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3호>“이 새끼 내려와!”
<제513호>“이 새끼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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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4-03-05 09:00
  • 승인 2004.03.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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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붕 의장은 흐뭇하기만 했다. 저렇게 덩치가 크고 완력 있는 사내가 자기 앞에서 꼼짝을 못하는 것이 기분 좋았다.“나는 이동지를 믿어요.”이기붕 의장은 다정하고도 은근한 소리로 말했다.“아, 각하! 무슨 일이든지 시켜주십시오.”이정재가 또 한 번 덩치답지 못하게 허리를 굽신거렸다.“내일 12시, 시천교 강당에서 모임이 있는 모양이에요. 그걸 좀 맡아주어요. 회합을 못 갖도록 해산시키기만 하면 돼요.”“각하! 그런 것쯤이라면 안심하십시오. 맹세코 저지하겠습니다.”이정재는 이미 장경근 의원으로부터 듣고 왔으므로 더 긴 말이 필요없었다.“이 동지! 이번엔 실수하면 안됩네다. 알갔시요? 특히 저 쪽의 행동대장은 김두한이야요.”장경근이 다짐하듯 말했다.“글쎄, 안심하시라니까요.”서대문 경무대를 물러나온 이정재는 그 길로 돌아가 비상을 걸었다. 내일의 작전을 위해서 간부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이튿날 12시가 되어서였다. 시천교 강당에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이들은 모두 이기붕 의장의 체제에 바기를 든 자유당 사람들이었다.그날 그들은 자유당 창당 동지회, 창립 간담회를 개최하려고 모인 인사들이었다.“시간이 다 되었는데, 김두한 의원이 왜 안나타나지?”그들은 그날 경비책임을 맡은 김두한 의원이 안 보이자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이제 곧 오겠지요. 어서 회의를 시작합시다. 시간을 끌 필요가 없어요.”그들은 뭔가 불안에 쫓겨 회의를 서둘렀다.“예, 그럼 이제부터 역사적인 ‘자유당 창당 동지회’ 창립 간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사회를 맡은 전국회의원 김철수가 목청을 가다듬어 연설을 시작했다.그런데 이 때 느닷없이 덩치 큰 청년들이 회의장 문을 박차고 침입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여기가 ‘자유당 창당 동지회’하는 자린가?”청년들은 인상을 험상궂게 짓고서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을 쏘아 보았다.“당신들은 누, 누구요?”사회를 보던 김철수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나를 몰라? 자유당 종로구 감찰부장 이정재야! 나두 자유당 창당 동지이니 여기 끼일 자격이 있겠지?”이정재는 일부러 큰 소리로 위협을 주며 좌중을 휘둘러 보았다. 그런가 하면 이어서 “얘들두 자유당 창당 때 일한 아이들이야. 여기 한몫 끼일 자격이 있어. 모두 자리에 앉아라!”이정재는 일방적으로 지껄여대며 뚜벅 뚜벅 사회석으로 다가갔다. 이 광경을 본 회의장에 모였던 인사들은 단번에 풀이 죽어버렸다.“어서 회의를 계속하시지 그래.”사회자 가까이로 다가간 이정재가 싸늘하게 조소지으며 말했다.사회를 맡아 보던 김철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가지고 어쩔바를 몰라 했다.“왜 회의를 진행하지 않는 거야? 여기 뭐 못올 사람이라도 왔나?”이정재는 점점 기고만장해서 삿대질까지 해대었다.“안 하면 내가 대신 할테니 내려오시지!”이쯤되면 사회자도 한 마디 안할 수 없다.“발, 발, 발기인이 아닌 사람은 나가 주세요!”사회자 김철수는 공포에 질려 말을 더듬었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는 세상. 더구나 상대는 악명을 떨치는 깡패 두목 이정재가 아닌가.“뭐? 발기인이 아닌 사람은 나가달라고? 발기인이 아니라고 괄세하네. 우리도 다 자유당 창당 동지이니 끼일 자격이 있잖아?”이정재는 사회석 옆 의자에 턱 걸치고 앉았다. 해볼테면 해보라는 배짱이었다.“동지 여러분! 이런 상황속에서 어떻게 회의를 진행하지요?”사회자 김철수는 회의를 연기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표정이었다.“내가 대신 사회를 하지!”좌석의 중간쯤에서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서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회의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2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는 우문이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넌 뭐야!”하고 이정재가 눈을 부라리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는 우문이오. 내가 사회를 맡겠소.”우문은 정색을 한 채 이정재를 똑바로 보며 용기있게 말했다. 이정재가 또 소리쳤다.“너도 창당 동지냐?”이정재가 비꼬는 투로 우문 전의원을 조롱했다.“말조심하시오!”우문 전의원은 굴하지 않고 크게 꾸짖듯 소리쳤다.“야, 너 임마! 창당 땐 코빼기도 안보였던 놈이 무슨 창당멤버라고 나서는 거야?이정재의 이 안하무인격인 방자한 말에 우문 전의원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윽고 우문 전의원은 이정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뭐라고? 난 2대 민의원을 지낸 우문이야. 말조심해!”“뭐야! 이새끼!”이정재의 사나운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정재는“이새끼 내려와!”하고 소리쳤다. 그런가 하면 이어서“너, 여기서 곱게 걸어 나가고 싶거든 알아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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