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가 하면 또 어떤 부하는“그렇다면 그대로 둘 수 없지요. 모조리 때려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목숨을 내 놓고 공산당과 싸워 쟁취한 조국이 아닙니까? 그런데 또 다시 공산당 오열이 숨어들어요?”이렇게 외치며 비분강개해했다. 그들이 흥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공산당이라면 치를 떠는 반공투사들이요, 공산당과의 투쟁에 있어서 역전의 용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자, 그만 흥분들 하고 내 말을 들어보라구.”김두한은 흥분하는 부하들을 제지한 다음 말을 이었다.“일단 우리는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도 공산당 오열과 싸워야 하는 비밀결사를 조직해야겠다!”김두한의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지자 장내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김두한의 말은 계속되었다.
“우리는 이미 예전에 조국에다 목숨을 바친 동지들이다. 지금 집권당인 민주당은 두 동강으로 분열되어 서로 싸움질만 하고, 경찰은 밥줄이 떨어질까봐 눈치 보기에만 급급하니 누가 침입해 들어오는 오열을 막겠는가 말이야.”김두한은 그의 독특한 억양으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옳소이다! 지금 경찰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공산당 오열은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절대로 막아야 합니다.”부하들은 일제히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소리 질렀다.김두한은 그 믿음직하고 열성스런 부하들을 내려다 보며 가슴 가득 차오르는 자신감을 느꼈다.
■ 5·16군사 혁명 맞아국무총리실을 찾은 김두한은, 장면 국무총리를 대하자 대뜸“장 박사님, 공산당 오열이 스며들고 있습니다.”하고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뭐요? 공산당 오열이 스며들고 있다구요?”순간, 장면 박사는 낯빛이 변했으나 크게 놀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그렇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기가 위태로워집니다.”“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십니까?”“근거가 있지요. 나는 전에 나와 같이 목숨을 내놓고 반공투쟁하던 동지들을 모아 비밀결사를 조직했습니다. 공산당 오열이 스며든 기색이 있어서 이를 내사하려구요.”“비밀결사를 조직했다구요? 불법적으로?”국무총리 장면은 공산당 오열이 스며든 것보다도 김두한이 비밀결사를 조직한 것에 더 놀라움을 표시했다.
“우리는 공산당이라면 자다가도 놀라 깨는 사람들이에요. 그럼 공산당 오열이 스며든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그냥 잠자코 있으란 말인가요?”김두한은 금방 비분강개하며 볼멘소리로 외쳤다.“아, 그런 것은 아니고… 공산당 오열이 스며들었다면 마땅히 경찰에서 조사를 해야 할 일이지. 사설 단체가 조사한다면….”국무총리 장면은 정면으로 나무라지는 않았지만 사설단체는 허락할 수 없다는 말투였다.“나는 어디까지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했는데, 총리께서는 너무 하십니다.”“저희 내각은 국법을 준수하고 국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일을 합니다. 여하한 일에도 비법이나 불법은 용인될 수 없지요.”국무총리 장면 박사의 말씨는 종용조용했지만 단호했다. 김두한의 가슴 속에서는 불쾌감과 낭패감이 동시에 솟아올랐다.“좋습니다. 전 이만 물러갑니다.”하고 김두한이 총리실을 나서려 하자, 장면 박사는 황급히“잠깐만!”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며 김두한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그리고 이어서“김두한씨, 너무 언짢게 생각지 마시오. 난 다만 국법에 어긋나는 일은 어떠한 일이라도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에요.”“알겠습니다.”“잠깐! 그동안 김두한씨 수고가 많았어요. 내 김두한씨의 충정은 잘 알아요. 그러나 비밀결사 같은 사설단체는 해체해 주시기 바랍니다.”“예,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만 충고하겠어요. 힘없는 경찰로는 공산당 오열을 막지 못합니다. 이것만은 명심해 두십시오.”김두한은 더이상 말해 봐야 통할리 없는 장총리임을 깨닫고 총리실을 물러나왔다.(조병옥 박사가 살아 계셨으면 이렇지는 않을 텐데…)김두한은 총리실을 나와서까지도 하늘을 우러러 보며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고 걱정했다.<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