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출마하지 마십시오
김두한의원은 이승만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이기붕의장과 장경근의원과 함께 경무대로 가는 승용차 속에서 왠지 착잡한 심정이 되어 차창밖을 내다 봤다.6월의 태양은 알맞게 뜨거웠다. 그리고 푸르른 신록은 젊음을 자랑하는 듯 무성한 이파리가 싱싱해 보였다. 김두한의원이 이렇게 차창밖에 눈을 주고 있으려는데“김의원, 이건 각하께서 특별히 배려하신 거야요. 이건 꼭 알아두시라요. 초선의원이 대통령 각하를 뵙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와 같은 거야요.”옆에 동승한 이기붕의장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장경근의원이 속삭이듯이 말했다.장경근의원은 김두한의원에게 얻어 터진 입술이 아직 다 아물지도 않았는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장경근의원의 말은 계속되었다.“대통령 각하께서 무슨 말을 물어보시든 그저 잘 돼 간다고만 말씀하시라요. 그래야디 김의원의 출세길이 열리는 것이야요. 다음 선거의 공천두 보장받고 말이디요.”장경근의원은 이승만 대통령을 배알하는 것을 미끼로 김두한의원의 환심을 사서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김두한의원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김두한의원은 인간 이승만에 대한 불신과 그 언젠가 있었던 개운치 않은 추억 때문에 마음이 착잡할 뿐이었다.벌써 까마득하게 지나간 옛일이지만, 김두한의원이 반공청년단을 이끌고 빨갱이를 때려잡다가 살인죄로 미 워타카 문관에게 걸려들어 미군정청의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일본 오끼나와 형무소에 수감되어 사형날짜만을 기다리고 있었잖았는가. 그러다가 흑인죄수와 권투시합을 하여 이기면 사면해 준다고 하여 이기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살아서 돌아왔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김두한의원을 어떻게 대했던가. 대뜸 마나기가 무섭게“이젠 사람 좀 고만 죽여!” 하고 말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데 초석이 되어준 자랑스러운 용사요, 혁혁한 공을 세운 반공투사에게 포상해 주기는 커녕 살인범 취급을 하다니 너무도 기가 막혀 ‘그렇다면 아예 공산주의 운동을 할까요?’ 라는 말이 금방 입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했으나 꾹 참았었다.(그렇지만 내 오늘 이승만 대통령을 뵙게 되거든 분명히 따지리라. 그리고 호소하리라.)김두한의원이 차창밖에 눈을 준 채 이런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그들이 탄 승용차는 어느덧 경무대 뜰까지 미끄러져 들어와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에 이르렀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갑게 맞이해 주며“잘들 왔어. 어서 게들 앉으라구.”“예, 각하!”이기붕의장은 이렇게 대답한 뒤 마룻바닥에 업드려 이승만 대통령을 향해 큰절을 했다. 그 바람에 장경근의원이며 김두한의원도 큰절을 올렸다. 인사를 마치고 이기붕의장이 송구스럽다는 듯이 자리에 앉자, 장의원이며 김의원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이승만 대통령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기분이 매우 유쾌해 보였다.“오늘은 주먹을 잘 쓰는 백야장군의 자제분도 왔구먼.” 순간 일행은 하나같이 긴장했다.“아, 예, 요새 김두한의원의 활약이 눈부시지 않갔습네까.”장경근의원이 재빨리 대답했다.“그래서 장차관(장경근의원이 차관을 지낸 일이 있어서 이승만 대통령은 장의원을 부를 때 꼭 장차관이라 불렀다.)도 한 대 얻어 터졌구먼.”이쯤되자, 김두한은 난처하기만 했다.“저야 뭐… 일을 하다 보믄 서로 감정이 격해서 주먹이 오고가는 수도 있디 않겠습네까.”“그래서들 이빨이 부러지도록 치고받고 했구먼?”
“그야 뭐………”그 때 두꺼비처럼 눈만 껌벅거리고 있던 김두한의원이 불쑥 끼여들었다.“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오, 두한이 그래, 어서 말해 보라구.” 옆에 앉아 있던 이기붕의장과 장경근의원은 김두한이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할지 조마조마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저는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말보다 주먹이 앞섭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각하!”김두한의원은 눈알을 디룩디룩 굴리며 말했다.“그야 그럴테지. 자네는 주먹을 잘 쓰니까.”이승만 대통령은 싸늘하게 웃고 있었다. 김두한이 또 말했다.“그렇지만 저는 정의를 위해서만 이 주먹을 씁니다.”“정의를 위해서만?”“예, 정의에 어긋나는 자가 있으면 자유당이건 야당이건 가리지 않고 이 주먹이 박살을 냅니다.”“흠, 그거 좋은 말이야. 장차관은 그럼 정의에 위배되는 말을 하다가 얻어맞았구만?”이승만 대통령의 말끝에 김두한의원이 말했다.“각하! 다음 선거에는 대통령에 출마하지 마십시오.”“그게 무슨 말이야?”이승만 대통령의 얼굴에는 금세 경련이 일어났다.방안 분위기가 어름장처럼 썰렁해졌다.그러나 김두한의원은 그런 것에는 조금도 서슴없이 계속 말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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