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윤사랑 기자] 정치권에서 또 과거가 소환됐다. 12년 전 이명박 정부 광우병 파동 당시의 ‘명박산성’이 2020년인 지금 소환돼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재인산성’이라는 조어까지 만들어졌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규탄했던 독재라는 말도 또다시 거론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었던 촛불집회가 개최된 광화문광장이 지금은 문재인 정부를 겨누는 칼이 됐다. 그러면서 정치권도 갈리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2020년인 지금 12년 전의 명박산성이 소환되고 ‘독재’라는 규탄의 목소리가 정치권을 맴돌고 있을까.

- 명박산성 정치권에 또다시 소환, ‘명박산성’ 비판했던 여권 ‘부메랑’ 맞아
- 개천절 차벽, ‘코로나산성인가 재인산성인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지난 7일 행정안전부 국정감사에서는 국감 첫날부터 경찰이 지난 3일 개천절 집회를 막기 위해 광화문광장 일대에 차벽을 설치한 것을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격한 공방을 벌였다.
보수단체의 8·15 광복절 집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된 상황에서 일부 보수단체가 또 개천절 광화문집회를 예고하자 정부는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경찰은 일부 단체가 ‘드라이브 스루’ 집회를 추진하자 운전면허 정지, 차량 견인 등까지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예고하기도 했다.
개천절 광화문광장 일대 차벽 300여대 ‘재인산성
경찰은 개천절 광화문 집회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그 일대에 차벽을 세우고 180개 부대 1만여명의 인력을 동원했다. 서울 전체에 경찰버스 500대가 투입됐다.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주변은 경찰의 차벽이 에워쌌으며 차벽에만 300여대가 동원됐다. 인근 광화문·시청·경복궁역, 지하철 3개역은 8시간 가량 봉쇄됐다. 경찰의 불심검문도 삼엄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확산 방지라는 명분하에 정부가 과잉 대응으로 일반 시민들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했을 뿐만 아니라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경찰이 차벽을 세워 일반 시민의 통행까지 막은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2011년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인 2009년 6월 경찰이 추모 집회를 막는다는 이유로 서울광장 주변에 차벽을 세우고, 출입을 원천봉쇄한 것을 두고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당시 “개별 집회의 금지나 해산으로는 막을 수 없는 급박하고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이라고 판단했다.
광화문광장 일대의 차벽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08년 6월 광우병 파동 당시 ‘명박산성’의 기억도 떠오르게 했다. ‘명박산성’은 당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광우병 촛불 집회’가 격화되자 경찰이 세종대로 한복판에 설치한 컨테이너 바리케이드 구조물을 말한다. 당시 경찰은 두 층으로 컨테이너 박스를 쌓고 말뚝 등을 이용해 단단하게 고정했다. 컨테이너에는 모래 주머니를 가득 넣어 용접했고, 컨테이너를 기어서 오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표면에는 윤활유까지 칠했다.
당시 경찰은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시위대가 차벽을 무너뜨리거나 버스를 훼손하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준비한 것”이라며 “청와대 난입 등 폭력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하루 만에 컨테이너를 철거했다. 이후 ‘명박산성’은 집회의 자유 침범, 독단적 행정이라는 비판과 함께 불통의 상징이 됐다.
당시 야당이었던 현 여권은 이를 ‘명박산성’이라고 부르며 비판을 쏟아냈었다. 민주당 김현 대변인은 “명박산성이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다”면서 “쓰러져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고 강한 비판을 가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근혜장성’이라는 조어가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차벽은 지난 2015년 4월 세월호 1주기 집회를 앞두고 세워졌다. 같은 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도 차벽이 등장했다. 당시 시위대는 “명박산성에 이어 근혜장성이 등장했다”고 규탄했다.
당시 민주당 당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경찰 차벽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5년 11월 15일 트위터를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정부의 반헌법적인 경찰 차벽에 의해 가로막혔다”며 “대통령은 차벽으로 국민을 막을 것이 아니라 노동 개악, 청년실업, 농산물 가격 보전 등 국민의 절규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그해 12월 2차 총궐기 집회 뒤에는 민주당 최고위에서 “경찰 차벽이 사라지니 평화가 왔다. 집회, 시위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나라는 독재국가다”라며 “정부가 집회 시위에 알레르기처럼 반응하며 과잉대응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인산성’ 부메랑, 야당 “코로나19 계엄령 선포된 것”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이젠 야당으로부터 ‘재인산성’이라는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야당은 경찰이 80년대 독재의 상징인 무차별 ‘불심검문’까지 자행했다며 “독재의 예고편”이라는 비판과 함께 “코로나19 계엄령”이라는 주장까지 펼쳤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버스로 겹겹이 쌓은 ‘재인산성’이 국민들을 슬프게 했다”며 “사실상 코로나19 계엄령이 선포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권은 무엇이 그렇게 두렵나”라며 “세계 어느 선진국에서 방역을 이유로 이렇게 막대한 공권력을 행사해 시민의 헌법상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나”라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재인산성이 코로나를 막았다는 주장이 말도 안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명박산성을 능가하는 재인산성과 80년대 독재의 상징인 무차별 불심검문까지 자행했다”며 “코로나 방역을 넘어선 코로나 독재의 예고편”이라고 주장했다.
與 “명박산성 국민 원성사, 코로나산성 국민 안심”
반면 민주당은 개천절 광화문광장 일대의 차벽은 코로나19를 차단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하며 ‘명박산성’과 ‘재인산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방어하고 있다.
정청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개천절 차벽을 ‘재인산성’이 아닌 ‘코로나산성’으로 규정하며 목적과 여론, 자제 효과와 경찰 대응, 결과 등 다섯 가지 점에서 명박산성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명박산성-정권의 위기를 지키려 했다. 코로나산성-국민의 생명을 지키려 했다”며 “명박산성-국민의 원성을 샀다. 코로나산성-국민이 안심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명박산성-컨테이너 박스로 길을 아예 막았다. 코로나산성-경찰차로 교통 흐름을 보장했다”며 “명박산성, 수많은 국민이 잡혀가 재판을 받았다. 코로나산성-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 귀가했다”고 강조했다. 또 결과에 대해서는 “명박산성-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다. 코로나산성, K-방역의 한 장면이 됐다”고 주장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8일 국감 대책회의에서 일부 보수단체의 ‘한글날 집회’ 강행 움직임에 대해 “국가 방역체계를 무너뜨리고 국민에 위협을 가하는 집회를 기어이 열고 말겠다는 극우단체의 행태를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고 비판한 뒤 “광화문 차벽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방역의 최후안전선”이라고 강조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이날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개천절 차벽 논란에 대해 “경찰은 불법 집회를 용인할 수 없다. 차벽 자체가 위헌은 아니다”며 “(한글날에는) 감염병 확산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연휴 내내 국내 신규 확진자 수가 두 자릿수로 유지되고 감소 추세를 보였다”며 “특별방역기간으로 보낸 특별한 추석이었지만 국민들께서 협조를 잘해 주셨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개천절 집회 대응에 대해 “특히 우려가 컸던 개천절 불법집회와 관련, 코로나 재확산을 유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 빈틈없이 차단했다”면서 “시민들도 적지 않은 교통 불편을 감수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명박산성’과 ‘재인산성’ 논란과 함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인맥산성’도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친이계와 친인척에 둘러싸여 여러 가지 잡음이 표출되면서 비판을 받았었다. 문 대통령도 현재 부산지역 친노·친문 그룹을 비롯한 ‘캠코더(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코드·민주당)’인사와 ‘86운동권’그룹들의 ‘인(人)의 장막’에 갇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윤사랑 기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