114명 뿐이어서 개헌을 추진하려면 적어도 무소속 국회의원 22명 이상을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끌어들여야만 했다. 이 일로 해서 ‘서대문 경무대’라고 불릴만큼 실질적인 자유당 살림을 도맡고 있는 이의원은 그의 집에 참모들을 불러 놓고 연일 구수회의를 열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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