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4호> 주먹천하
<제484호> 주먹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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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08-06 09:00
  • 승인 2003.08.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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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당선된지 3일 만에 구속 수감 신세조병옥 박사는 이렇게 말한 뒤 잠시 침묵을 지키고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자네, 우리 민주당에 입당할 의향은 없나?”조병옥박사의 이런 제의에 김두한은 눈만 끔벅거렸다. 그런가 했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조 의원님, 민주당에 입당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저는 좀 더 무소속으로 남아 있으면서 개방적이고 공정한 투쟁을 펴나갈 생각입니다.”김두한 의원의 이 말에 조병옥 박사는 “좋은 생각이야.. 언제라도 우리당에 입당할 의사가 있으면 나를 찾아오게.”“고맙습니다. 제가 비록 조 의원님과 당을 같이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반독재 투쟁을 위해서는 언제나 보조를 같이 하겠습니다.”“고맙네.”라고 말한 조병옥박사는 김두한의 솥뚜껑같은 손을 따뜻이 잡아주었다. 그 촉감만으로도 김두한은 큰 자극과 위안을 얻곤 했다.어쨌든 자유당에서는 삼선개헌 운동 물밑 작업을 꾸준히 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파동은 의외로 컸다.

연일 삼선개헌 반대 데모대가 종로거리를 누볐고, 국회의사당 앞을 메웠다.“독재정권 결사반대!”“삼선개헌은 독재정권을 위한 개수작이다. 당장 철회하라!”이렇게 외치면서 데모대는 개헌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그러나 자유당에서는 데모대의 요구는 우이독경, 마이동풍격으로 정치적인 쇼를 부리며 삼선개헌을 강행했다.이에 김두한이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 놈들! 이 김두한이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한 삼선개헌 통과는 어림도 없다. 누구든 개헌안 통과를 위해서 사회봉을 잡는 자는 내 이 주먹에 병신이 될 줄 알아라.”김두한은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리고는 데모대의 제일 앞에 서서 경찰과 충돌하며, 조병옥 박사의 신변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었다.이렇게 되자 자유당에 가장 골치아픈 존재가 김두한 의원이었다.(어떻게 한다? 같이 맞서서 주먹다짐을 할 수도 없고……….)이렇게 고민하고 있던 자유당에서는 과거에 김두한의 부하였고, 의형제였던 이정재를 보냈다.당시 이정재는 자유당의 부총재인 이기붕의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동대문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정치깡패였다.

아니 명색이 동대문 반공연맹특별단부 단장이었다. 이정재는 김두한을 보자 넙죽이 인사를 하며, “형님, 이젠 그만 고생하시고 호강좀 하시는 것이 어떻겠어요?”했다. 이정재의 오만한 말투는 과거 자기의 부하였을 때의 말투가 아니었다. 훨씬 그 윗줄에 올라 서있는 말투였다.“이놈아, 내가 언제 호강하기를 바라더냐?”김두한은 불쾌한 낯빛으로 이정재를 쏘아보며 말했다.“너무 그렇게 고집부리지 마십시오. 정히 말을 듣지 않으신다면……….”어느 틈엔지 차갑게 굳은 표정의 이정재의 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그걸 본 김두한의 얼굴에 신경질적으로 경련이 일어났다. 김두한의 말했다.“네가 언제부터 권부의 개가 되었니. 나가, 당장 나가라니까!”김두한은 발을 구르기까지 했다. 순간, 이정재의 눈이 똬리를 튼 독사 눈이 되어 파랗게 독기를 뿜었다.“정말 맛을 봐야 알겠소?”이정재의 권총이 김두한에게 한발 가까이 다가왔다.

“허무하구나! 허무하구나!”김두한은 방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그러자 이정재도 양심이 찔렸던지, 아니면 옛날에 모시고 있었던 일이 문득 생각났던지, 권총을 겨누며 김두한에게 다가서며 금방이라도 발사해버릴 것 같았는데 뜻밖에도 당황한 표정이 되더니 돌아가 버렸다.눈물이 흥건한 김두한의 눈에는 옛날 우미관 뒷골목시절과 반도의용청년단 시절, 그리고 좌익과 우익의 투쟁 시절의 일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정재야! 정재야!”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이정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목메어 불러도 권력과 금력에 눈이 어두워진 이정재는 김두한의 곁을 떠나가고 말았다.

그뒤 김두한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기습한 경찰에 체포되어 다시 빵깐에 갇히는 몸이 되었다. 고릴라처럼 우람한 체력인 김두한의 일그러진 얼굴, 부릅뜬 눈, 어찌 보면 그것은 포효하는 맹수의 모습이었다.“이놈들아, 이 개돼지만도 못한 놈들아.”김두한은 걸핏하면 이렇게 고래고래 악을 썼다. 그러면 담당 교도관이 와서, “왜 이러십니까? 좀 조용히 하세요.”하고 말린다.“뭣이라구? 너같은 놈하고는 상대 안한다. 어서 가서 소장 오라고 해.”김두한은 여전히 큰소리로 고래고래 악을 써댔다.

“좀 조용히 하시라니까요. 김의원님. 이러시면 저희들이 곤란하잖습니까.”교도관은 입장이 곤란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듣기 싫어! 여러 소리 말고 소장더러 오라고 해!”그러니까 김두한이 국회의원에 당선된지 불과 3일만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구속되어 서대문 교도소에 수감된 것이다. 아무리 교도소장을 오라고 해도 오지 않아, 김두한은 화가 났다. 마침내 김두한의원은 전신의 힘을 다하여 굵고 튼튼한 빵깐의 무쇠철책을 두 손으로 힘껏 벌려 놓았다. 쇠망치로 때려도 끄떡 안할 굵은 철책이 힘없이 구부러지고 있었다.

참으로 김두한의원의 힘은 무서운 괴력이었다.“앗! 저런, 저런……….”교도관은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황급히 달려가 소장을 모시고 왔다.그걸 본 소장이,“김의원님, 왜 이러십니까? 이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숨가쁘게 달려온 소장은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김두한을 달래었다. 한편 소장을 본 김두한은“여보 소장, 날 언제까지 여기 가둬두겠다는 거야? 난 죄가 없다구.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을 왜 가둬두느냔 말이야!”무지무지하게 화가 난 김두한은 당장에라도 교도소장을 잡아 먹을 듯이 덤볐다. 그러나 소장은 눈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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