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이를 내가 왜 모르나. 이 김두한이는 더러운 술은 안먹는 성미야! 나는 나라를 위해서는 백번 목숨을 바쳐도, 민주주의를 짓밟는 정권의 충견은 될수 없어!”이렇게 소리친 김두한은 술상을 발길로 걷어 찼다.“이 새끼! 너 두고 보래이! 잡아 넣겠어.”김종원이 독이 올라 식식거리며 소리쳤다.“잡아 넣어라. 김두한이 언제 형무소 두려워하더냐. 나를 잡아 넣기 전에 네 뱃대기에 먼저 바람구멍이 날 것이다. 내 부하 한 명이 경찰 백명을 당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명심해 둬라!”김두한은 독이 올라 식식거리는 김종원을 남겨둔 채 술집을 나와 버렸다.김두한은 마음이 울적하고 울분이 솟구쳐서 혼자 다른 술집에 들어가 거나하게 한잔 하고 비틀비틀 광복동 거리를 거닐었다.광복동 번화가에는 요란한 밴드소리가 거리에까지 흘러나와 쾅쾅 울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산 김두한은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이 새끼들이! 지금이 어느 때라고 밴드까지 쾅쾅 울려대면서 술을 처먹고 있어?”김두한은 곧 그 밴드 소리가 울려나오는 술집으로 들어갔다.문을 지키고 있던 똘마니 깡패들이 김두한이를 막았다. 그러자 김두한이 눈을 부릅뜨고서“뭐야 너희들은?”똘마니 깡패들은 김두한의 기세에 눌려 길을 열어주었다.김두한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어두컴컴한 넓은 홀안에서 남녀가 서로 부둥켜 안고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었다.그걸 한동안 보고 있던 김두한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리고 눈에서 불꽃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런가 하면 낙동강 전선에서 인민군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그야말로 꽃도 같고 별도 같은 이른바 학도의용군들. 그러니까 아직 어린 학생인 몸으로 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지원하여 나선 1천2백여명의 학생들. 그들은 영천전투에서 인민군들이 쏘는 총탄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그 시체를 넘고 넘으며 인민군들과 싸우다 스러져간 꽃같은 별들이 문득 김두한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이 놈의 새끼들을 당장! 그냥!”그러나 그는 권총을 빼려던 손을 멈추고 댄스홀에서 나왔다.김두한은 곧 본부로 돌아와 부하 6명을 무장시켜 데리고 광복동 번화가쪽으로 나왔다. 이윽고 댄스홀에 들어선 김두한 일행은 출입문을 안에서 걸어잠갔다. 그리고 김두한은 댄스홀 안에다 연막탄을 터뜨린 것이다.“쾅!”댄스홀 안을 뒤흔드는 연막탄 소리와 함께 홀안은 금방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다.그러자 특공대원들은 재빨리 창문을 열어놨다.스테이지에 올라간 김두한은 닥치는대로 악기를 때려부쉈다. 그런가 하면 권총 세 발을 공중을 향해 쏘고는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 여자는 우측, 남자는 좌측이다.”하고 외쳤다. 한동안 장내가 소란했다.여자들은 순순히 말을 들었으나 남자들 중에는 무릎을 꿇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람이 많았다. 특공대원들은 그들을 총 개머리판으로 사정없이 후려치며 무릎을 꿇렸다. 장내가 웬만큼 정리가 되자 김두한이 나서며 소리쳤다.
“나 김두한은 말한다. 이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민족 반역자들아, 지금이 어느 때라고 이 지랄들이냐. 어린 중학생들까지 총을 메고 전장에 나가 전사를 당하고 있는 이 비상시국에 너희는 도대체 어느 나라 백성들이고 뭣이 그리도 즐거워 춤을 추며 끌어 안고 문질러대느냐. 나는 열흘전에 천여명의 학도의용군을 이끌고 영천전투에 참가했다가 오백여명의 어리고 젊은 목숨을 전장에 빼앗기고 이백여명 부상 학생들만 이끌고 돌아왔다. 지금 그들은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신음중에 있는데 너희들은 도대체 어디서 떨어져 나온 신선들이기에 이 모양이냐!”김두한은 배가 튀어나온 중년 남자 한 사람을 스테이지에 끌어내어 배를 걷어찼다. 그러자 그 똥배가 나온 중년 남자는 “용서하십시오.”하며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걸 본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벌벌 떨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김두한이 말했다.“너희들이 가진 귀금속과 돈 일체를 스테이지에 갖다 놓아라. 입원하고 있는 학도의용군들에게 계란이라도 사다 주어야겠다. 만일 감추고 안내놓는 자가 있을 시는 즉시 총살하겠다.”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떨리는 손으로 가진 것을 모두 털어놓고 있었다.“댄스홀 주인 어디갔어? 이리 썩 나오지 못해!”이윽고 주인이 벌벌 떨면서 앞으로 나왔다.“또, 문을 열거야, 안 열거야!”“한 번만 용서해 주시이소. 다시는 열지 않겠심더.”“그렇다면 좋아! 너는 여기 돈 내놓은 사람과 귀금속을 내놓은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적고, 귀금속은 팔아서 현금으로 만들어 대신동에 있는 학도의용군 부상자 수용소에 전해주도록 해! 그리고 여기 있는 남자 세명과 여제 세명을 대표로 뽑아 위문금을 전달토록 하고 내일 아침까지 내게 보고해라. 알겠느냐?”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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