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의 데모와 자유당의 몰락
한편, 서울의 고려대학교에서는 고려대학교대로 데모가 일어났다.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나선 마산의 3·15데모에 이어 4월 11일의 김주열군의 참사시체로 인한 제2차의 데모가 있었고, 잠시 소강상태를 이루고 있던 4월 18일 고려대생들이 질서정연하게 데모를 진행했다. 이들은 학교를 출발하기에 앞서 신입생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만들어 두었던 고대마크가 든 수건을 나누어 가지고 머리에 동여맸다. 이 날은 신입생 환영회가 있는 날이었다. 교정에서는 성북서장이하 수십명의 사복 경관이 우글거렸다. 이 날의 데모를 낌새 챘던 것이다. 학교당국은 학원의 자유를 위하여 즉각 이들의 철수를 요구했으며, 이것은 그와 동시에 학생의 시위를 막으려는 구실이기도 했다. 12시50분 오전 수업을 마친 전교생 약 4천명은 인촌 김성수선생 동상 앞으로 모여 들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수건을 머리에 동여매고 ‘자유, 정의, 진리’의 교훈 아래 반민주주의를 성토하고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채택하였다.친애하는 고려대학교 학생 여러분! 한 마디로 대학은 반항과 자유의 상징입니다.
이제 질식할 듯한 기성 독재의 최후적 발악은 바야흐로 전체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기에 역사의 생생한 증언자적 사명을 띤 우리들 청년학도는 이 이상 역류하는 피의 분노를 억제할 수 없다. 만약 이와 같은 극단의 악덕과 패륜을 포용하고 있는 이 탁류의 역사를 정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후세에 영원한 저주를 면치 못하리라. 말할 나위도 없이 학생이 상아탑에 안주치 못하고 대사회투쟁에 함여해야만 하는 오늘의 20대는 확실히 불행한 세대이다. 그러나 동족의 피를 뽑고 있는 이 악랄한 현실을 방관해서야 되겠는가! 존경하는 고려대 학생 동지 제군! 우리 고려대는 과거 일제하에서는 항일투쟁의 총본산이었으며 해방 후에는 인간의 자유와 존경을 사수하기 위하여 멸공전선의 전위대열에 섰으나 오늘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한 반항의 봉화를 높이 들어야 하겠다.
고려대 학생 동지제군! 우리는 청년학도만이 진정한 민주역사 창조의 역군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여 총궐기하자.구호1. 기성세대는 각성하라.1. 마산사건의 책임자를 즉시 처단하라.1. 우리는 행동성 없는 지식인을 배격한다.1. 경찰의 학원출입을 엄금하라.1. 오늘의 평화적 시위를 방해하지 말라.이렇게 성토를 마친 이들은 노도와 같이 교문을 뛰쳐 나왔다. 제1차로 교문에서 수십명의 형사대와 부딪쳤으나 이들의 저지를 물리쳤다. 경찰의 끈질긴 방해망을 뚫고 시가로 진출, 국회의사당 앞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이 때 유진오 총장의 권유는 한층 더 학생들을 격려하는 연설이 되어 버렸다. 학생들은 존경하는 총장의 연설에 박수를 보내며 환호성을 올렸다. 그리고 학생들은 계속해서 자기들의 요구조건을 관철시키기까지 물러서지 않을 것을 결의했다. 이어 선배동문의 국회의원인 야당의 이철승의원이 오후 6시 30분경 학생들 앞에 나섰다.
그의 연설은 격렬했다.“제군들이여! 싸움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제부터 시작할 싸움을 위하여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라는 말에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 이 때 경찰은 수대의 수방차를 대기시켜 금방이라도 호스를 들이댈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국회의사당 앞을 출발한 데모대는 시청 앞을 거쳐 질서정연하게 행진해 갔다. 데모대의 앞은 이 날따라 유별나게 경찰의 백차가 앞장을 서고 좌우를 에스코트했고, 신문사의 보도차도 앞을 달렸다. 벌써 날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데모대는 애국가와 교가를 부르며 어두워져가는 을지로를 누벼가던 중 경찰백차는 무슨 약속이라도 한듯이 을지로4가에서 갑자기 종로4가쪽으로 데모대를 인도하였다.
데모대의 선두가 천일극장 근처에까지 이르자 생각지도 않게 50~60여명을 헤아리는 괴한들이 어둠 속에서 뛰쳐나와 각기 손에 든 쇠갈고리, 쇠사슬, 쇠망치 등으로 무조건 평화적인 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들을 습격하였다. 그 괴한들은 자유당과 이정재가 이끌고 있는 이른바 정치깡패들이었다.일이 이쯤 되자, 학생들의 분노는 폭발하고야 말았다. 맨손으로 흉기를 들고 덤비는 깽패와 격투를 벌였다. 정의는 불의앞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는 것이었다.“경찰의 앞잡이 깡패야 덤벼라!”“깡패야 나와라! 나와서 우리를 죽여 봐야.”<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