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의 두 사내 눈물
법정에서의 두 사내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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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4-07-21 09:00
  • 승인 2004.07.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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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철 나타나면 김두한 부하들이 그냥 안둘걸”곽일의 이 말에 김두한은 치켜떴던 눈을 내리깔았다. 역시 술이 좋긴 좋았다. 술이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 아닌가. 이윽고 김두한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관철이 걔가 나한테 와서 무릎을 꿇겠다는 거야?”“글쎄 형님. 흥분을 가라앉히고 김관철이 말을 한 번 들어봅시더. 제재를 가하든가 패죽이든가 허는 건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지 않습니꺼?”곽일의 중재로 김두한은 다소 누그러져 술잔을 들었다.한편 장마담의 요정에 있는 김관철은 곽일의 부하 김경태가 와서 곽일이 술이나 한잔 같이 하자고 부른다는 말에 아무 의심없이 따라서며 물었다.“곽형이 어째서 나와 술을 같이 하자고 하지?”“그건 내도 잘 모르겠심더. 아마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신 모양이지예.”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곽일이 기다린다는 ‘자연장’ 특실로 들어섰다.

들어서는 순간 김관철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자연장’ 특실에는 곽일 외에 꿈에도 만날까 겁나는 김두한이 떡 버티고 앉아있지 않은가“아니, 이게…”김관철은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들자 분노가 치솟아 번개같이 권총을 빼들었다.“모두들 꼼짝마라!”김관철은 울부짖듯이 소리쳤다. 김두한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주먹을 쥐었다. 일촉즉발의 위기가 방안에 감돌았다. 그 때 신덕균이 나서며 “총 거두지 못해!”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김관철은 더욱 기세좋게“꼼짝마라! 모두 쏴죽일거야!”김관철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경련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그 때였다.“김형! 니 우릴 오해해서는 안된다카이. 내는 모든 일을 순조롭게 해결할라꼬 그런다카이.”곽일이 김관철을 달래었다. 그러자 김관철이 완전히 이성을 잃은 목소리로 “네놈들이야말로 날 배신했다. 날 속였다!”이렇게 소리소리 질러대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김두한은 보스답게 떡 버티고 서서 호령하는 것이었다.

“너 정말 형편없는 놈이로구나! 난 그래도 네게 한가닥 양심은 살아있을 줄 알고 예까지 찾아왔는데 천하에 용서 못할 배신자였어.”그러나 김관철은 조금도 굽히지 않은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지금 나는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말도 할 수 없어요. 뭐라고 욕해도 좋아요. 모든 시시비비는 후일 공정한 자리에서 가리겠습니다.”“공정한 자리가 어딨냐?”“그건 말할 수 없소. 난 오늘 단장님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니까, 이만 돌아가겠소.”김관철은 이 말을 남기고 비호처럼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잡아올까예?”문밖에 있던 김경태가 곽일에게 물었다.“관두라.”김두한이 말렸다. 모든 사람이 어리둥절해하며 김두한을 쳐다봤다. 의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나, 오늘 밤차로 올라가겠다.”김두한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착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무슨 말씀이오? 이삼일 묵어가실 예정이라꼬 조금 아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껴?”김두한의 돌변한 태도에 곽일은 물론 신덕균도 놀라 눈만 이리저리 굴렸다.그뒤 김두한의 ‘살인미수 피의 사건’에 대한 제1심 공판이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열렸다.“정말 고소인 김관철이 법정에 나타날까?”“글쎄 나타나면 김두한의 부하들이 그냥 안둘 걸.”“경찰에서 보호조치를 잘 하겠지, 뭐.”“만약 나타났다 하면 불상사는 나고 말거야.”서울 시민들은 물론 전국민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이 재판을 지켜보았다.재판이 열리는 날 아침이었다. 김두한은 검은 싱글로 말쑥하게 정장을 하고 법원으로 나갔다.

남이 볼 땐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지만, 그의 속 마음은 여간 초조하고 조여오는 게 아니었다.(관철이 이 녀석이 나타나 줄까? 정말 제말대로 고소장이 허위라고 증언해 줄까?)그러나 김두한은 김관철을 믿고 있었다.누가 뭐라고 해도 사나이의 의리로써 믿고 있었던 것이다.재판이 시작되기 1시간 전부터 법정은 입추의 여지없이 만원이었다. 호기심으로 모여든 시민과 재판을 지켜보려는 김두한의 옛부하들로 법정은 터져나갈 것 같았다.재판이 시작되기 10분 전이었다. 피고석에는 김두한이 들어와 앉고, 이어 사복형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김관철이 들어섰다.“드디어 배신자가 나타나는군!”“야, 관철아 임마, 하루를 살다 죽더라도 사나이답게 떳떳이 살아라!”“김관철, 하늘엔 하느님이 있고, 이 땅 위엔 우리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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