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출마하지 마십시오”
‘대통령에 출마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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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10-30 09:00
  • 승인 2003.10.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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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자활개척단’을 …”“각하께서 다음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신다고 속시원히 발표하신다면 이런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내가 언제 다음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고 했나?”“그럼 각하께서는 모르시고 계셨습니까?”“무얼?”“지금 자유당에서는 각하를 종신 대통령으로 뫼시려는 개헌준비를 하고 있습니다.”그 때였다.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이기붕의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김의원?”하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내버려 둬.”이승만 대통령의 표정은 금방 온화한 표정으로 바뀌어 말했다. 이기붕의장이며 장경근의원은 이승만 대통령의 속셈을 알 수 없다는 듯이 어리벙벙한 표정들이었다.“어서 말해 보라구, 두한이.”“정말 각하께서는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것입니까?”“그렇다고 했잖아.”“정말이십니까? 그렇다면 제가 오해하구 았었군요.”

“오해야, 오해구 말구.”이승만 대통령은 다정한 미소까지 지어 보이고 있었다.“각하! 그러시다면 이제부턴 박사님을 성심껏 모시겠습니다.”김두한의원은 이렇게 단순했다. 단수 높은 노인의 술수에 넘어가고 만 것이었다.“그래, 요지음도 그 뒷골목 사람들은 많이 만나나?”“사실 그것 때문에 각하를 한번 뵈려던 참이었습니다.”“어서 말해 보아.”“예, 저는 이미 뒷골목에서 손을 뗀지 오랩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수의 제 옛 부하들은 그 어두운 사회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어요. 그 아이들도 근본은 모두 착한 애들입니다….”“그래서 말씀인데요, 각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자활개척단」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자활개척단이라?”“예, 저는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전에 그 아이들에게 약속을 했어요. 제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꼭 자활개척단을 만들어 너희들에게 자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오, 그 참 좋은 생각이군. 뒷골목을 떠돌아다니는 부랑아들에게 자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야말로 정부차원에서라도 해야 할 일이지.”

“그렇습니다. 각하!”김두한의원의 눈빛이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분위기가 예상을 뒤엎고 급선회하자, 간이 콩알만해졌던 이기붕의장과 장경근의워은 후우하고 막혔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래, 거기에 대하여 어떤 복안이라도 가지고 있나?”크게 관심을 보였다.“있습니다, 있고 말고요. 제가 원래 뒷골목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그 곳 아이들 생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그럴 테지.”“예, 저는 오래 전부터 제 동생 아이들과 여러 가지 구상을 해봤어요.”“어서 말해 보라구.”“각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우리 나라 서해 바닷가에는 조금만 노력하면 막아서 농토로 쓸수 있는 간석지가 참 많습니다. 예, 이걸 막아 사업장을 만드는 것입니다.”“그리구 또 있습니다.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여자 아이들과 거지 아이들에게는 직업학교를 세워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의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지요.”김두한의원은 자기도 모르게 흥분하여 웅변을 토하고 있었다.

“나는 두한이가 단순한 뒷골목의 어깨인 줄 알았더니, 매우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었구먼!”이승만 대통령은 대견스럽다는 듯이 김두한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잘해 보아. 내가 뒤를 밀어줄 터이니 잘 좀 해보라구.”어쨌든 그날 김두한의원의 대통령 면회는 큰 성과를 얻은 셈이었다. 이기붕의장은 이기붕의장대로, 장경근의원은 장경근의원대로, 김두한의원은 또 김두한의원대로 면담 결과에 대해서 만족해하고 있었다.경무대를 물러나온 김두한의원은 뿌듯한 가슴을 안고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는 사무실로 곧장 돌아왔다. 사무실에는 참모들이 모두 모여 김두한의원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두한의원은 사무실에 들어서자 마자,“야, 됐다!”하고 소리치며 어린아이처럼 흥분하여 소리쳤다.“형님, 무엇이 됐단 말씀입니까?”신덕균이 궁금해서 물었다.“글쎄 됐단 말이야. 당장 자활개척단 간판을 붙여?”그제서야 참모들은 김두한의원이 흥분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대통령 각하게서 허락하셨습니까?”부두목 김영태가 침착한 소리로 물었다.“그래. 적극 지원해 주겠다고 단단히 약속했단 말이다.”김두한의원의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지자 부하들은 모두 만세를 부르며 환성을 질렀다.“와아…….”“만세! 만세!”김두한의원은 곧 서둘러 간판을 달고, 부하 참모들을 시켜 전국 깡패조직과 거지 왕초들에게 자활개척단의 취지를 알리도록 했다.“나는 영태와 같이 서산에 내려가 쓸만한 간석지가 있나 둘러보고 올테니, 그동안 덕균이 너는 아이들을 데리고 적당한 직업학교 자리를 물색해 보아라.”김두한의원은 일급 참모인 신덕균에게 이렇게 지시한 후, 김영태만 데리고 서산으로 내려갔다.그러나 김두한의원의 거창한 꿈은 벽두부터 장벽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김두한의원의 재부상을 경계하는 이정재가 그의 조직을 풀어 자활개척단 활동을 방해했기 때문이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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