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김두한 의원은 지금 십만 단원의 사활을 놓고 윤치영과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방계단체로서 존속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면 자연 조직의 이원화를 꾀해야 할 것이고, 또 「애국단」원들 몇몇 간부의 지역(국회의원 출마지역)도 보장해야 할 것이 아닌가?”윤치영의 이 말에 김두한 의원도 잠시 말문이 막혔다.(지역? 그렇지. 최소한 우리 간부진 몇몇의 지역은 보장받아야 할 게 아닌가….)김두한 의원은 눈을 껌벅거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주시려거든 한 삼십석만 주십시오.”이 말을 들은 윤치영의 날카로운 눈이 풀어지며 빙그레 웃는다.“김의원,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시오?”“당의장님, 이건 농담이 아닙니다. 제가 농담으로 이런 보따리를 들고 다니겠습니까?”“김의원, 난 김의원하고 말 안하겠소.”“아니,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왜라니? 난 지금 김의원하고 그런 농담을 할 시간이 없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지금 우리 공화당은 가장 참신한 근대정당으로 출발하려고 하는 중이야.”“저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협조를 하려는 게 아녜요.”“김의원은 우릴 전폭적으로 지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당 사람들은 김의원의 그 폭력 조직을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에요.”“뭐요? 폭력 조직?”김두한 의원의 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다.“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 우리 당 사람들이 그렇단 말이야. 그러니 지금 우리 당으로서는 자네의 그 「애국단」인가 뭔가 하는 단체를 방계단체로서도 가당치 않다는 것이야.”“좋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민주공화당에 붙을 필요가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하지요.”“그렇게 화를 낼 일이 아니야. 내 좀 더 두고 생각해 볼테니 기다려 보라구.”“알겠습니다. 전 이만 가보겠어요.”김두한 의원은 몹시 불쾌한 낯으로 윤치영 당의장서리의 방을 물러나왔다.(폭력 조직이라서 안된다?)김두한 의원의 가슴은 텅 빈 듯 공허하고 다리가 자꾸 휘청거렸다.(내가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약해졌을까?)김두한 의원은 후둘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청진동 초선이네 집에 들어서자 초선이 버선발로 김의원을 맞이하며 “아이구, 이거 영감님이 웬 일이세요? 그런데 오늘 무슨 기분나쁜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기운이 하나도 없어보여요.”초선은 호들갑을 떨며 김두한 의원을 껴안다시피 하며 말했다.
그리고 뒤따라 오는 춘화를 향해 “오늘은 아무도 손님을 받지 말아라. 그리고 목욕탕에 목욕물 좀 채워 넣고….”하고 초선이 지시한다. 그 말에 김 의원이 말했다.“아니 목욕물은 웬 목욕물이야?”“아니에요. 기분이 언짢거나 피로하실 때는 목욕을 하셔야 기분이 풀리셔요.”초선은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말씨로 말했다. 이윽고 안방에 들어선 김 의원은 초선이 내 온 커피를 한잔 마시고 있자 방문밖에서 춘화가 “목욕물 다 채워놨습니다.”했다. 그러자 초선은 별로 내키지 않아 하는 김 의원의 옷을 벗기는 등 끌다시피 하며 목욕탕으로 안내했다. 목욕물은 알맞게 덥고 오렌지 냄새가 향기롭게 솟아올라 김 의원의 기분을 한결 좋게 했다.“어 기분 좋다!”김 의원은 저절로 튀어나오는 이 말을 외치며 모처럼 기분 좋게 목욕을 마치고 나와 술상을 받았다.“이건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직접 담가 보내신 모과주인데 한잔 맛보셔요.”초선은 김 의원의 옆에 앉아 은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그리고 부탁하지도 않은 권주가까지 멋들어지게 불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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