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명기 편 | 제 25 회
■ 일본 명기 편 | 제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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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4-17 09:00
  • 승인 2006.04.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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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근은 섬뜩한 느낌이 들어 히로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갑자기 정사(情死) 이야기는 왜 꺼내는 겁니까.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건가요?”“뭘 그렇게 놀라세요 대근씨. 죽어도 미련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멋진 정사라면, 한번쯤 꿈꿔볼 수 있는 것 아닌가요?”“쯧쯧. 섹스는 서로 좋자고 하는 건데 죽긴 왜 죽어요. 거참 이상하시네. 그러고보니 여기 공원도 어두컴컴하니 뭔가 수상쩍구만.”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강쇠가 맞장구치고 나왔다.“나도 동감이요 히로미. 그러고보면 일본인들은 참 이상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 조금 전 다자이 오사무란 작가도 그렇고,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쳐 한국에도 소개된 소설 ‘실락원’도 그렇고,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감각의 제국’도 그렇고, 주인공들이 꼭 정사를 통해 천당을 가려고 해요. 도대체 왜들 그러는 겁니까.”

“맞아. 나도 그 소설 보고 영화도 봤는데, 주인공들이 죽어도 그냥 죽지 않고 꼭 한번 하고 죽더라구. 그걸 보고 열광하는 일본인들은 또 뭐지? 어디까지나 로맨틱해야 할 남녀의 사랑에 사무라이적 비장함이라니. 허허 그것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인가?”대근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번엔 릴리가 히로미의 편을 들며 반격해왔다.“이보세요 강쇠씨. 그리고 대근씨. 둘이 함께 정사(情死)할 정도라면, 죽도록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시 말해, 너무나 사랑하는데 현실이 뒤따르지 못한다면, 죽음을 택함으로써 사랑을 지킬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고 또 있어요. 강쇠씨가 들려준 ‘변강쇠와 옹녀의 사연’도 비극적 결말이잖아요. 그러면서 일본인만 이상하다면 모순이죠.”

“아니죠 릴리. 변강쇠와 옹녀는 정사로 결말이 난 게 아니에요. 변강쇠가 죽은 것은 장승을 가져다 땔감으로 땠다가, 장승처럼 몸이 굳어 죽었어요. 죽은 뒤에도 시신이 꼼짝 않고 옹녀 곁을 떠나지 않았죠. 옹녀 역시 끝까지 의리를 발휘해 낭군을 후히 장사를 치렀구요. 그런 점에서 섹스를 죽음과 연결시키기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는 일본인의 정서는 분명 한국과 차이가 있는 거죠. 그리고 기왕에 히로미가 물어서 하는 말인데,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 지나치게 세기말적이고 감상적이지 않습니까. 내 개인적으론 차라리 이노우에 야스시라는 작가를 존경하고 싶어요. 이분이 쓴 ‘돈황’이란 작품을 보면, 섬나라의 기질을 벗어나 웅혼한 대륙적인 기상이 작품 도처에 번득이더군요. 섹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비좁은 방구석에서 지지고 볶으며 교접할 게 아니라, 그 옛날 원시인들처럼 햇빛 쏟아지는 대자연 속에서 한점 부끄럼 없이 사랑을 나눌 줄 알아야 해요. 그런 점에서 ‘벌판 섹스’를 주장하는 히로미의 의견에 나 또한 적극 찬성입니다. 단, 둘이 정사(情死)하자는 말만 빼놓고.”히로미는 열변을 토하는 강쇠를 눈부신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곤 말했다.“강쇠씨. 멋져요. 정말 근사한 남자예요. 섹스학에만 달통한 도사인 줄 알았더니, 문학에도 수준급이시군요. 강쇠씨, 함께 정사하자고 않을테니 어서 가요. 대신 원시인처럼 저를 터프하게 안아줘요. 아셨죠?”히로미는 강쇠의 팔짱을 사뿐 끼더니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릴리도 대근의 손을 잡고 뒤따랐다. 공원은 군데군데 희미한 가로등이 켜져 있을 뿐 고요했다. 그런데 안으로 더 들어가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쪽! 아아!…”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에 뒤따르던 대근은 귀를 곤두세우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니나다를까, 여기저기 나무벤치마다 연인들이 서로를 꼭 부둥켜 안은 채 정신없이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대근이 무엇보다 놀란 것은 어쩌다 눈이 마주친 연인들이 히 웃으며 보란 듯이 하던 일에 열중한다는 사실이었다. 대근은 입이 딱 벌어졌다. 한마디로 난리 부르스도 그런 난리 부르스가 없었다. 대근은 그러나 더 이상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그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것다. 나도 후다닥 벤치부터 찾아야지.”그렇게 중얼거리며 대근은 릴리의 손을 잡고 공원 구석 구석을 뺑뺑이 돌 듯 누볐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자리가 없는게 아닌가. 공원 곳곳에는 젊은 쌍쌍들이 게릴라처럼 숨어서 한창 육박전을 벌이는 중이었던 것이다. 초조해진 대근이 급기야 불만을 터뜨렸다.“뭐야 쟤들. 집구석에선 뭘 하고 여기까지 기어나와서 저 난리들이지?”“가만 놔둬요. 남의 은밀한 일엔 간섭하지 않는게 예의죠. 그나저나 우리 이제 어디로 가죠? 마땅한 자리도 없고, 히로미와 강쇠씨는 어디로 갔는지 통 보이질 않네.”릴리와 대근이 눈에 불을 켜고 두리번거리는 그 시각, 강쇠는 공원 후미진 구석 벤치에서 히로미의 쭉 빠진 몸매를 감상하고 있었다. 히로미는 강쇠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두 눈을 꼭 감고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내 전투 태세를 갖춘 강쇠는 히로미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았다. 히로미는 몹시 흥분되는지 허리를 비틀며 두 다리를 꽈배기처럼 꼬았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날씬한 다리는 노팬키사에서 볼 때보다 더한층 섹시하게 느껴졌다. 강쇠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바야흐로 일본판 ‘일자 숲’의 비밀을 벗기기 직전이었다.

과연 일본판 ‘일자 숲’은 어떤 위력을 발휘할 것인가? 강쇠는 그러나 서두르지 않았다. 본시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하기 쉬운 법이 아니던가.강쇠는 서서히 히로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히로미의 입술이 살포시 벌어졌다. 강쇠는 히로미의 입술을 희롱하는 한편, 거추장스런 옷가지를 한꺼풀씩 열어나갔다. 달빛 아래 우유빛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 히로미가 부끄러운 듯 강쇠의 품안을 파고들었다. 이어 강쇠의 손이 마법처럼 요술을 부리며 히로미의 신체 여기저기를 순찰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배꼽 부위의 움푹 꺼진 분화구를 돌파하는 순간, 이름 모를 향수 내음이 강렬하게 코를 찔렀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독특한 냄새에 강쇠는 그만 정신이 몽롱해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냄새지? 샤넬 넘버 5번인가? 아냐. 여지껏 수많은 여인의 몸에서 갖가지 체취를 맡아왔지만 이런 기묘한 냄새는 처음이군. 순찰도 급하지만 우선 이 냄새 정체부터 알아내야겠어.”그 생각이 스침과 동시에 강쇠는 순찰을 딱 멈췄다.

그런 다음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코를 벌름거리며 곳곳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히로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지금 뭐하는 거죠? 변태처럼 여기저기 냄새는 왜 맡냐구요.”“당신한테서 희한한 냄새가 나. 그래서 어디서 나는 무슨 냄샌지 확인하려고.”“아 제가 미처 그 얘길 안했군요. 실은 저 은밀한 곳에 향주머니를 차고 있어요. 향내는 거기서 나는데, 어때요 기분이 좋아요?”“기분 좋을 정도가 아니야. 취해서 황홀할 지경인데, 도대체 무슨 향기지?”“음… 히로미 향수요.”“히로미 향수라고? 세상에 그런 향수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네. 진짜야?”“물론이죠. 사실 저는 향수 마니아예요. 향수가 너무 좋아서 프랑스로 건너가 향수 회사를 다녔고, 덕분에 향수를 직접 제조할 정도죠. 지금 강쇠씨가 맡은 냄새는 그 옛날 클레오파트라가 뭇 남성을 사로잡을 때 사용했던 향수와 비슷한 거예요. 장미와 오렌지꽃에서 추출한 건데, 이 냄새를 맡으면 아무리 목석같은 남자라도 유혹에 넘어가게 돼 있죠. 그러니까 강쇠씨를 완전히 사로잡아버리려고 내가 꾀를 부린 거죠 호호호.”

“그랬었군. 하여간 이런 냄새는 처음이야. 아주 자극적이거든.”“그럴 수밖에요. 원래 사람은 각자 몸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갖고 있어요. 프랑스에 있을 때 들은 말인데, 의사들은 그 냄새를 ‘페르몬’이라고 부르더군요. 남녀간에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것도 바로 이 ‘페르몬’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래요.”“페르몬? 그게 어디서 발산되는 거지?”“주로 겨드랑이와 생식기 주변에서 분비돼 나오죠. 그런데 일설에 의하면 왕성한 성욕의 소유자가 페르몬 방출도 왕성하대요. 또한 지구상에서 페르몬에 가장 민감한 종족이 인디언들이라더군요. 그래서 전설적인 아메리칸 인디언 중에는 땅의 상태만 보고도 도망자가 남긴 페르몬을 감지하고 끝까지 추적하는 능력을 지녔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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