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3호> 깡패국회의원
<제483호> 깡패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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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07-31 09:00
  • 승인 2003.07.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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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한테 한대터지고 싶어”“………저를 깡패, 깡패하지만 저는 과거의 김두한이가 아닙니다. 제가 어려서 불행하게도 부모를 잃고 거지가 되어 떠돌아 다니다가 우미관 뒷골목에서 주먹생활은 좀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본심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불행했던 과거의 경험을 거울 삼아 불우한 소년들을 구제하고 복지사회 건설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김두한이 연설을 하는 도중 청중속에서는 박수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그런데 여당이 아니고 야당이다 보니 경찰의 방해가 말도 못했다. 경찰의 선거방해는 선거 연설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맹렬했지만, 김두한의 매력있는 호소와 부하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김두한은 드디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만세! 만세!”“김두한의원 탄생 만세!”부하들은 서로 얼싸안고 엉엉 울면서 만세를 불렀다.

김두한의 눈에서도 닭똥같은 눈물이 쉴사이 없이 흘러 내렸다. 김두한은 이 감격! 이 자랑스러운 순간을 어머니가 살아계시다면 보여드리고 싶었다.아니, 만주 벌판에서 종횡무진 말을 달리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시던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도 보이고 싶었다.(어머니! 나의 어머니.)김두한은 이렇게 마음 속으로 어머니를 불러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자 그 때라는 듯이 그의 쓰라린 과거가 주마등처럼 떠올라 그의 격정에 더욱 부채질을 했다.이윽고 김두한 의원이 국회에 나가 의원선서를 하는 날이 되어서 였다. 그와 동고동락하며 당선을 위해 노력했던 동지 1백여명이 떼를 지어 방청석을 메우게 되었다.

김두한 의원은 하얀 무명 바지 저고리를 입은 채 단상에 올랐다. 단상에 오르자 그의 발언이 시작되었다.“저는 깡패 국회의원 김두한이 올시다. 제가 국회의원 선서를 하기 전에 발언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그러자 방청석과 국회의원석에서 와그르르 웃음이 터져나왔다.“저는 국회의원에 입후보했을 때 제 동지들과 선거구민에게 약속했습니다.이역만리 만주땅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 김좌진 장군의 투지를 이어 받아 오직 한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겠노라고!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이 단상에서 할복자살을 하겠다고 말입니다!”산사태라도 나 무너지는 것같은 김두한의 우렁찬 소리가 국회의사당 안을 왱왱 메아리쳤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옳소! 옳소!”하는 소리가 국회의사당 방청석 안에서 외쳐졌다. 그것은 방청석에 참석했던 김두한 부하들이 흥분하여 외치는 소리였다. 그러자 경위들이 몰려와 끌려 나가기도 했다.하여튼 김두한의 첫 국회 발언은 그 다운 발언이라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의원선서를 마친 김두한은 의사당에 앉아 있는 국회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악수를 했다.“앞으로 4년 동안 사이좋게 지냅시다.그러나 민주주의를 하지 않을 때에는 이 주먹이 용서치 않을 것이오.”김두한은 웃으면서 솥뚜껑같은 주먹을 들어 보였다.“공갈죄로 고소하겠소.”어떤 의원은 이렇게 농담을 하며 껄껄 웃기도 했다. 이윽고 김두한 의원은 의사당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조병옥의원 앞으로 갔다.미리 당선축하 인사를 전화상으로 나눴으나 만나기는 그날이 처음이었다.“선생님, 당선을 축하합니다.”“오! 김두한 의원의 당선도 축하하네. 참으로 반갑네.”어느 틈엔지 조병옥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김두한과 조병옥은 서로 손을 꼬옥 잡은 채 놓을 줄을 몰랐다.

▨다시 감옥에 갇힌 김두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되어 금배지를 단 김두한은 왠지 자기같은 사람에게는 금배지가 어울리지 않는 것같아 어색하기만 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내게 이 금배지가 어울리는 것 같소?”그는 이렇게 농담을 하면서 어린애처럼 순박하게 웃는 것이었다.무소속으로 당선된 김두한 의원에게 여당인 자유당과 야당인 민주당에서 각각 입당교섭이 왔다.“김의원이 우리 당에 입당하면 하고자 하는 ‘자활개척단’ 일이 성사되도록 지원하겠소.”자유당에서 교섭하러 온 사람이 이런 달콤한 미끼로 유혹했다. 그러나 김두한은 한 마디로 거절했다.“불우한 뒷골목 인생들을 위해 ‘자활개척단’을 만드는 것이 급하기는 하나, 나는 여당과는 생리가 맞지 않아서 그만 두겠소.”김두한의 이 말에 교섭에 나선 자유당 사람의 눈이 실룩하고 움직였다. 그러나 그 자는 끈질기게 늘어붙었다. 김두한 하나쯤 두려워서가 아니라, 삼선개헌을 하여 이승만 대통령을 장기 집권시키기 위해서는 한 표가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두한의 의지는 바위처럼 단단하기만 했다.“나는 한 번 안한다면 안하는 사람이야! 너, 나한테 한대 터지고 싶어?”“그러면 정말 재미없습니다.”“그런 공갈따위에 내가 겁낼줄 아나.”입당을 설득하러 왔던 자유당 사람은 할 수 없이 그냥 돌아가버리고 말았다.이튿날이 되어서였다. 민주당 최고위원인 조병옥 박사가 찾아와 김두한 의원을 조용한 요릿집으로 데리고 왔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조병옥 박사가 입을 열었다.“자유당에서 자넬 끌어 들이려고 사람을 보냈다면서?”조병옥 박사가 은근한 목소리로 묻자,“녜. 그 새끼들이 누굴 어린애로 알고 막 공갈을 치지 않겠어요.”하고 김두한이 호탕하게 웃어대며 대답했다.“그래, 자넨 뭐라고 하여 돌려보냈나?”“나는 원래가 여당과는 생리가 맞지 않는다고 말해주고는 돌려보냈죠.”“공갈을 쳤다면서?”“녜, 자기들에게 협조 안하면 재미없다나요.”“어떻게 협조하라는 거야?”“글쎄요. 아마 삼선개헌에 거수기 노릇하라는 것이겠지요.”“하긴 그렇겠군. 자유당 사람들이 삼선개헌 때문에 한 표라도 더 긁어 모으려고 발버둥치고 있구만.”<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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