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탄알이 시원치 않은 것 같은데………”“뭐 괜찮을 걸세. 나머지 탄환도 괜찮을 걸세. 안심하고 거사일까지 편히 쉬기나 하세.”김시현 옹의 대답을 듣고 유시태는 탄환을 권총에 재어 넣고는 권총을 몸안에 감춰두었다.노인들이 하는 일이라 탄환이면 모두가 그 효력을 발휘하려니 믿기만 했다.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총알이 신통치 않았는지 어쩐지 시험해 보지도 않고 그 이튿날만 기다렸으니 딱한 노릇이었다. 아니 이박사가 암살당할 운명이 아닌 것이었다.아무튼 시험해 볼 시간적 여유도 없이 그들은 자신만만하였을 테니 말이다.김시현과 유시태는 마음 속으로 일이 잘 되기만 빌며 6·25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박사 저격사건은 아슬아슬하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것은 어쩌면 하늘이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 한 사람을 보살펴 주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어쨌든 국가 원수를 암살하려 했으니 유시태와 김시현은 큰 죄를 범한 것이다. 극형을 면할 길이 없었다. 감옥살이를 하게 된 김시현, 유시태 두 노인은 1953년 12월 다 같이 사형을 언도 받았다.그 이듬해에 가서 1월 특사가 되어 무기징역으로 형량이 바뀌기는 했으나 어차피 감방에서 여생을 보내야 할 비극의 주인공들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유당에서는 반대당에 대한 탄압을 시도하기도 하였다.김시현씨는 6월 25일의 이박사 암살미수사건, 며칠 전에 일부러 소속정당인 민주국민당을 탈퇴하여 사건이 벌어진 후 당 동지들에게 영향이 미치지 않게끔 사전 방지를 했건만 자유당은 그대로 있지 않았다.주모자 김옹이 민국당에 당적을 두고 있었음을 빌미로 하여 야당에서 이박사 암살미수사건을 조작한 것이라고 억지를 써서 한 때는 민국당 간부 백남훈씨, 조병옥 박사까지도 이 사건에 관련시키기도 했다.이보다 며칠 전이었다. 부산에서 일어났던 국제구락부 산건과 아울러 이 사건이 일어났으므로 재야인사들 다수가 투옥되었다가 정치파동의 여파로 완전히 진압되어 5·20 정국이 안정된 후에야 불기소란 명의로 석방되었다.
그런데 암살범으로 복역중이던 김시현, 유시태 두 노인에게도 햇볕을 보게 될 기회가 왔다. 그것은 1960년이다. 두 노인은 복역중에 독재정권의 감언이 실로 재야 인사의 모함에 이용되기도 했고, 퍽 기구한 팔자의 주인공인성 싶기도 했지만, 4·19직후에 출옥할 수 있었다. 정치범 석방의 혜택을 입어 그들은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실로 10년에 가까운 옥중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박사 저격사건에서도 가장 아슬아슬한 모험으로 시작된 김시현, 유시태옹의 계획은 이렇게 끝났다.
▨내가 정치깡팬 줄 알아!
이 새끼야!앞에서 얘기한대로 부산의 정치파동이며 날치기 개헌통과 등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에게 아부하는 무리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야당 의원들을 탄압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이다.이 때 가장 서슬이 퍼렇게 설친 자는 계엄사령관 원용덕과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 이었다.어느날인가는 김종원이 노조 사무실을 찾아왔다.그는 전에 노조파업 관계로 빚어졌던 불화를 씻고 친구로 사귀자면서 김두한을 광복동 술집으로 끌고 갔다.“이거 무슨 술이오? 이유나 알고 먹읍시다. 단순히 화해술이라면 말술이라도 사양하지 않겠지만……….”김두한이 이렇게 말하며 김종원을 말끔히 째려봤다. 그러자, 김종원이“김형, 김형도 알다시피 우리 나라는 이승만 대통령께서 계속 집권하시지 않고는 전쟁에 이길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이 난국을 이끌어 나가지도 못할 것이오. 그래서 이박사의 재집권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김형께서도 이 일에 적극 참여해 주시기 바라오. 대통령 각하께서도 크게 김형의 행동을 기대하고 계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김두한은 술잔을 탕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그의 머리속에는 경무대의 잔디밭에서 있었던 이승만 대통령과의 만남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나더러 또 정치테러 하수인이 되라는 이야기군!”“하수인이라니? 당치도 않는 말이오. 역시 김형의 용감한 부하들이라야 국회의원들이 겁을 집어 먹고 꼼짝 못한단 말이야……….”“이봐, 김종원! 나는 그 따위 정치테러나 일삼고 있는 정치 깡패가 아니란 말야, 이새끼야. 너는 정말 이 김두한이를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는거야. 내가 전에 북한 공산당과 목숨을 내놓고 싸운 것은 모두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한거야. 순수한 애국적 동기에서 한 떳떳한 행위였단 말야!”
“그야 세상이 다 아는 일 아니오. 김두한 부대의 용맹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부탁하러 온게 아니오.”“그리고 나는 이승만이 같은 독재자를 돕는일은 절대 하지않겠 어. 이승만이는 민주주의를 하지 않고 절대 군주주의자처럼 군림하고 있거든. 한 마디로 독재자란 말야.” “천만에, 그럴리가 있겠소. 그 분은 누구보다도 민주주의를 잘 알고 실천하고 계시는 애국자요. 또한 우리 나라의 국부십니다. 말을 삼가시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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