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선 개헌을 하여 영구집권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돼요!”김두한은 포효하는 맹수처럼 청중에게 부르짖었다. 그는 비록 가방끈이 짧아 무식하다고는 하나, 그것만은 알고 있었다.삼선 개헌으로 현직 대통령인 이승만을 제왕이나 다름없는 종신대통령으로 만들려는 비열한 음모를.“여러분! 나 김두한은 비록 소학교 2학년 중퇴로 무식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알것은 알고 있습니다. 삼선개헌이 뭡니까? 우리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국회의원이 될 수 있고, 대통령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삼선 개헌으로 이승만 박사를 죽을 때까지 종신대통령으로 만든다는 거예요. 그것은 제왕입니다. 이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무슨 짓거리입니까? 이게 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입니까. 이것이 독재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뭐겠습니까.”김두한은 시뻘겋게 열이 올라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김두한은 이어서 또 외치듯 열변을 토했다. “여러분! 여러분이 국회에 보내준다면 이 김두한의 주먹이 가만 놔두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김두한의 호소력 있는 능변과 어릿광대 같은 몸짓에 청중들은 폭소와 박수를 보내었다.
김두한의 연설은 계속되었다.“지금 이 나라에는 별의별 놈들이 내가 애국자라며 뽐내고 다니는데, 뭐 그것이 다 진짠줄 알아요? 우리 백성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왜놈들 앞잡이 노릇이나 하고, 독립투사며 애국지사들을 밀고하여 감옥에 잡아 넣던 놈들이 지금은 또 이승만한테 붙어서 꼬리를 치며 삼선 개헌을 하겠다는 것입니다.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아무튼 김두한은 경찰의 심한 방해공작과 박해를 받았지만 자기의 소신을 조금도 굽히지 않고 펴나갔다.
그런데 그의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 뛰었던 참모들과 부하들이 하나 둘씩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경찰에 잡혀들어가 매를 맞거나, 온갖 구실로 붙잡혀 감옥에 들어갔다. 김두한의 연설은 계속되었다. “여러분! 나를 믿으시오. 나 김두한은 누구도 겁내지 않아요. 내 부하들은 지금 아무런 죄도 없이 경찰에 붙잡혀 들어가 매를 맞고 감옥으로 끌려가지만, 나는 눈 하나 깜짝 안해요. 나나 내 부하들은 이미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독재와 싸우자고 말입니다. 그래요! 이 새끼들이 수틀리게 굴면 이 주먹이 용서치 않을 거예요.”김두한은 그 솥뚜껑같은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얼마나 세게 내리쳤는지 책상이 와장창 부서져 나갔다.“이렇게 묵사발을 만들고 말 거예요.”김두한은 연설을 여기에서 마쳤다.빵깐에 앉아 있는 김두한의 눈엔 어느덧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부하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프기만 했다.(녀석들, 나 때문에 아무 죄없이 잡혀들어가 고생들이 많을 거야.)그의 눈물어린 눈엔 충성스런 부하들의 얼굴이 하나 하나 스쳐지나갔다.(조금만 기다려라. 내 곧 나가서 너희들을 구해 줄게. 그리고 너희들의 평생 소원인 ‘자활개척단’을 만들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게.)그랬다. 김두한의 꿈은 ‘자활개척단’을 만들어 아무 일 없이 거리를 방황하는 부랑아들과 거지, 그리고 깡패들을 수용해서 자활의 길을 열어 주고, 신천지를 개척하는 것, 이것이 그의 최대의 꿈이요, 국회의원에 입후보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였다.(국회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이것부터 추진하여 전국적으로 ‘자활개척단’을 조직하는 법안부터 만들고, 이를 정부에서 적극 지원하도록 투쟁해야 돼.)김두한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주었다.
그러다가도 자기가 빵깐에 갇혀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이 새끼들, 어째서 빨리 내놓아 주지 않는거야?”김두한의원은 마침내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감방안을 왔다 갔다 하며 악을 써댔다.(사람 참, 미치겠군……….)김두한의원은 눈을 들어 철창 밖 하늘을 내다봤다. 초여름의 하늘은 맑고 화창했다. 화창한 하늘을 내다보고 있노라니, 전신이 근지러워졌다. 젊음이 용솟음치는 근육이 저 혼자 꿈틀거렸다.(에잇, 이거………)그는 두 손으로 머리칼을 싸쥐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갖 상념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찌 사내자식이 그렇게도 참을성이 없느냐?”이런 말이 백야 김좌진 장군의 목소리로 환청되어 김두한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아버님, 소자가 잘못했습니다.)김두한은 그가 여섯살 때 외할머니를 따라 만주에 찾아가 모란강 역두에서 한 번 뵌 일이 있는 아버지, 백야 김좌진 장군의 근엄하면서도 자애롭던 얼굴을 그려보았다.(아버님, 소자 아버지의 뜻을 따라 부끄럽지 않게 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 힘써 일하겠습니다.)김두한의원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심호흡을 길게 한 뒤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그러자 콘크리트 바닥에서 전해오는 싸늘한 느낌과 어떤 새로운 결의가 동시에 전신을 짜릿하게 했다. 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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