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미국식 의회가 왠말이냐’
‘대한민국에서 미국식 의회가 왠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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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09-26 09:00
  • 승인 2003.09.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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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두터운 신임 받은 이기붕, 권력 전면에 부상그러다가 대한민국 독립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박사가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이기붕은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특별시장에 발탁되었다.이승만박사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그의 관운은 이렇게 하여 날개를 달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개는 차츰차츰 돋치기 시작했다.이기붕 의장은 잠시 눈을 감고 가슴을 진정시킨 다음, 단상으로 올라갔다. 이윽고 그는 목을 가다듬는가 했더니“………친애하는 자유당 의원동지 여러분!”이기붕 의장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우리는 위대한 영도자 이시요, 국부이신 이승만대통령 각하의 뜻을 받들어 하나로 뭉쳐야 하는 것이에요….”이기붕 의장의 연설 요지는, 모든 의원이 사심을 버리고 하나로 뭉쳐 당에 복종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등장한 원내총무 이재학이 당론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잘 아는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일당 당론으로 확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받대를 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이재학 원내총무의 발언에 반발하는 의원들이 많았다.“여기는 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미국의 국회식으로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혹은“그렇다면 국회의원이라 하는 사람들은 허수아비란 말입니까! 우리가 거수기냔 말입니다!”여기저기서 반발하는 발언들이 빗발쳤다. 그러자 당황한 장경근의원이 나서며 “아, 좀 조용하시라요. 그러니끼니 의원총회를 여는 것이 아니야요. 할 말이 있으믄 의원총회에서 다 하구, 일단 당론으로 정해지면 반대를 해선 안된다 이 말씀이야요. 알갔시요?”책사 장경근이 나서서 이재학의 지원사격을 해주었다.“그렇지만, 따질 것은 따져야지, 당론이다 뭐다 해놓고 위에서 지시하는대로 따르는 것이 어떻게 민주주의냔 말이오!”이젠 김두한의원이 삿대질까지 하며 큰소리로 외쳐댔다.

그러자 김두한의원의 발언에 발맞춰 어느 의원인가가“김의원 말이 맞아요. 당론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의원총회에서 의논하여 결정을 본 것들이 있습니까?”이쯤 되자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의장석에 앉아 있는 이기붕 의장은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했다. 의원들의 반발을 막기 위해 어제 저녁에 의원 각자에게 50만원짜리 수표까지 한장씩 돌렸는데 그건 아무 효과없이 여전히 분위기가 누그러지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아, 조용히들 하세요.”이기붕 의장은 동요하는 의원들을 향해 정숙을 요청했다. 그리고 발언했다.“정당의 당론도 없이 개인 플레이만 하면 법안 하나 통과시키는 데에도 몇 년씩 걸릴 거예요. 내가 미국에 유학할 때 들은 얘긴데, 의회정치가 가장 발달한 영국의회에서도 당론으로 결정된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는 단 한 시간이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도 이러한 선진국의 본을 받아서 개인 플레이를 지양하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당론에 따르자 하는 것이 저희들의 취지입니다….”비고 허약한 눌변이지만, 그런대로 이기붕 의장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거기다 장경근 의원이 끼여 들었다.“그러니끼니 의장님 말씀이 토론은 의원총회에서만 하고 본회의에 들어가서는 딴소리 하지 말자 이거이야요.”장경근 의원은 책사답게 작고 또렷한 눈망울을 깜박거려가며 이기붕 의장의 더듬거리는 말을 합리화시키는 것이었다.장경근 의원의 발언은 계속되었다.“본 의원이 미국에 갔을 때 이런 말을 들었시요. 무슨 말씀이냐 하믄, 반대한 자는 워싱턴으로 가는 기차도 타지 말라 하는 기야요. 아시갔시요? 일단 당론으로 결정된 의안에 반대하려거든 국회에 출석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야요. 선진국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시요. 아시갔습네까?”장경근의 논법은 정말 교묘했다.“잘들 한다. 당론을 내세워서 꼼짝 못하게 묶어 놓으려는 수작이로구만!”김두한은 자기의 성질을 못이겨 혼자 중얼거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폈다 했다. 장경근의 발언은 계속되었다.

“잘들 들으시라요. 앞으로 우리 자유당은 말씀이야요. 의회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야요. 원내 중심! 아시갔습네까? 그러니끼니 모든 법안도 의원 여러분에 의해 발의되고 토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야요. 제 말 알갔습네까?”장경근의 교묘한 논조는 여기서 급선회하여 결국 「3선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으로 비약했다.“오늘, 우리 자유당 의원총회는 가장 민주방식으로 운영하려는 것이야요. 이제 이 원내 총무께서 개헌안에 대해 설명이 있을 것이니끼니 의견이 있으신 의원님은 말씀을 하시라요.”자유당 의원총회는 책사 장경근 의원의 독무대였다. 그는 교묘한 말솜씨로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었다.“에, 그럼 지금부터 개헌안에 대해 본 의원이 그 요지를 설명하겠습니다….”이재학 원내총무가 단상에 올라가 미리 준비된 개헌안 요지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때에도 김두한 의원은 “지금의 법이 뭔가 어때서 또 개헌을 한다는 거야? 방구들 자주 뜯어 고치는 집 치고 잘 사는 집 못봤다. 내 원 참.”이렇게 투덜거렸다. 그러자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앉아 있던 의원들이 와아!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저런, 저런….”장경근 의원은 혀를 끌끌 차며 김두한 의원을 얄밉다는 듯이 흘겨보았다. 그런가 했더니 아예 직격탄을 발사했다.“김두한의원, 좀 조용히 하시라요. 김의원은 법의 운용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야요.”“뭐, 내가 법의 운용을 잘 모른다고?”“글쎄 좀 가만 계시라요.”장경근의원은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말을 빨리 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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