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룡이 이 새끼 나를 배신해?”
“삼룡이 이 새끼 나를 배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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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4-03-25 09:00
  • 승인 2004.03.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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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는 차갑게 웃으면서 삼룡이를 격려하였다. 그런데, 이정재와 헤어진 김삼룡은 부쩍 의심이 갔다. 아무래도 제3세력 운운하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았다.(이것은 분명히 김두한을 죽이기 위해 꾸민 음모가 아닐까?)김삼룡은 이렇게 스스로에게 자문하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당시 세간에는 제3세력이 침입했다느니, 야당 지도자들이 제3세력과 손을 잡았다느니, 하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삼룡이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유당의 일부 인사가 야당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키기 위해 꾸며낸 터무니 없는 시나리오라고 그 자신은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혹시 세간의 이런 소문을 이용하여 김두한을 제3세력으로 몰아넣고 죽이자는 게 아닐까?)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삼룡이는 와락 겁이 났다.(만약 내가 허무맹랑한 시나리오에 말려들어가 살인을 했을 경우, 나는 뭐가 되는가? 과연 살아나올 수 있을까? 설사 살아 남는다 해도 얼마나 치사스런 삶인가.)아무래도 자기만 암살범으로 몰려 처형당하고 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어쨌든 삼룡이는 그 길로 치안국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 사실을 털어놓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의논을 했다.

“그것은 데마고기(demagogy)야. 우리도 그런 정보가 있어서 조사해 봤지만, 터무니 없는 모략이었어. 너 그런 모략선전에 끼여들지 말고 조심하라구.”치안국 친구는 삼룡이에게 이렇게 충고해 주는 것이었다.(이거 일이 참 묘하게 돌아가는데….)삼룡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딜레마에 빠졌다.이정재와 약속한 일주일이 다 지나도록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던 삼룡이는 보복을 당하더라도 이 기회에 악의 소굴에서 손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했다.(그래! 이번 기회에 손을 끊자. 악의 소굴에서 손을 끊고 떳떳하게 밝은 길을 걷자.)삼룡이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굳게 결심하고 김두한을 찾아갔다. 이정재가 자기더러 죽이라는 그 김두한을 찾아가서 이정재와의 음모 사실을 죄다 털어놓았다. 이 말을 들은 김두한은 거인답게 껄껄 웃으며,“음, 그 자들은 능히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야. 김동지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여러 번 저격을 당한 나니까. 그러나 걱정없어. 총알은 언제나 나를 피해 가거든. 나는 그걸 믿어. 허허허. 김동지, 아무튼 잘 와주었소. 앞으로는 악의 소굴에서 손을 끊고 나와 같이 일해 봅시다”라고 말하며 삼룡이를 격려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삼룡이는“고맙습니다, 큰 형님!”하고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마워했다.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삼룡이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자, 이정재는 이를 갈았다.(삼룡이 이 새끼! 나를 배신해?)한편 여기는 종로 번화가의 XX빌딩안에 있는 김두한의 사무실.빌딩 한 곳에는 이정재가 몸을 숨긴 채 빌딩 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가 했더니 이윽고 이정재가 입을 열었다.“어드케 됐어? 아직 안나왔어?”“예, 형님. 아직 안나왔어요.”달려온 사나이가 허리를 굽히며 보고를 했다. 그것은 이정재의 아우인 이석재였다.“잘 지켜. 나도 여기 있을 테니까.”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빌딩의 문이 열리며 검은테 안경을 쓴 청년이 주위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나왔다. 아무리 변장을 했어도 안경쓴 청년이 삼룡이라는 것을 첫눈에 알 수 있었다. 삼룡이 거리로 나와 모퉁이를 돌아가려 할 때였다.

“탕! 타앙!”하고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동시에 “아악!”잰걸음으로 가던 삼룡이 비명을 지르며 픽 쓰러졌다. 그러나 그는 쓰러지면서도 자기를 쏜 범인을 향해 소리쳤다.“저놈, 저놈이다!”다리와 팔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진 삼룡이는 본능적으로 대여섯 바퀴 굴러 골목에 숨었다.그 때였다.다행히 이 삼일 전부터 골목 밖에서 수상한 자가 서성거리는 것을 발견한 김두한이 뭔가 낌새를 채고 경찰의 지원을 요청해 놓았었다. 그래서 종로경찰서 수사계 형사 1명이 김두한 의원 사무실 건물 주위에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그러던 중 마침 삼룡이를 저격하는 현장을 목격한 형사는, 날쌔게 저격범을 추격하여 체포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건너편에 지프차를 대기시켜 놓고 저격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이정재는 지프차를 몰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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