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자활개척단 활동에 나섰으나…
다시 자활개척단 활동에 나섰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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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4-04-08 09:00
  • 승인 2004.04.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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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 대한 구속영장입니다.”김윤도 검사는 차갑게 말했다.“웃기지 마시오! 무슨 증거가 있다고 날 잡아가려는 거요?”이정재는 여전히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은 채 코웃음을 쳤다.“증거? 정히 증거를 대란다면….”김윤도 검사는 이정재의 증거운운하는 말에 곧 호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이건 이선생 필체가 틀림없죠?”그제서야 이 때까지 도도하고 유들유들하기만 하던 이정재의 낯빛이 하얗게 질리는 것이었다.“내 필적임엔 틀림없지만, 그게 이번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이정재는 애써 당황하는 빛을 감추며 태연한 척 말했다.“이번 저격 사건의 피의자가 김삼룡이라는 것은 알고 계시죠?”“글쎄, 난 자세히는 모르지만, 경찰에서 그렇다고 하더군.”“이 명함 피해자인 김삼룡이 증거물로 제시한 것입니다. 그래도 잡아떼시겠습니까?”“어쨌든 난 그런 건 몰라. 내 명함에 그런 글을 써주는 건 내 부하들에 대한 신임도를 확인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나를 배반치 못하도록 주는 것이요. 그 명함에 누구에게 준 것이라고 써있소?”참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정재는 정말 지능적으로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김윤도 검사는 느껴야 했다. 지능적이라기 보다는 교활성이 능수능란하여 혀를 찼다.“좋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가택수색을 해야겠습니다.”“뭐라고? 내 집을 뒤지겠다고?”이정재의 표정이 험악해졌다.“이 선생!”김윤도 검사는 종이 한장을 또 꺼내 놓았다.“그건 또 뭔가?”“가택수색 영장이요.”“흥, 어림없어! 그따위 종이장 하날 가지고 내 집을 뒤져? 하하핫… 김 검사라고 했지? 아직 무서운게 어떤 건지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궁지에 몰린 이정재는 이렇게 공갈협박을 했다. 그러나 김검사는 이정재의 말은 백안시하고 막무가내로 “가택수색을 방해하면, 공무집행 방해로 현장에서 구속된다는 것을 모르시는 모양이군.”김검사의 이 차갑고 날카로운 한마디에 천하의 이정재도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다.“집안을 샅샅이 뒤져!”면도날 검사 김윤도는 함께 온 수사관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그러자 이정재의 엄포에 망설이던 수사관들도 안심하고 집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이윽고 이정재의 낯빛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고, 마침내는 푸들푸들 경련까지 일으켰다.“정말 이러면 재미없어! 이 이정재는 한번 하겠다고 결심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일을 내고 마는 성미야!”그러나 김검사는 이정재의 그런 따위의 말에 겁을 먹을 사람이 아니었다.이윽고 집안을 수색하던 수사관들은 문제의 서류를 찾아내었다. 이른바 제3세력의 계보를 적은 문서와 살해 리스트에 오른 야당인사의 명단이었다. 수사관들에게서 서류를 받아든 김검사는 차갑게 웃으며 문제의 서류를 이정재 앞에 내놓았다.“이래도 아니라고 잡아떼겠소?”“그게 뭐야?”이정재는 금방 무슨 일을 저지를 것처럼 화를 버럭 내었다.“진정하시오, 이선생! 이젠 피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김윤도 검사는 이렇게 잘라 말하고 임의동행을 요구했다.

“난 못가! 죄도 없는 내가 뭣하러 거긴 가!”이정재는 쉽게 응하지 않고 버러버럭 화만 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이 수갑을 채워서 끌고 갈 수밖에 없겠어.”김검사의 태도가 단호하자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이정재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따라나서는 것이었다.“그러나 두고 보시오! 김검사 당신은 곧 후회하게 될거요.”이정재는 김검사를 따라다니면서도 협박하는 말을 계속했다.다시 자활개척단 활동에 나섰으나…밤이 깊었는데도 세사람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어둠이 짙게 깔린 텅빈 사무실. 그 한쪽에 붙은 조그마한 방. 이름하여 단장실이었다. 형광등 불빛이 희미하게 조는 단장실에 김두한과 김영태 신덕균이 심각한 얼굴로 마주 앉아 있었다.세사람은 모두 말이 없었다. 밤은 점점 더 깊어가고 재떨이엔 담배꽁초만 수북히 쌓였다.

“후우….”김두한의원의 입에서 담배연기가 길게 빠져나왔다.김영태와 신덕균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일이 있어도 절망을 모르고 낙천적이었던 김두한의원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형님! 저희들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저희가 보필을 잘못해서….”김영태가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땅딸보 신덕균은 눈만 껌벅껌벅하며 김두한의 눈치를 살폈다.“아니다. 너희들에게야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다 내가 못나서 그렇지.”김두한의 목소리도 여느 때와는 달리 젖어 있었다.세사람, 이들 세사람은 어느 누구보다도 다정한 형제요 사선을 함께 넘은 동지가 아닌가.<다음호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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