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과 이승만 정부의 실정에 혐오감을 품고 있는 국민들이 자연히 민주당을 동정하고 적극 성원해 주었다.김두한은 밤을 하얗게 새워가며 고민하다가 다음날 민주당 대표 최고위원인 조병옥 박사를 찾아갔다.“어서 와요, 김의원. 요새 고민이 많지?’조병옥 박사는 김두한이 찾아온 까닭을 벌써 눈치 채고 이렇게 선수를 쳤다. 김두한이 대뜸“박사님, 제가 비록 민주당 당적만 안가졌다 뿐이지 철저한 야당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일 아닙니까?”볼멘 소리로 들이대듯 말했다.“아, 알다마다. 누가 그걸 모르겠나.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을.”“그런데, 왜 제 구역에 공천자를 그것도 거물 정치인으로 내는 겁니까? 제가 전에도 박사님께 부탁을 드리지 않았습니까?”“알아, 김의원. 내 자네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잖나. 그러나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민주당 사정이 아주 묘하게 되어 있단 말이야.”“그렇다고 제 구역에 공천자를 내면 어떡합니까?”“김의원, 나는 우리당 공천 후보자보다 자네가 당선되기를 더 바라고 있어. 이건 내 개인의 진심이야.”이렇게 말하는 조병옥 박사의 표정은 어둡고 슬픈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런 표정을 읽은 김두한은 더 따지지 않았다. 단단히 벼르고 찾아왔지만, 조병옥 박사의 어둡고 슬픈 표정을 대하고 보니 마음이 약해진 것이다. 김두한은 사나이 조병옥 박사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그는 조병옥 박사가 비록 민주당을 대표하는 대표 최고위원이라고는 해도 그의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당내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어서였다.“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김두한은 넙죽 몸을 굽혀 인사를 한뒤 물러나왔다. 그런 김두한에게 조병옥 박사는 손을 내밀며“김의원, 잘 해봐. 내 정신적으로는 자네를 힘껏 지원할 테니.”돌아가는 김두한의 등뒤에 대고 이렇게 말하는 조병옥 박사의 눈에 어느덧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걸 본 김두한은 그저 가슴이 뭉클할 뿐이었다.“네, 알겠습니다. 힘껏 싸워 보지요.”김두한의 의욕은 다시 불타기 시작했다.
세월은 흘러 1960년이 되었다. 새해 벽두부터 서울역 참사 사건이 터져 사망자 31명, 중상자 20명 경상자 20명으로 모두 71명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고는 1960년 1월26일 10시 55분 구정을 이틀 앞둔 호남선 목포행 야간 완행 열차를 타기 위한 약 2천8백여 승객들이 개찰구 앞에 서로 앞서기 위하여 혼잡을 이루다가 벌어진 압사사고였다. 이 사고는 어쩌면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종막을 알리는 신호였는지도 몰랐다.아무튼 그 때는 제 4대 정·부통령 선거가 임박하고 있을 때였다. 집권당인 자유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에서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를 내세우고 치열한 선거전에 들어가고 있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나이는 86세였다. 그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불사신인가 싶었다. 노익장이란 말은 그에게 가장 적합한 표현이었다.
나이 팔순에도 불구하고 꺼질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는 권력욕의 불사신인 이승만을 꺾기 위해서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조병옥 박사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이번 선거 한 번 볼만하겠는데!”“그러게 말이야. 그 호랑이상인 조병옥 박사가 어떤 포문을 열지….”국민들은 너나 없이 흥미를 가지고 이번 싸움을 지켜보았다. 용호상박의 싸움을 지켜본다는 것은 여간 스릴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김의원, 이번에도 좀 수고해줘야겠어. 잘 부탁하네.”야당 대통령 입후보 출마를 축하하기 위해 찾아간 김두한 의원에게 조병옥 박사는 진심으로 부탁했다.“제가 뭐 힘이 있나요.”김두한 의원은 그동안의 정치활동으로 관록이 붙어서 이젠 겸손할 줄도 알았다.“아니야, 자네가 나를 지지해 준다면 백만대군을 얻은 기분으로 나는 뛸 수 있겠어. 번번이 부탁만 해서 미안하네만, 거듭 잘 좀 부탁하네.”“예, 박사님이 출마하시는데 그럼 제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힘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구 말구요.”“고마워, 정말 고마우이.”<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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